쫄지말고 비교하지 말고 내 스타일대로 내 길을 가보자
연말을 맞아 나의 30대의 마지막, 미국에서 한국으로 거주지를 옮긴, Eventful 했던 나의 2022년을 돌아보고 마음에 있는 이야기를 풀어내 본다. 그 두 번째 이야기 - 일이다.
Is that the real problem? What is our single most important problem to solve?
리더십과 내가 맡은 제품의 올해 현황과 내년 계획을 조율하는 자리에서 내가 우리 사업부 조직장으로 부터 받은 질문이다. 안타깝게도 난 이 질문에 모두가 납득할만한 대답을 그 자리에서 제시하지 못했고 미팅은 많은 아쉬움과 찝찝함, 숙제를 남기고 끝났다. 이건 두고두고 뇌리에 남아 나를 괴롭히는 기억이 됐다.
쿠팡이 일하는 대표적인 방식은 끝까지 하나의 문제를 파고드는 것이다. 5 Why라고도 하여 계속 "왜"라는 질문으로 문제의 본질을 파고든다. 그리고 하나씩 뽀갠다. 아직 내가 맡은 제품도 다 파악되지 않은 데다가, 이 새로운 업무 방식도 익숙하지 않아서 난 여러 번 버벅대는 모습을 보였다.
한두 번 관계에서 이런 모습을 보이고 나니, 저으기 위축됐다. 조직장이 묻는 질문 하나하나, 그 질문에 대답했을 때 그가 어떻게 반응하느냐에 초점을 곤두세우게 됐다. 중요한 리더와 신뢰를 쌓고 관계를 잘 만들어 가는 건 당연히 내가 해야 할 중요한 일중 하나이다. 문제는 너무 위축되고 눈치 보다간 내 페이스와 내 스타일을 잃고 더 끌려가듯 일할 수 있다는 것이다.
걱정되고 불안한 마음이 들 때면 다시 한번 스스로에게 힘을 불어넣어 본다. 그래, 1년 이상 일했던 직장만 세어 보더라도 이번이 네 번째이다. 그 전에도 적응하기까지 적어도 삼 개월, 많으면 1년 가까이 걸렸는데, 이제 막 새 일을 시작했으니 적응기간이 있는 건 당연하다. 위축될 것 없다. 결국 내 스타일과 페이스대로 끌고 올 것이다. 그래 - 새해의 첫 번째 당면 목표는 이것이다. 주위의 신뢰를 얻어내고 그 바탕 위에서 내 방식대로 신나게 일하기.
큰 회사에 오고 한 제품을 책임지는 자리를 맡다 보니 지금까진 익숙하지 않았던 새로운 과제들을 당면하게 됐다. 그건 여러 리더십을 설득하고 유관부서와의 복잡한 문제를 풀어내는 것. 관련 부서가 여럿이고 리더십이 다르고, 각 조직 간의 어젠다도 다르고 다양하다.
이제 내게 요구되는 역할은 문제의 본질을 깊이 파고들어 끈질기게 제품을 만들어가는 것도 있지만, 이보다 더해 리더십 설득과 유관부서와의 정치적 문제해결이다. 영어로 미팅에서 토론에서 밀리지 않아야 하고, 유관부서 관계자와 미리 조율도 해야 하고, 어떤 문제를 어떻게 풀어낼 것인지 끊임없이 고민하고 조율해야 한다. 어떤 커뮤니케이션 방법을 사용할 것인가 (이메일, 미팅, 슬랙 등등), 커뮤니케이션에 누구를 포함하고 포함하지 않을 것인가, 언제 어떤 논리를 제시할 것인가. 이런 것들이 너무나 중요하다.
내가 늘 되뇌는 말이 있다.
사회적으로 성공하고 많이 가진 사람들은 더욱더 남과 비교하며 자기 자리를 확인하려 든다.
부자가 돈의 힘을 알아서 더 돈을 놓지 않으려고 하듯이 사회적으로 인정받아 본 사람일수록 더 그 힘을 알아서 그걸 놓지 않으려 한다. 돈이나 힘 자체가 문제가 아니다. 문제는 끊임없이 주위와 비교하게 되고, 그럼으로써 본질을 잃고 비 본질적인 것에 더 집중하게 될 수 있다는 것.
본질: 나와 세상의 관계. 이 관계가운데 내게 미션 - 풀고 싶은 문제와 할 일 - 이 생긴다. 그리고 내가 나의 타고난 강점과 기질을 살려 이 일에 접근할 때 나의 "쓸모"가 생겨난다.
비본질: 나의 세상에서의 위치. 남과 비교하며 나의 위치를 계속 확인하려 하고 불안해한다. 더 안정적인 무언가를 쌓아두고 남들에게 뒤처지지 않으려고 노력하다 보니 나의 강점과 기질을 살리기보단 남의 성공방정식을 답습하게 된다.
한국에 오니 주위의 성공이 더 피부로 느껴진다. 그러면서 은근히 나의 현재 위치가 의식이 되고, 조급함이 느껴지기도 하고 불안감이 느껴지기도 한다. 이런 것들 가운데 필요한 자극은 취하되, 비본질적인 영역을 최대한 비워내려는 의식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내 길을 가기 정말 어렵게 만드는 것이 우리가 사는 한국사회이다. 정신 똑바로 차리지 않으면 휩쓸려가는 건 한순간이다.
이 거대한 직장에선 성공하기 어려울뿐더러 설사 모든 걸 희생하고 바쳐서 정상 근처에 간다 한들 그건 내가 원하는 삶이 아닌 것 같아. 40대엔 직장에 한발, 내가 하고 싶은 일에 한발, 이렇게 양발을 걸쳐두고 두 번째 발에 힘을 조금씩 더 실으려고. 그래서 50에는 내가 하고 싶은 일온전히 할 수 있게.
30대의 말에 2년간 직장을 휴직하고 춘천에 가서 공유서재를 내는 멋진 프로젝트를 실천에 옮기고 책을 두권 쓴 친구가 얼마 전에 한 말이다. 아. 가슴을 울리는 명언이다. 그래.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아야 하는데, 우리가 몸담고 있는 직장이 새 부대가 되어 온전히 나란 새 술을 담기엔 안 맞는 게 너무도 많다. 백 년 인생을 사는 우리에겐 새 부대를 준비하는 기간과 노력이 너무나 필요하다. 헌 술이 되지 않으려면.
내게도 막연한 꿈들이 있었다. 내 가슴을 뛰게 하는 문제의식들이 있었다. 한국을 살아가는 동시대의 사람들, 그리고 다음세대의 사람들이 당면한 문제 - 특히나 무엇을 하고 살 것인가의 문제를 같이 고민하며 해결책을 만들어보는 것. 우리 모두가 남의 빛을 모방하는 게 아니라 자기만의 빛을 내는 것. 돈이란 이름으로 삶의 모든 리스크를 없애려는 삶이 아니라, 끊임없이 감당할만할 리스크를 지며 새롭게 되고 생기를 내며 살아가는 것. 그런 일들에 동참한다면 내 삶의 미션으로 삶기에 전혀 손색이 없었다.
일하면서 이 꿈에 다가갈 수 있는 새 부대를 조금씩 만들어 볼 수 있을까. 어떤 사람들과 어떤 것을 도모하며 에너지를 주고받을 수 있을까. 나는 무엇을 축적하고 무엇에 몰입하며 무엇을 누구와 누구를 위해 만들어갈 수 있을까. 직장에 나의 모든 것을 걸지 않고 계속해서 꿈꾸며 일 벌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