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은 렌터카로 여행하세요
저는 운전 자체를 좋아하는 타입의 인간입니다. 그런 인간의 입을 통해 나오는 얘기니까 충분히 걸러 들으시라는 말부터 먼저 해드리고 시작합니다.
유럽 여행을 계획할 때 '어느 나라들을 갈 것인가'로 시작한다면 당신은 초심자. '어느 도시들을 다닐 것인가?'를 기준으로 여행 코스를 짠다면 중수의 반열에 올랐다고 할 수 있다. '프랑스-스위스-이탈리아를 가려고요. 3주일이면 될까요?' 이런 질문은 나를 당황하게 한다. 예를 들어 이탈리아 반도를 다 돌아다니다 못해 시칠리아까지 훑는다면 3주일 가지고는 어림도 없다.
질문은 이렇게 해야 한다. '프랑스 파리, 스위스 인터라켄, 이탈리아의 로마, 피렌체, 베네치아에 가는데, 3주면 될까요?'
네. 충분합니다.
지도를 펼쳐 보지 않아도 이미 다들 잘 알고 있겠지만 유럽은 넓은 땅덩어리에 국경선만 복잡하게 있을 뿐 한 나라나 마찬가지다. 심지어 EU-쉥겐 국가들끼리는 출입국 수속도 없으니 정말 '하나의 나라'다. 국경을 넘나드는 것이 너무나도 쉽고 도시 간의 이동을 위한 교통 인프라도 잘 구축되어 있다.
국경을 넘나드는 것은 개의치 말고 도시와 도시가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지를 봐야 한다. 이 지역 다음에 어느 지역으로 이동할지를 동선을 짜야한단 뜻이다. 예를 들어 독일 검은 숲(슈바르츠발트) 지역을 여행한 후 프랑스로 넘어가려 한다면, 스트라스부르와 콜마르를 들를 것인가, 곧장 파리로 직행할 것인가, 혹은 리오를 거쳐 남부로 내려갈 것인가 결정해야 한다. 그리고 그에 맞는 교통수단을 선택해야 하고.
도시에서 도시로 이동할 때 당연히 기차가 편하다. 낭만적이고. 교통 체증이나 교통사고 같은 거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 멈추지 않고 계속 이동하는 도중에 화장실에서 볼 일을 볼 수 있다.
도시와 도시 사이가 매우 먼 거리라면, 이를테면, 이웃국가인 프랑스의 수도 파리와 스페인의 마드리드 정도라면 날아가는 것이 맞다. 그리고 이쪽도 기차와 마찬가지로 이동화장실.
'와~ 신난다. 싸면서 동시에 이동할 수 있어'
(아, 이동화장실의 일반적인 의미는 '한 군데에 고정된 건물이 아니라 여기저기 옮겨 다니며 설치할 수 있는 화장실'이다. 락페스티벌이 열리는 벌판에 설치된 간이화장실 같은. 여기서는 내가 말하는 건 '운동량을 가진 상태에서 볼 일을 볼 수 있는 화장실'이다. 이걸 의미하는 조어는 현재로서는 없는 것 같다. 이런 표현을 '은유'라고 하긴 그렇고, 그럼 '환유'라고 해두자.)
그럼에도 자동차 여행을 예찬하는 이유는, 특히 유럽 렌터카 여행을 예찬하는 이유는 여러가지가 있다. 하나씩 따박따박 비교적 논리적으로 전달해보겠다.
여행뿐만 아니라 평상시 출퇴근할 때도 자가운전은 대중교통보다 비경제적이다. 우리나라 국산 중형 세단의 평균 한 달 유지비가 약 70만 원이라는데, 출근일을 22일로 잡으면 하루 출퇴근하는 교통비가 3만 원 넘는단 얘기다. 서넛이 함께 출퇴근한다 하더라도, 어느 모로 보나 대중교통이 훨씬 싸다. 출퇴근 거리가 짧다면 어쩌면 택시로 출퇴근하는 것이 더 쌀지도 모른다.
그런데 여행에서는 역전되는 일이 발생하기도 한다. 유럽 배낭여행을 생각해보자. 30일짜리 유레일 패스를 아무리 싸게 사도 40~50만 원은 줘야 한다. 여기에다가 좌석 예약, 야간 이동 등등에 비용이 추가되고, 또 도시 내에서의 이동에도 버스, 지하철, 택시 등 교통비가 추가 지출된다.
