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아침의 책은 데보라 리비의 <알고 싶지 않은 것들>.
자전적인 이야기를 담은 책으로 오늘 읽은 두 번째 챕터에서는 작가가 어렸을 적 학교에서 (아마 남아공 그 시절의 흔한 인종차별주의자였을) 선생님에게 노트 쓰는 법을 지적당하는 이야기가 나왔다.
여기서 시작해
여기서 시작해
여기서 시작해
첫 줄부터 쓰지 않고 몇 줄인가 띄어 쓰고 시작한 모양이다. 그러고 보니 초등학교 3학년쯤 나도 노트 쓰는 법을 가지고 혼이 났던 게 기억났다. 그때의 나는 왼쪽 페이지는 비워두고 오른쪽 페이지에만 수업의 필기를 했던 것 같다. 데보라 리비는 겨우 몇 줄 띄어쓰기한 것 가지고 혼난 것에 반해 나는 한 페이지를 띄어놓았으니 혼이 날 만한 짓을 한 것일 수도 있겠다. 그런 무시무시한 낭비를 한 이유는 (대부분의 사람이 오른손잡이고 나도 오른손잡이지만 ) 연필을 쥐고 왼쪽 페이지에 필기를 해 내려가면 책의 접힌 부분이 손에 걸려 불쾌한 느낌을 받았던 것 같다. 못 쓰게 된 작년의 달력 뒷 면에 낙서할 때는 이렇게 걸리적거리는 부분이 없던 것을. 이어진 종이에 굳이 쓰기를 해야 하는 것을 작은 머리로는 이해할 수 없었던 것 같다. 훗날 스프링노트의 왼쪽 면에 글을 쓸 때 손에 닿는 그 차가운 금속의 느낌이나 플라스틱의 딱딱함 등을 생각하면 종이쯤이야 싶지만 그때는 종이로 된 노트의 접힌 면조차 참을 수 없이 불쾌하게 느껴졌다. 그래서 수페이지를 오른쪽 면에만 썼다. 이런 이상을 중년의 남자담임선생님은 수업 중에 눈치채고 노트를 휙 쥐어 잡고 머리 위로 높게 올렸다. 이게 무슨 낭비지?” 페이지를 넘겼다. “왼쪽은 하나도 안 썼네. 미쳤어? 너네 집이 그렇게 부자야?” 게다가 뒤편에 그려놓은 유치한 낙서마저 눈에 띄어 버리고 말았다. “선생님은 이런 낭비는 용납 못 한다” 그렇게 교실 전체에 대고 모욕을 주었다. 크게 혼나지는 않았지만 엄마도 그걸 알게 되었고 잠깐 집에 와있던 외할머니도 알게 되었다. “왜 그랬니? 참 이상한 아이구나 너.” 할머니의 손에 노트가 들려져 있다. 외할머니는 무섭고 불같은 성격을 가졌지만 어릴 때 누구보다 귀여워해주셨는데 지금은 할머니로서의 자상함이나 따듯함은 없이 하나의 존재에 대해 이해할 수 없다는 듯한 표정과 목소리로 내게 물었다. 호되게 혼나는 일도 자상하게 질문을 해오는 일도 없었고 단지 그뿐이었다. 다음부터 어떻게 하라는 말도 없었다. 그저 빤히 쳐다보다 이내 시선을 돌렸다.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집 밖으로 나와 옆의 작은 뒷 산 쪽으로 걸었다. 이해받지 못하고 대화를 하려는 시도들도 없었고 알고 싶어도 하지 않은 것 같았다. 어찌해야 할지 몰랐다. 그저 이해받지 못한 기분을 그렇게 위장 속에 담아둔 채 걸었다. 빨갛게 해가 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