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을 다닐 때 철학을 들으며 읽었던 책들이 이제는 기억 속에 아련하고 쇼펜하우어의 여자란 무엇인가를 읽고 자명한 한 줄의 글 때문에 참으로 오랫동안 생각했었다. 남자는 1년에 365명의 아이를 낳을 수 있지만 여자는 단 한 명의 아이만을 낳을 수 있다. 오래된 기억속에서 끄집어 온다.
오늘은 김별아의 논개를 생각한다.
미실의 작가 김별아는 논개에서 그의 감미로움을
드러낸다. 감미로움이란 흔들리지 않는 고고한 정신세계라면 언어도단일까?
이제까지 알고 있던 기생 논개는 기생 이기전에 지아비를 지독히 사랑한 여인이었다.
서설의 이야기다.
진주성 함락으로 존경하고 사랑하던 아버지이자, 스승이자, 지아버지였던 최경회를 잃고 진주 관아에 관기로 적을 올리고 왜장
게야무라 로쿠스케를 끌어안고 나비처럼 떨어졌다.
최경회 장군처럼 죽음을 향해.
지아비를 향한 사랑에 죽고 산 19살의 꽃다운 여인, 최경회의 부실이었던 그녀는 김별아 작가의 논개에서 부활하고 있었다.
사랑,
그 한마디에 모든 것이 소급되었다. 고통과 초조와
번민으로 그리고 발끝으로 허방을 딛는 듯 철렁한 상실감이 한순간에 설명되었다. 기쁨과 희망과 설렘과 기대
스치는 눈길과 무심한 손짓에도 넘쳐흐르던 환희가 이해되었다.
사랑, 그것일 수밖에 없었다.
김별아의 '논개 '중에서
약속합니다. 생에 단 한번뿐인 사랑으로 살고
마침내 사랑으로 죽기를......
이라고 논개의 말을 빌렸던 김별아의 사랑관은 내 가슴을 뛰게 했다. 동반자로서의 최고의 남자 어려운 시대 나라와 민을 위해 사랑하는 여자를 두고 떠나야 했던 논개의 남자, 최경회.
그러한 지아비의 뜻을 따랐던 우리의 딸 논개, 그랬다.
김별아가주는 문체의 감미로움과 사랑의 감미로움은 잊혀 가는 사랑의 정의를 또 다른 방법으로 말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