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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먹사남 Mar 02. 2021

이제는 글을 쓰고 싶어서

'내' 이야기를 쓰는 게 10년 만이라고?

사회생활이 이어지다 보니 다양한 사람들을 알게 된다. 그중에는 작가도 한 사람 있다. 생활 곳곳에서 의미를 찾아낼 줄 알고, 일상의 한 모퉁이에 공감과 감상을 담을 줄 아는 사람이다. 자기 기분 따라 글 한편을 후루룩 써내기도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오랜 기간 마음속에 무언가를 꾹꾹 눌러서 담아놨다가 어느 날 계기가 생기면 이때다 하고 꺼내어 인내심 있게 문장을 빚어내는 작가이다. 이 시점에서는 내가 브런치에서 유일하게 구독하는 사람. 그녀는 얼마 작년에 첫 작품을 출간했다. 편안하게 가슴에 스미는 글줄을 되짚어보길 몇 번일까. 행간에 잘 보이지 않도록 꾹꾹 눌러 담아 숨긴 마음들을 찾아내는 동안 나도 많은 위로를 받았다. 그리고 생각했다.


"와, 글 쓰고 싶다."



글쓰기, 너란 녀석


어릴 적에는 글쓰기를 좋아했다. 물론 지금도 좋아하지만, 어릴 때와는 조금 다른 느낌이랄까. 칭찬받기를 좋아하던 어린 시절의 나의 '글쓰기'와 2021년 서른여섯을 먹은 청년(중년?)인 내가 좋아하는 '글쓰기'는 이젠 동음이의어다. 


어릴 적 나의 글쓰기란 '하기만 하면 칭찬받는 일'이어서, 서랍 안쪽에 모아 둔 쓰고 남은 200자 원고지를 마치 신줏단지처럼 모셨더랬다. 언제 또 글을 쓸 일이 있을지 모르니까. 대회에 나가면 크든 작든 상 하나쯤은 받아왔고, 어른들도 선생님들도 너는 글을 참 잘 쓴다고 했었다. 그래서였을까, 절망적인 수학 성적이 내 입시를 가로막기까지 - 정확하게 말하자면 16세 1학기 중간고사까지 - 내 장래희망 1순위는 소설가였다. 글 쓰는 일이라면 당연히 소설뿐이라고 생각했던 게지. 정말 놀라운 사실은, 그때까지 내가 끝까지, 제대로 읽은 장편소설은 단 한 권도 없었다는 거다.


성인이 되고 나서, 학구열에 불타올라 미친 듯이 쓰고 지우기를 반복했던 대학 논문 이후로 나의 글짓기는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빌어먹을 '자소설'과 회사 일로 쓰는 '원고'.


자소설이야 말로 소설 중의 소설일 거다. 국내 정치판이야말로 리얼 버라이어티 코미디이듯이. 이제 막 사회에 첫 발을 내딛는 청년에게 입사 포부를 묻는다. 가능한 한 일은 덜 하고 월급만 루팡 하고 싶다는 말을 어찌 포장하면 좋을까. 새내기에게 입사 지원 이유를 묻는다. '돈 벌려고'를 500자 내외로 늘려야 한다. 서류가 어찌어찌 통과되면 면접에서 또 1분~3분 정도에 걸쳐 말해야 하는 경우를 맞닥뜨릴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후에는 이를 위한 '작품'도 따로 준비해야 했다. 작품이 좋은 평가를 받으면, 월급쟁이가 될 수 있었다.


회사를 다니는 동안에는 회사를 위한 글을 썼다. 딱히 글을 쓴다는 티를 안 냈는데도, 회사는 귀신같이 미천한 재주까지 알아내 나에게 글쓰기를 떠맡겼다. 파일명이 대개 '0000000_수정_재수정_재재수정_최종_진짜최종_FINAL_4.hwp'와 유사한 것들로, 마지막에 나타나는 것은 사실과 거리가 멀거나 내가 원해서 쓴 내용은 흔적이나 남아 있으면 다행인 원고. 이런 업무는, 아주 약간이나마 글쟁이의 취향이 남아 있었던 나에게는 그야말로 얼마 안 남은 글쓰기 취향을 갈아서 허공에 흩뿌리는 일이었다. 갓 나온 파스타에 파마산 치즈를 갈아서 뿌리면 어떻게 되던가? 다 녹아서 흔적도 없고, 먹는 놈은 그게 들어갔는지 아닌지도 잘 모른 채 맛있다고만 하지 않나? 이런 짓을 동료와 주거니 받거니 나누거니 하며 1년 가까이 씨름을 한 이후로, 남을 위한 글쓰기는 무조건 돈을 받기로 했다. 비바! 자유경제!


