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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비주 Nov 24. 2022

이른 새벽 옷 정리를 하면서


눈을 일찍 떴다.

4시쯤 일어나서 드레스룸에 들어가 옷 정리를 했다.

그리 크지 않은 드레스룸엔 내 옷만 있는 건 아니다.

딸의 겨울 옷 일부와 아들의 겨울 겉옷과 여름 남방이 와 있다.

남편의 방에도 본인 옷과 애들 옷이 약간 있다.


다른 사람보다 조금 빠른 은퇴 후 출근이 없어진 나는 옷도

거의 사지 않고 있는 옷도 정리 중이다.

조직에서 멀어지는 것은 형식화된 옷차림에서도 자유로워지는 것이다.

교복, 소위 정장을 하고 여름에도 와이셔츠를 입고 다녔다.

그때 당시 내 일의 중요한 기능이었다.

그렇게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로 돌아오기 이전 내가 가졌던 직업은 10년 동안의 정장 차림이었다.

격을 갖춘, 이때 와이셔츠 커프스도 고객에게 선물 받았다.

아직도 기념으로 보관 중이다.

이 옷차림이 실내에만 있다면 그리 어렵지는 않았을 것이다.

나는 그 옷을 입고 사람을 만나기 위해 도시를 활보해야 했다.

사계절 내내 대중교통을 이용해서.

이때의 대가로 작은 집이라도 대출을 받아 집을 샀고 그걸 계기로 그 집의 보증금과 대출로 부산에서 떨어진 신도시에 조금 더 큰 집을 샀다.


옷을 보다 보니 낡아서 버린 정장들이 사라졌고 아직도 입을만한

옷 한 두 벌이 걸려 있다.

20년쯤 된 옷들이다.

난 옷도 잘 사지 않는 편이지만 산 옷들도 아주 오래 입는 편이다.

디자인이나 색감을 고르는 것이 늘 유행과 약간은 거리가 먼 옷들을 선택하고 나만의 선호 디자인이 있어 오래도록 질리지 않는다.


옷을 많이 샀던 건 이십 대였다.

그때도 10년간 교복을 입었던 때와 비슷한 일을 했다.

단 옷차림이 조금 자유로웠다.

정장과 더불어 꽤나 많이 사서 입었다.

날마다 만나는 고객들에게 완벽한 이미지 창출과 말의 훈련은 이때부터였다.

하지만 이 일을 끝내고 대학에 갔을 때 가장 자유롭고 화려한 색상들의 옷도 입었다.

내가 체육학과 무용을 전공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옷을 만지다 보니 옷을 통해서 건너온 삶의 일부가 솟아났다.

날마다 옷을 고르며 출근한 날들의 기억과 이제는 멀어져서

모처럼 외출할 때도 너무 분방해진 옷차림에 나도 가끔 놀랜다.

그 분방의 기점이 청바지와 티셔츠 겉옷들이 거의 편안함을 위주로 한다.

그러다 보니 일 년 내내 거의 입는 옷들을 또 입고 입는다.


오늘 모처럼 옷장을 정리했으니 드레스룸에 걸려있는 얼마 되지 않은 옷이라도 한 번씩 입어주어야겠다고 생각한다.

 크게 형식적인 자리들이 없어지고 외출도 최소한이니 옷은 이제 그만하면서도 낡은 겨울 코트를 오래지 않아 바꿔야 하는데 하는 이 생각은 무엇인가?


2022.11.24 이른 아침 단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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