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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비주 Jan 01. 2023

새해를 맞으며



연식이 십 년 넘은 아파트를 사는 주인들은

내부를 다 뜯어고친다

이제까지 모습으로 살아온 걸 그만 정리해 버린다

어찌 살았든 나의 기억을 저장하지 않은 집은

새로이 살아갈 나와 먼 그림이다

재작년 우리 동 우리 라인은 대여섯 집이 인테리어를 한다고

일 년 내내 소음으로 살았다


작년 봄까지도 집들이 소리를 내고 오래된 식기세척기나

과일 세척기, 음식물 건조기등이 뜯겨 나가고

간혹 오븐겸용 전자레인지도 쫓겨났다

비데가 덩그러니 쓰레기 장에서 눈을 잡았다


우리 집 부엌 작은 티브이는 고장 난 지 오래

환풍기에 있던 예쁜 눈으로 함께 했던 전등은 나간 지 오래

안방 전등리모컨도 명을 다한 지 오래

거실 스위치는 터치용에서 똑딱이용으로 바꾸고

장식용 전등을 떼고 바꾼 안방 작은 전등

이렇게 바꾸는 동안 내 연식도 늘어났다


사람도 몸을 수선하거나 바뀌는 동안

생각은 넉넉하게 풍요로워질 거라고 생각했다

아침마다 변함없이 문을 여는 하루가 똑같을 거라고 생각하는 동안

하루는 선언을 하기로 했다는 오늘의 소식

똑같은 인류와 똑같은 아파트는 그만,

돈을 흩날리며 고쳐 나가는 그 일도 그만,

추억의 한편을 잃어버리지 않기 위해 이동도 그만,

우린 늘 같은 집에서 늘 같은 사람과 같은 음식을 먹으며

늘 다른 영화를 보고 싶은 걸까


고쳐도 고쳐도 나를 고치지 않는다면

그래도 아파트는 고쳐서 살고 싶다



2023.1.1 아침 단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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