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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민정 Nov 27. 2021

길을 나서는 이유

[마음치유 프로젝트 힐링칼럼 11]


  여행을 떠날 때면 그곳의 멋진 풍경이, 아름다운 장소가 내 마음을 사로잡곤 한다. 하지만 때로는 사람으로 그 여행을 추억할 때가 있다. 이번 여행이 내게 그랬다. 


여행의 목적지는 집에서 한 시간 반 정도 떨어진 경상남도 함안. 그곳에 가고자 했던 이유가 딱히 있었던 건 아니다. 어디에선가 ‘11월 걷기 좋은 곳, 함안’이라는 짧은 광고를 보고 어떠한 사전 정보도 없이 무작정 출발한 것이다. 


  해가 질 무렵에 길을 나서서 도착하니 이미 어둠이 짙게 깔린 뒤였다. 제법 어둑해진 시간이라 숙소에 짐을 풀고 가볍게 주변을 돌아보기로 했다. 함안은 생각보다 작은 시골 마을이었다. 높고 커다란 고층 아파트와 빌딩 숲 사이에 있다가 눈앞에 펼쳐진 낮은 건물과 상가들, 전통 시장을 발견하니 매우 정겹게 느껴졌다. 읍내에는 작은 가게들이 옹기종기 모여있었는데 눈에 들어오는 재미있는 간판들이 많았다. ‘깍꼬뽁꼬’ 미용실, ‘낮보단 밤에 더 보고 싶어’라는 센스만점의 호프집, 도시에서는 도저히 볼 수 없는 가격인 ‘3인분 9900원 부대찌개 집’까지…. 잠깐 걸어 다니는 동안에도 나를 즐겁게 하는 눈요깃거리에 고갯짓이 바빴다. 


그렇게 흥미롭게 주변을 둘러보다가 나를 사로잡은 곳은 바로 김이 펄펄 나는 만두가게. 커다란 찜솥에서 하얀 연기를 뿜어내며 맛있게 익고 있는 만두를 보고서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 배가 고프던 참에 쌀쌀한 날씨까지 한몫하니 얼마나 먹음직스러워 보이던지 오늘 저녁 메뉴는 고민 없이 이것으로 해야겠다 싶었다.


  “새우만두랑 고기만두 주세요.” 

  “네, 바로 해 드릴게요.” 하고 주문을 넣고 기다리는데 사장님이 내게 말을 걸었다. 


  “우리 집 술빵도 맛있어요. 드셔 보실래요?” 

  “괜찮아요. 만두만 먹어도 배부를 것 같아요.” 

  “술빵이 완전 촉촉하고 케이크 같아요. 엄청 부드럽다니까요. 진짜 맛있어요!!” 


  나는 다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한사코 거절했다. 사실, 속으로는 ‘만두를 두 팩이나 샀으면 됐지 왜 이렇게 강요하시는 거지?’ 하고 조금은 불편한 마음이 들었고, 얼른 자리를 뜨고 싶다는 생각만 가득했다. 포장을 마치고 만두를 건네받는데 사장님께서 다시 말씀을 이어나갔다. 


  “이거 아침에 정성스럽게 만든 거예요. 혼자 오셨죠? 다니다 보면 출출할 테니 챙겨주고 싶었어요. 정말 맛있으니까 한번 드셔 보세요.” 하면서 술빵을 넣은 비닐봉투를 내 손에 쥐어주셨다. 


  ‘앗, 그냥 주시려는 거였구나! 그런 줄도 모르고 강매하는 줄 착각이나 하다니….’ 


  내가 외지인인 줄 아셨나 보다. 낯선 이에게 베푼 따뜻한 시골 인심이었는데 미처 그 마음을 헤아리지 못했다. 홍당무가 된 내 얼굴은 다행히 마스크로 숨길 수 있었으나 쥐구멍에라도 숨고 싶은 심정이었다. 죄송하고 감사한 마음에 몇 번이나 고개 숙여 인사를 전했다. 


  한낮 여행객에 대한 깊은 배려에 돌아오는 길 내내 가슴이 뭉클했다. 지금 이 순간의 여운이 쉬이 사라지지 않도록, 구름이 달을 가릴 때까지 느릿하게 걸음을 옮겼다. 덕분에 낯선 여행지에서의 첫날을 포근하게 마무리할 수 있었다. 따스한 정을 느끼게 해 준 함안에서의 남은 여정은 말해 뭐할까. 날씨마저도 완벽했던 행복한 가을 여행을 내게 선물해주었고, 다시 오고 싶은 고마운 곳으로 내 안에 고스란히 새겨져 있다.


  수많은 여행을 하다 보면 자주 마주하게 된다. 처음 가 본 낯선 곳에서 처음 보는 이들이 베푸는 선한 마음들을. 그럴 때면 항상 느낄 수 있다. 아는 이 하나 없는 낯선 곳에서조차 나를 챙겨주고 도와주는 이들이 함께한다는 것을. 때로는 덩그러니 혼자 남겨진 듯한 헛헛했던 마음에 세상이 건네는 따뜻한 위로인 걸까. 너는 혼자가 아니라고, 결코 홀로 외로이 살아가는 존재가 아니라고 말이다. 


  여행이 설레는 이유는 익숙한 일상을 벗어나 낯섦과 조우하고 호기심 가득한 새로운 세상과의 연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내게는 그보다도 생각지 못한 거리 위의 친절, 길 위에서 만나는 배려, 따뜻한 사람 냄새를 느낄 수 있어서 그렇다. 그래서 언제나 여행이 기대되고 기다려진다. 소중한 이들을 만나 인생이란 페이지에 따스한 봄볕 같은 날들이 채워지고 내 삶을 아름답게 물들여주니까. 내가 받은 것처럼 나도 다른 누군가에게 대가 없는 친절을 베풀 수 있게끔 예쁜 마음까지 심어주니 말이다. 


  복잡한 생각과 마음을 비우고자 떠난 길에서 결국 사람에 대한 따뜻한 시선과 세상에 대한 애정을 채워서 돌아온다. 그래서 길을 나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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