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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민정 Dec 27. 2021

내면 아이에게 말 걸기

[마음치유 프로젝트 힐링칼럼 13]


  얼마 전, 30대 초반의 독자에게 메일을 받았다. 내 책을 읽고 자신도 자기 마음을 들여다보고 싶은데 선뜻 용기가 나지 않는다고. 열심히 노력한 끝에 원하던 직장에 다니고 있고, 어느 정도 안정된 삶을 살게 되었는 데에도 불구하고 마음이 여전히 불안하다고 했다. 내 감정과 대면하는 것이 자꾸만 두렵게 느껴져서 피하게 되는데 어떡하면 좋겠냐는 내용이었다. 


  비단 그러한 마음으로 살아가는 이가 그녀뿐일까. 생각보다 많은 이들이 자신의 감정에서 도망치거나 억압하면서 눈앞의 현실에만 몰두하며 살아간다. 왜 그런 걸까? 어느 누구도 감정을 다스리고 관리하는 법을 가쳐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학교에서조차 살아가는 데 꼭 필요한 삶의 지혜를 알려주지 않았기 때문에 내 감정을 적절하게 표현하고, 충분히 해소하는 법을 모른 채 살아가는 것이다. 


  쉽게 꺼내기 어려운 얘기일 텐데 용기 내어 연락 준 그녀에게 고맙다는 말부터 전했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감정을 다루는 것을 어려워한다고, 충분히 그럴 수 있다고 말해주었다. 그리고 조금씩, 천천히 나의 감정을 들여다보는 연습을 해 보자고 하면서 다음의 물음을 던졌다. 


  “한쪽 구석에서 아주 작고 여린 아이가 웅크린 채 혼자 울고 있어요. 그러한 아이를 마주치게 된다면 난 어떻게 할까요? 그리고 그 아이에게 무슨 말을 해 주고 싶어요?” 


  아마도 모른 척하고 그냥 내버려 두지는 않을 것이다. 무슨 일 때문에 이렇게 울고 있는지, 자세를 낮춰 아이의 눈을 바라보고 물어볼 것이다. 그리고 슬퍼하는 아이를 안심시키며 그 옆을 지켜줄 것이다. 아이가 울음을 그칠 때까지, 도와줄 방법을 찾을 때까지….


  그 아이에게 보내는 진심 어린 눈빛과 따뜻한 위로의 말을 내가 나 자신에게 해 주는 것이다. 

바로 내 안의 ‘내면 아이에게 말 걸기’. 

오랫동안 돌보지 않아 외로웠을, 가엾고 애처로운 내면 아이와 화해의 시간이 필요하다. 


  우리가 아무리 나이를 먹는다 한들 감정은 늙지 않는다. 나이가 들었다고 해서 어렸을 때 느꼈던 불안감, 무서움, 초조함이 사라지는 것이 아니다. 처리되지 못한 감정, 억눌린 감정이 켜켜이 쌓여 내 안에 고스란히 남아있다. 그것을 묵혀두면 해소되지 않은 감정들이 이따금씩 고개를 내밀고 나를 괴롭힌다. 그러다가 눈덩이처럼 불어나 결국엔 폭발해버린다. 그래서 상처 입은 나의 감정을 하나의 인격체로 바라보듯 항상 내면의 어린아이를 돌봐주어야 한다고 그녀에게 말해주고 싶었다. 


  나중에 들어보니 어렸을 적 그녀는 부모님의 잦은 싸움 때문에 많이 무서웠다고 한다. 늘 화가 나 있는 부모에게 혼이 나지 않으려고 무척이나 애를 썼다. 큰 소리가 날 때면 방에서 꼼짝없이 나오지 않고 공부에만 열중했다. 하지만 아픈 감정을 마주하고 싶지 않아 공부에 집착한다고 해서 그 불안과 우울이 사라지는 것이 아니다. 단지 도망치는 것일 뿐 언제나 내 마음속엔 상처 받은 어린아이가 공포와 불안에 떨고 있다. 성인이 되어 아무리 좋은 직장을 다니고 경제적으로 안정이 되었다고 하더라도 늘 공허감과 마음의 불안은 사라지지 않는 법이다. 


  그녀는 처음으로 내면의 아이에게 말을 걸었다. ‘많이 불안했지? 이젠 혼자 내버려 두지 않을게. 항상 내가 지켜봐 줄게.’라고 말하는 순간 눈물이 펑펑 쏟아졌다고 했다. 부모님에 대한 미움과 원망의 감정을 마주하게 되었고, 그 시절의 내가 너무 안쓰러웠다고 했다. 무섭고 두려운 그 마음을 표현 못하고 아프도록 내버려 둬서 많이 미안하다고….


  지금까지 자신의 감정을 돌보지 않았던 사람이 내 감정과 제대로 직면하는 것이 쉽지 않을 수 있다. 많이 어색하기도 하고 불편할 것이다. 내 안의 분노, 열등감, 무력감, 우울감을 만나는 것이 고통스러울 수 있다. 하지만 그 어떤 감정이라도 그대로 인정하고 수용해주어야 한다. 나쁜 생각과 감정을 마주한다고 해서 자신을 다그칠 필요도, 창피해할 필요도 없다. 그것은 단지 내가 무엇 때문에 상처 받았고 무엇을 원하는지 알려주는 소중한 신호이니까. 


  토라진 아이가 마음을 여는 데까지 시간이 필요하듯 내가 나의 감정에 대해 편하게 이야기하고 이해하기까지 많은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그렇게 꾸준히 내면 아이에게 말을 걸면서 나의 감정을 마주한다면 상처 받은 내면 아이의 아픔을 떠나보내고 치유할 수 있게 된다. 그전처럼 감정들을 묵혀두거나 쌓아두지도 않을 것이다. 조금 더 내 감정에 솔직해지고 표현할 수 있는 용기가 생기는 것은 물론 내 감정을 잘 관리할 수 있다는 자신감마저 생길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내면 아이와 친해지면서 얻게 되는 마법이라고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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