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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민정 Dec 12. 2021

마지막이 될 그리고 새롭게 채워갈 당신의 페이지

[마음치유 프로젝트 힐링칼럼 12]


  어느덧 달력의 마지막 페이지를 남겨둔 날이 찾아왔다. 숫자 1로 시작된 2021년의 처음을 맞이한 게 엊그제 같은데 어느 틈에 12란 숫자가 우리 곁에 성큼 다가왔다는 사실이 실감이 잘 나지 않는다. 잔잔한 일상 속에 불쑥 끼어든 불청객처럼 유난히도 길게 느껴지던 고된 하루들도 군데군데 자리했음이 분명한데 지금에 와서는 그마저도 어렴풋한 기억으로만 남아있을 뿐이다. 


  12월이 되면 ‘또 이렇게 한 해를 보내는구나’ 하는 아쉬움과 함께 묘한 감정들이 교차하면서 괜스레 숙연해진다. 언제쯤이면 묵은해와 쿨하게 작별할 수 있을까. 지난 1년을 붙잡고 싶은 미련 때문인지 그것을 떠나보내기 위한 나만의 의식인 건지 다시 한번 달력의 첫 페이지로 돌아가 한 장 한 장 눈길을 보내며 찬찬히 페이지를 넘겼다. 달력에 표시해 놓은 일정들을 돌아보다 보니 자연스럽게 책 사이에 꽂아둔 다이어리에 손이 갔다. 이맘때면 한 해를 결산하듯 지난 1년을 되짚어보곤 했는데 오늘이 바로 그날이 되었다.


  다이어리에는 그때 그때의 감상이나 짧은 단상이 적혀있다. 거기에 덧붙여 오늘 감사한 일 3가지, 오늘 배운 것 3가지를 함께 적어놓았는데 지난 1년간의 희로애락이 모두 담겨있었다. 


  ‘아, 이 날 이런 일이 있었지.’

  ‘맞아, 그것 때문에 많이 웃었어.’ 

 ‘에구, 그 일 때문에 참 많이 속상했었지….’ 


  잊어버리고 있었던 일들에 대한 기억이 하나둘씩 되살아나면서 피식하고 웃음이 새어 나오기도 하고 가슴이 몽글몽글 차오르기도 했다. 내가 어떤 생각을 하며 살았는지, 전반적으로 2021년의 내 마음 날씨가 어땠는지를 알 수 있는 정직한 마음 날씨 기록표나 다름없다. 밝고 맑은 마음으로 지낸 날들이 얼마나 되는지, 먹구름이 잔뜩 낀 어두운 날들이 얼마나 있었는지를 보며 내 마음 상태를 확인할 수 있었다. 하늘 날씨는 내 마음대로 할 수 없지만 내 마음 날씨만큼은 내가 얼마든지 조정할 수 있지 않은가. 언제나 맑음일 순 없겠지만 새해에는 내 마음자리가 좀 더 밝은 쪽을 향하도록 다짐해본다. 


  그중에서 특히 내 가슴을 벅차게 했던 건 감사한 일에 대한 기록이었다. 아주 사소한 것에서부터 시작된 세 줄의 짧은 문장이 오늘을 살아가는 데 전적으로 큰 힘이 되어주었다. 그리고 ‘올해도 감사한 일이 참 많았구나’ 하는 것에 감사함과 안도감을 동시에 느낄 수 있었다고나 할까. 감사할 수 있어서 감사했고 마지막 페이지의 남은 날 동안 내가 받은 은혜에 조금이나마 보답해야겠다는 의지도 다지게 한다.


  친구들에게도 올 한 해가 어떻게 기억되는지 물어보았다. 친구 A는 매일 새롭게 발견한 단어들을 모아 단어장을 만들게 되어 매우 뿌듯하다고 하면서 ‘또바기(언제나 한결같이 꼭 그렇게)’, 다소니(사랑하는 사람)와 같은 예쁘고 귀여운 우리말을 소개해주었다. 친구 B는 배를 잡고 웃었던 에피소드를 모아두었다고 했다. 때때로 삶이 무료해지거나 침체되는 기분일 때 그 노트를 찾아서 읽다 보면 한바탕 크게 소리 내어 웃게 된다고. 그러고 나면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훌훌 털어버리고 다시 시작할 힘을 얻는다고 했다. 다들 그렇게 밋밋한 하루와 하루 사이를 연결하는 자기만의 멋진 노하우를 가지고 살아간다. 


  매일 계속되는 삶 속에서 별거 없는 하루, 별일 없는 하루인 것 같아도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 속에 많은 웃음과 희망이 가득 차 있다. 때로는 버거운 절망과 슬픔이 찾아오기도 하지만 그 또한 이겨내고 여기까지 오지 않았던가. 감당하기 어려울 것 같았던 바윗덩어리만 한 무게의 일도 지나고 보면 손 안의 조약돌만 한 일이 되어있는 경우를 볼 때 비로소 내가 성장했음을 느낀다. 끝날 것 같지 않은 어두운 터널도 결국엔 끝이 있고 밝은 빛을 볼 수 있단 걸 매번 삶을 통해 체득한다.


  마지막 페이지를 넘길 일도 얼마 남지 않았다. 마지막 칸이 채워지는 날 아쉬움이 덜하도록 남은 날들을 촘촘히 보내려 한다. 그 사이에 많은 계획을 끼워 넣는 것이 아니라 많이 감사하고 베풀면서 행복한 시간으로 채우면서 말이다. 


내친김에 서점에 가서 2022년의 새 달력을 사서 주변에 선물했다. 새해를 시작하기 전 자기만의 마지막 페이지를 잘 정리하길 바라는 마음에서, 그리고 새롭게 써 내려갈 열두 페이지를 설레는 마음으로 맞이하길 고대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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