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02.11

<나는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by 산책가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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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는 턱의 통증이 좀 가셨다 싶어 안심했는데 오늘 또 조금 아프다. 역시 편도결석 탓인가 침샘이 막혔나 안 좋은 건가 생각들이 몰려온다. 그래도 끔찍하게 아픈 것도 아니고 먹을 때 지장도 없으니 감사하다. 그냥 상태를 보기로 한다. <나는 메토로폴리탄 미술관의...>를 자기 전에 누워서 읽었다. 밀리의 서재를 시작하고 나서부터 동영상보다 책을 읽는 시간이 더 늘어난 것 같아 좋다. 좋은 책이었고 슬픈 책이지만 형의 죽음에 대해 더 많은 분량을 할애하고 있을 줄 알았는데 그 안의 사람들과 그림에 대한 이야기가 더 많은 비중을 차지했다. 감동적인 글이고 관심도 없던 메트에 가보고 싶게 만드는 글이었지만 고전에 대한 인용이나 거기에서 파생된 생각은 적어 아쉬웠다. (그렇다고 폄하하고 비판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 조금 전에 읽은 <시에나에서의 한 달>과 비교가 된다. 저자의 입장이 달라 단순하게 비교할 순 없지만 무언가를 잃고 미술관의 그림 속에서 무언가를 찾고 있다는 것, 평소 만날 일 없는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 그들의 인생을 나눈다는 중요한 기둥은 같지 않은가. <시에나에서의 한 달>의 애도와 문장들이 더 가깝게 다가왔다. 마지막으로 <나는 메트로폴리탄...>의 저자가 형을 위해 고른 것이 토스카나의 회화였는데, <시에나에서의 한 달>의 저자가 시에나에서의 채류를 끝내고 마지막장에 우연히 간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 가서 고른 것도 시에나파의 회화였다. (혹시 저자 둘이 똑같은 그림을 고른다면 그런 우연이 있나하면 가슴을 졸이고 봤는데 그런 일은 없었다. ) 나도 죽은 이들이 부활해 서로 만나 부둥켜 안고 있다는 그 <낙원>이라는 그림이 마음에 들었다. 작가의 말도 마음에 들었다.



그 그림은 우리가 제일 바라는 것, 낙원보다 더 바라는 것이 알아봐지는 것임을 안다. 시간의 경과에 따라 아무리 형태가 변하고 바뀌어도 우리의 어떤 것이 우리가 그토록 사랑했던 이들에게 지각될 수 있도록 견디어 남는 것 말이다. 아마도 예술사 전체가 이런 야심의 전개이리라. 모든 책, 그림 교향곡이 우리에 관한 모든 것을 낱낱이 알려주려는 하나의 시도인 것이다.
시에나에서의 한 달 히샴 마타르 저자(글) · 신해경 번역 열화당

우리는 오래된 친구를 보러 가듯이 그 그림을 보러 가는 날들을 고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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