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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비주 Aug 12. 2023

 아침, 좌광천에서

이른 아침 좌광천은 그저 고요하다.

장미는 여름 내내 피었다 지고, 가지를 자른 후 모두

예쁜 장미들을 매단다.

바람과 비에 떨어지지만 오래지 않아 예쁜 아이들을 데려온다.

예뻐서 장미 예찬이 아니라 생명력에 노래를 부르고 싶다.

송이송이 여린 잎이 쉽게 떨어지고 상처도 받지만 장미 나무는 무성하다.


예뻐했던 톱풀도 이젠 자취를 감추고, 참취도 그 많이 달았던

꽃들이 흙으로 돌아갈 것 같다.

두루미 한 마리 고고히 좌광천을 나르며 맵씨를 뽐낸다.

청둥오리 두 마리 불어난 물에 밀려오는 거센 물길을

몸으로 받아내며 뒤로 밀렸다 물살이 적어진 곳으로 돌아서

물을 가르며 바위에 오른다.

잠시 쉬었다 유영하는 모습이 참 지혜롭다.

가끔 밀리자.

거센 물결에.


비둘기들의 무리 비행이 시작되었다.

흰색, 재색 가리지 않고 함께 난다.

늦게 따르는 놈 멀리 가는 놈, 힘든 놈들은 미리 전등 위로 오르고 함께 끝까지 나른 놈들은 공원에 있는 아파트 옥상으로

간다.

무리가 참 아름답고 좋아 보였다. 이럴 땐.

하늘을 서로 견주며 함께 나르는 그 모습은 눈을 한참이나

앗아간다.


군데군데 태풍의 상흔이 남아 있지만 미미해서 큰 물살을 이루는 천이 모처럼 풍요롭다.

나리들은 모두 바람에 쓰러지고 갈대 종류들만 더 무성해져서 크게 흔들린다.

가을 이른 국화들이 피기도 전에 지고 벌 개미취들만 무성하다.

당귀도 큰 줄기들이 꺾이고 바람에 쓰러져 있다.

키만 크고 줄기가 여린 애들은 큰바람을 이겨 낼 수 없다.

대추도 익어가고 늦은 배롱나무들이 꽃을 피우고

좌광천엔 나무들이 일지를 쓴다.


모처럼 바람과 햇빛이 조금은 부드러져서 아침 산책을 길게 했다.

매미가 모두 합창한다.

아직 여름이란다.


2023.8.12 아침 산책 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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