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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비주 Nov 17. 2022

유칼립투스의 죽음을 지나



죽지 마

햇눈이 내릴 때까지

아침이면 마주치는 죽음의 잎들이

부서지거나 말라가는 동안

오랜 연인처럼 곁에도 두고

엄마처럼 의식의 한켠에 넣어둔 채

마른 잎 사이로 보내는 몽상의 시간, 잠시

꾸덕꾸덕하게 말라가던 머리가 칼칼하게 되새김할 때

뿌리를 흔들며 죽지 마

탄탄한 뿌리로 흙을 움켜쥐고

새순을 올리는 거야

잊어버린 지난 시간을 기억하는 거야


하늘하늘 하늘을 향해 올리던

지상의 이야기들을 접어두고

습습하고 어두운 곳에서 퇴화된 눈을 잊은 채

10년을 먹지 않고도 살 수 있는

슬로베니아의 포스토이나 동굴 프로테우스 올름처럼

살아보는 거야


시집 《봄길, 영화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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