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비주 Dec 31. 2022

가끔은 마들렌

넷플릭스에서 모처럼 아주 맑고 아름다운 청춘의 사랑이야기를

보았다. 2003년, 조인성 신민아의 <마들렌>이었다.


무척 당황스러운 해였다.

우울함이 늘 상존해 있었고, 시집《 그해, 여름은 모노톤》을 출간했다.

작년에 버린 철학서들을 많이 그리워했고, 대출 이자가 많이

올라서 해의 후반기에는 총체적 혼란 속에서 있었다.

늘 일상처럼 움직이던 루틴을 잠시 흩트리고 쓰던 글도 잠시

놓았다.

아들이 예술대학을 졸업했고 10년간 휴학을 반복하며 이루고자 했던 꿈에 제동이 걸렸다.

딸은 취업해서 1년을 잘 견뎌냈고 우리 집 냥이들은 딸이 입지 않은 패딩 속에서 낮잠을 잔다.


시간은 무심히 흐르고 사람들의 생을 읽고 있다.

무채색의 시간들이 삶의 곳곳에 놓여 걸어가는 길을 더디게도 한다.

책이 늘어나 책장을 바꾸어 어제 내내 남아 있는 책들에게서 삶의 흔적을 읽어냈다.

내가 다시 보거나, 기억에 없는 책들의 기억을 찾아주기 위해

책의 배치를 책장을 찾아다니며 했다.

남편은 고요의 시간으로 옮기는 책들을 다시 사기 시작했고

아침마다 자신의 방에서 읽는다.

한때 열광했던 젊은 날의 욕구가 다시 닿는 것 같다.

욕구에서 그저 읽음으로, 일상으로 온 것 같다.


시집에 썼던 '미르다드의 서'도 그런 책의 하나이다.

내가 닿지 않은 부분의 책들이 서재에, 언젠가는 아마 오래지

않아 내게로 올 것 같다.

모처럼 내 방에 다시 들어온 책들의 안위를 살피고 다시

조우를 약속하며 영화 <마들렌>처럼 잠시 순해졌다.

가끔은 삶이 꼬이고, 어느 한 부분에 고립된 시간에 머무른다고

해도 늘 하던 것처럼 정리를 할 것이다.

이런 시간에 서면 집의 곳곳에 겹쳐 있던 물건들이 제 자리를

찾아가며, 생명을 다한 것들을 보내주기도 한다.


시집을 내면서 아끼고 기억해주셨던 분들에게

다시 감사드리며, 조금은 일상을 소소하게 더 자연스럽게

맘껏 글로 옮기리라 생각한다.


한 해 애쓰셨고 또 새해가 오네요.

늘 작은 행복들이 큰 슬픔에서도 위로가 되기를 바랍니다.


2022.12.31. 올해 마지막 날, 아침 단상

작가의 이전글 무 말랭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