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San Baek 백산 Aug 26. 2023

정답은 O 질문은 X

What, How에 Why까지 더해진다면 

백서는 있어도 녹서는 없다


박태웅의 AI강의에 보면 이런 말이 나온다. (관련글 참고)

"유럽연학은 녹서라는 제도를 가지고 있다. 녹서는 정책을 결정하기에 앞서 사회전체의 토론을 요청하는 제안이다. 독일정부는 노동 4.0이라는 백서를 내놓기 2년 전 노동 4.이라는 녹서를 내놓고 전 독일사회의 토론과 의견개진을 요청했다. 시민들의 토론을 이끌기 위해 '미래 (Futurale)'라는 이름의 영화시리즈를 독일전역 18개 도시의 극장에서 상영하기도 했다. 녹서는 "디지털화되어 가는 사회적 변동 속에서 '좋은 노동'이라고 하는 이상은 어떻게 유지되고 강화될 수 있을 것인가?"를 독일사회에 물었다. 그 과정을 거쳐 발간된 것이 <노동 4.0> 백서다."

참 멋진 방법이고 문화가 아닐 수 없다고 생각했다. 반면 우리에겐 백서는 있어도 녹서는 없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정책방향이 180도로 바뀌기도 하고, 어느 정부나 몇 년 안에 가장 중요한 사회문제가 해결될 것처럼 장밋빛 공약을 내걸지만 막상 지나 놓고 보면 별로 된 게 없다. 아주 고심한 좋은 질문을 바탕으로 오랜 기간에 걸쳐 토론하며 사회적 합의를 조율해 보는 과정이 없기에 "정답"의 깊이도 얕고, 그걸 추진할만한 사회적 동력도 약한 것이다. 


정답은 O, 질문/토론은 X


한국에서 삼십 년 교육받고 살고 일하고 지난 십여 년간 미국에서 교육받고 글로벌 회사에서 일하면서 느낀 것은 미국/외국사람들이 정말 말을 잘하고 토론에 능숙하다는 것이다. 반면 나를 비롯한 한국/동아시아계 사람들은 주로 정답을 찾는데 집중해 있고, 의견이 다를 때 그걸 세련되지만 또 치열하게 토론하는 것에는 참 약하다는 것을 본다. 같은 동양인이라도 어떤 환경에서 자라났고 어떤 교육을 받았느냐에 따라 많은 차이를 보인다. 미국에서 자란 2세들은 의사표현에 거침없는 반면 한국에서 자란 세대들은 영어를 잘하는지와 무관히 질문을 던지거나 자기 의견을 막힘없이 당당하고 논리적으로 개진하는 것을 어려워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Prescription (처방) vs Description (묘사)


영어에서 종종 쓰는 이런 말이 있다. 중요한 건 묘사 (Description)이지 처방 (Prescription) 이 아니라고. 삶의 대부분의 문제에는 만병통치약과 같은 처방전은 없다. 진정 도움이 되고 필요한 것은 각자 개별적인 상황을 어떻게, 또 어떤 고민과 이유에서 헤쳐나가고 있는지에 대한 진정 어린 설명과 나눔 (Description)이다. 구체적인 나눔이 성공을 위한 5가지 방법론 같은 일반론보다 훨씬 더 많은 사람에게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이다. 


반면 한국사회에는 묘사는 없고 처방만 넘쳐난다. 유튜브, 인스타를 켜면 부의 추월차선, 커리어성공법 XYZ, 성공하는 사람들의 5가지 특징과 같은 콘텐츠가 홍수처럼 범람한다. 서점에선 세이노의 가르침과 같은 뼈 때리는 조언 류의 책이 줄곳 베스트셀러 1위를 달린다. 


오해마시라 - 처방이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은 아니다. 처방이 이렇게 넘쳐나는 것도 대한민국의 강점이다. 늘 베짱이처럼 놀 궁리만 하는 사회도 있고, 사기와 범죄가 일반적인 사회도 있고, 남들 이야기에 관심 안 기울이고 너무다 제멋대로 살아서 문제인 사회도 있다. 어떻게든 앞으로 나가보겠다는 그 의지와 집념 하나는 한국은 거의 세계 최고 수준이다. 거기엔 엄청난 힘이 있다. 


하지만 부작용도 엄청나다. 날이면 날마다 접하는 수많은 정답과 처방전은 불안감을 자극하거나 불신을 낫는다. 수많은 정답/처방전을 다 실천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보니 늘 뒤처지는 것 같고 불안하다. 또 몇 번 시도해 봤다 잘 되지 않으면 지치고 냉소적이 되기 쉽다. 이게 일상화 되면 아예 귀를 닫고 사회와 상대를 불신하기에 이른다. 


