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궁*의 말

by 김비주



천궁 피었다

몽글몽글, 말을 떠난 자리

상사화도 아닌 무릇이 수국 곁에서 돋았다

날은 흐린 여우처럼 미간을 찌푸리고

못내 걷는 내 발은 생각이 없다

모두 이겨내라고, 오늘을 살아내자고

메아리를 가슴에 담고 걷지만

선택된 길들이 멀어지는 흐린 가을이다


단풍이 들기 전, 비에 내린 잎들이

돌아가는 중이다

땅으로 돌아간다고 배운 우리 지식이

무참한 시멘트 위 낙엽들

바람에 몰리거나 빗자루에 쓸려 쓰레기로

버려진다는 걸 생각한다

아마, 돈을 치르지 않는 모든 인간관계가

버려지듯


물물 교환의 시대에 난 어떻게 살았을까

지식이나 생각을 교환의 가치로

바꿀 만큼 우수한 인재는 아니었을, 난

바느질을 끄덕이며 뱉어낸 노동의 한 움큼으로

세계에 기울이며,

그저 세끼를 줄이는 연습을 했을까


2023.9.16


*식물 이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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