...당연한 이야기지만, 아무도 내게 돈을 주지 않았다.


자소설계에 '등단'한 것이 2010년이었고, 원치 않는 월급(원고)쟁이 짓거리를 2018년까지 했다. 회사를 몇 번 옮기면서 새로운 '작품 활동'을 하다 보니 정말 진이 빠져버린 기분이 됐고, 그래서 지금은 프리랜서다. 말하자면 '자소설계를 은퇴'했다거나 '절필'했다고도 할 수 있겠다. 한번 붓을 꺾고 나니, 정돈하고 정련한 글을 쓴다는 것 이 나에겐 너무 갑갑하고 힘든 일이 되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렇게 난 글을 쓰지 않게 되었다.



이제는 글을 쓰고 싶어서


그동안 글을 써서 누군가에게 보여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나'와 관련된 소재로 무언가를 풀어나간다거나, 그저 '일상 글짓기'의 명목으로 아무것이나 뇌까린 것을 누군가에게 선보인다는 것은 부끄럽다는 생각이었다. 무엇보다 꾸준하게, 순수한 마음으로만 쓸 자신이 없었다.


어린 시절의 글쓰기는 아침나절에 뿌리고 저녁에 맡는 향수처럼 아련한 취향 같은 것으로 남아버렸고, 다른 누군가의 인정을 받기 위해 글을 쓴다고 하기엔 너무 낯간지럽다. 칭찬받기 위해 무언가 열심히 하는 것은 당연히 누구나 해도 되지만 그걸 당연시하는 것은 어린아이를 위한 특권으로 남겨두고 싶은 기분이랄까. 


성인이 된 이후의 글쓰기는 '나'를 위한 것이 단 하나도 없었다. 블로그에 논평도 에세이도 아닌 것을 한두 장 써서 발행한 것은 있었지만, 그것은 굳이 표현하자면 그냥 '써'지른 것에 불과했다. 내가 쓰고 싶어서 쓴 것이 아니라, 써야 한다고 생각해서 쓴 글. 낱말과 맥락의 모음집 같은 것.


그러다 작년(2020년), 나처럼 회사를 위한 글쓰기를 하던 동료가 늘 꿈처럼 얘기하던 출간을 한다는 소식을 접했다. 그녀가 쓴 글이 궁금해졌고, 몇 개의 이야기를 내리읽으면서 이 사람은 일을 할 때에도 이런 식의 초고를 쓴 적이 몇 번 있었다는 기억이 났다(그리고 클라이언트에게 '뺀찌' 먹었다. 내가 먹인 적도 있다. 이제와 고백하건대, 한숨을 억지로 삼키는 표정을 볼 때마다 미안해서 도망가고 싶었다). 정신을 차리니 한 시간 정도 이 사람의 글을 읽고 있었고, 다음 날 중요한 프레젠테이션이 있어서 준비 중이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결국 새벽 네 시까지 PPT 작업을 했다. 몇 달이 지나 드디어 그녀의 책이 나왔고, 모서리가 살짝 찌그러진 채 배송된 것을 보고 내 마음도 조금 찌그러졌고, 그 뒤로도 정신없이 바빠서 거의 읽지를 못하다가 어느 날 광주광역시 출장길에 작정하고 전부 다 읽어버린 뒤, 주말에 재독을 했다.


그리고 모든 감상을 다 뒤로 하고, 나도 글이 쓰고 싶어 졌다.


일단은 '닉값'을 해야 하니까, 역시 먹는 이야기를 해 볼까 한다. 하지만 누군가에게 영향을 받았다고 이토록 명확하게 실감하는 것이 얼마만인지 모를 지경이라, 나중에 내가 이런 글을 쓴 것을 알고 부끄러워하는 사람이 없도록, 차분하게, 먹는 것과 사람과 수다와 감상과 기분 따위를 차곡차곡 담아 볼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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