고유의 철학 없고 일관성이 없다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들과 그것을 조율하고, 또 질문을 통해 상대방의 이야기를 듣고 나의 생각을 다시 정리해 가는 정반합의 과정이 빠져있다 보니 본인만의 철학을 정립하기 어렵고, 내가 진짜 누구인지, 세상은 어떤 곳인지, 나만의 비전이나 목적의식을 갖기 어렵다. 앞선글라스 목표설정 X, 목표설정 O에서 지적한 것과 같은 맥락이다. 


이건 국가와 사회차원에서도 나타난다. 일본에 대한 피해자로서 위안부 문제/전쟁배상 문제가 시도 때도 없이 수면에 오르지만, 타 전쟁에서 가해자로서 (예: 베트남전에 한국군이 베트남 민간인/사회에 입힌 피해)는 한 번 더 제대로 이야기하지 않는다. 인권문제에 진심인 것 같지만 막상 난민 문제, 북한 탈북민 문제 이런데에선 진정 어린 목소리를 내거나 어젠다를 선도하는 데에 거리가 멀다. 좋게 표현하면 일관성이 없고 안 좋게 표현하면 감탄고토 (달면 삼키고 쓰면 뱉다)이다. 아래 한일관계에 대한 장부승 교수님의 강연도 같은 맥락이다. 외교에 철학이 없고 그러다 보니 일관성이 없다고. 

https://www.youtube.com/watch?v=c0h0ulJKqZg&t=6584s


개인의 삶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사회에서 요구하는 기준에 맞춰 살다 보니 본인만의 철학을 가지기 어렵고 안에서 밖으로 나가는 게 아니라 늘 사회에 나를 맞추려 하는 경향이 강하다. 아래 드로잉 에세이스트 "이연"이 돈과 나와 일 이란 책에 쓴 한 구절을 소개한다. 


체온유지하기: 나는 사람마다 각기 다른 온도를 타고난다고 본다. 나의 경우 찬 성질인데 이런 사람들은 예민하고 조용한 곳에 머물러야 하고 몸을 따뜻하게 해줘야 한다. 본인의 체온과 잘 맞지 않는 곳에 있으면 뭘 하든 효율이 떨어지고 일이 제대로 풀리지 않는다. 삶에서도 스스로에게 맞는 온도와 환경을 잘 찾아야 한다. 

그러려면 본인이 어떤 온도를 가진 사람인지 알아야 한다. 난 단순하거나 담백한 창작을 좋아하고 너무 디테일하거나 시간을 오래 들어야 하는 창작과는 잘 맞지 않는다. 그래서 크로키나 드로잉, 낙서를 좋아한다. 온도를 알아야 같은 에너지로 더 좋은 효율을 낼 수 있다. 

진정 멋진 작품은 자기가 줄 수 있는 것에서 세상일 필요로 하는 것을 골라 찾았을 때 나온다. 하지만 보통은 이와 반대로 산다. 세상이 달라고 하는 것을 먼저 찾고 그 안에서 주기 위해 애를 쓰는 사람이 대부분이다. 중요한 것은 순서다. 순서가 틀리면 어정쩡한 것을 내놓게 된다. 그러면 살아남기는 더 어려워진다. 


What/How에 Why까지 더해진다면


Why에서 How와 What이 나온다 


이런 생각을 해본다. 정답이 뭔지 (What), 그리고 어떻게 거기에 도달할 수 있는지 (How)에 대한 엄청난 집착과 에너지를 가진 우리 사회에 왜 그 길을 가야 하는지 (Why), 그 길이 나에게 우리 사회에 진정 맞는 길인지 고민하고 토론하는 것까지 합쳐진다면 얼마나 파워풀할까. 


한국이 만드는 콘텐츠는 이미 세상의 문화를 선도하고 바꾸고 있다. 유일한 분단국이자, 미중 갈등의 한가운데에 있는 지정학적 위치 등 한국이 가진 영향력과 중요성은 결코 작지 않다. 우리는 어떤 목소리를 세계 속에 낼 것인가. 기후변화/ESG어젠다는 과연 감탄고토의 정답 베끼기인가 아니면 우리의 고민이자 신념인가. 


개인의 삶에서도 마찬가지이다. 모두가 원하는 의대/로스쿨, 모두가 말하는 AI (얼마 전엔 블록체인), 유행은 바뀌고 그걸 쫓아가다 보면 우린 어정쩡한 것만 내놓다 삶을 마무리할지 모른다. 하지만 Why가 더해진다면 우리 개개인의 삶은 얼마나 더 풍성해질까. 


https://www.youtube.com/watch?v=Jeg3lIK8lro&t=46s

Simon Sinek의 Why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는 Ted강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