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산책의 모든 초록은 황홀하다.
따뜻한 햇살과 더불어 거리를 부풀게 한다.
드디어 나오고 있다.
오만함을 버리며
또 하나의 세계로, 눈물에 잠긴 시간을 보낸 모든 것들에게 사랑을 보낸다.
늘 다시 마주쳐야 하는 모든 하루에게도.
2023.5.12.
나는 삶에 있어서 깊이 통찰하지 못한 일이 있었는지?
왜 이 시간에 와 있는지를 물어야 했다
삶과 죽음의 경계가 너무나 찰나라서 허망함의 뿌리와 슬픔의 곡진함을 끊어내지 않고는 눈물을 멈출 수 없었다.
아주 어리고 약한 생명을 통해서 들여다보게 한 세계는,
또 나의 내면을 다시 들여다보게 한 이유는 무얼까
딸이 보여준 유튜브 채널에서 딸꾹질은 인간이 어류의 진화였다는 걸 알려주는 기록을 보았다.
루카의 진화가 특수한 돌연변이의 진화로 이루어질 때
종의 경계를 뛰어넘어 새로운 종이 만들어지곤 했다.
모든 세계에서 이단은 또 다른 진보의 과정 중에 일어나는 치명적인 상처가 아닐까 생각하다 창조나 진화, 진보등의
모든 근간이기도 하다는 생각을 한다.
편혜영 소설 《저녁의 구애》 중에서 <토끼의 묘>를 읽다
지나간 시간의 흔적을 읽었다. 한때, 2009년의 시간이 있었고
작가의 글을 통해서 잊힌 기억이 떠올랐다.
토끼를 애완용으로 키우고 버리던 날들.
아침에 정지아의《아버지의 해방 일기》 남은 페이지를 읽고
죽음에서 찾아낸 삶의 흔적들을 작가의 눈을 통해 바라보게 되었다.
객관화된 삶의 궤적이란 것이 있을까
늦게 깨달아가는 삶의 일지가 가끔 너무도 생생하게 닿는
날들이 이즈음 많아지는 건 삶의 더께가 쌓이기 때문이란 걸
실감한다.
인간은 많은 노력에도 불구하고 참 외롭다는 생각을 한다.
말을 꺼내어 바람에 날리는 모든 나무들의 행위가, 죽었다
다시 살아나는 생의 지속성까지도 들여다보는 날이다.
2023.5.11 아침
모두 따뜻한 하루이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