그런데 렌트는 어떨까. 프랑스나 독일에서 중형차 한 대를 한 달 빌리면 200만 원 언저리. (더 싸게 할 수도, 더 비싸게 할 수도 있다) 한 달간 유류비, 주차비 40만 원을 잡으면, 넷이 타면 1인당 60만 원의 교통비가 발생한다. 네 명이 함께 렌터카로 유럽을 다니면 대중교통보다 확실히 싸고, 세 명이 타는 경우는 대중교통과 비슷한 수준인 건 경험적으로 느낀 바다. 아주 큰 메리트는 아니라고 생각될 수도 있다.
그렇지만 '유럽에서 자동차 렌트라니 언감생심!'하고 두려워하시는 분들, 두려움 거두시라. 절대 부담스럽지 않다.
p.s. 2022년 푸조 리스 가격이 최근 발표됐는데, 왜건인 308SW의 30일 리스가 1,370유로다.
아니, 차에서 잠을 자란 말인가? 아니, 차박 아니라고. 거기 쥐었던 주먹 내려놓으시고.
그러면 차로 여행을 다니면 무슨 연유로 숙박비를 아낄 수 있는 걸까.
대중교통을 이용해서 여행을 할 경우 어쩔 수 없이 관광지가 모여 있는 도심이나 기차역 주변 등 교통의 요지에 숙소를 구하게 된다. 그런 곳의 숙소는 대개 낡고 좁고 비싸다. 그러나 렌트를 하면 숙소 위치에 대한 제약이 사라진다. 오히려 주차할 곳도 마땅찮은 도심의 숙소에 머무르는 것보다는 도시 외곽이 편리하다. 외곽의 숙소들은 한적하고 깨끗하고 넓고 싸다. 게다가 숙소 창을 열면 유럽의 자연 풍광과 신선한 공기가 당신을 맞이한다.
똑같은 컨디션의 룸이 도심에서 150유로라면 외곽에서는 100 유로면 된다. 넷이서 차를 빌려 다닌다면 호텔이 아니라 에어비앤비로 집을 통째로 빌려도 좋다. 호텔 숙박비보다도 저렴하거니와, 마트에서 장 본 식품들을 싣고 다니며 아침 정도는 숙소에서 해 먹는 재미가 있다. 저녁에 숙소에서 술자리도 좋고. 유럽의 살인적인 식당 물가에 비하면 매력적인 식생활을 선택할 수 있다.
결국 '숙박비' 절감 대신 '숙식비' 절감이라고 해도 되겠다.
대중교통으로 여행을 하게 되면 교통편을 알아보느라 또 예약을 하느라 골머리를 앓으며 시간을 보낸다. 차는 그런 고민이 1도 없다.
대중교통을 이용하면 탑승 시간에 맞춰서 여행을 해야 한다. 내일 낮 12시에 떠나는 기차를 예약했다면, 내일 오전까지만 이 도시를 여행할 수 있다는 제약이 생긴다. 이 도시가 너무나 맘에 들어도, 혹은 가성비가 기가 막힌 런치 메뉴를 제공하고 티모시 살라메처럼 생긴 쉐프가 운영하는 미슐랭 원스타 식당이 내일 점심 예약이 가능하다 하더라도, 당신은 내일 12시엔 떠나야 한다.
그리고 버스가 12시에 떠난다면 당신은 11시쯤엔 관광을 마치고 서둘러 버스 스테이션으로 향해야 한다. 아니면 10시 반쯤 관광을 마치고 숙소로 돌아가 맡겨둔 짐을 찾아서 나서야 하거나. 만일 12시 비행기라면 아예 오전에 관광하는 것 자체를 포기하고 숙소에서 쉬다가 바로 공항엘 가게 되겠지.
차로 여행을 하면 당신이 머무르고 싶은 만큼 머무르고 떠나고 싶을 때 떠날 수 있다.
대중교통이라는 게 모든 도시를 서로 연결해주는 게 아니다. 큰 도시와 큰 도시를 즉 주요 지역과 주요 지역만 연결한다.
예를 들어 체코의 체스키-크룸로프라는 마을이 있다. 한국인에게는 프라하 다음으로 많이 가는 체코의 인기 여행지. (이곳을 두 번 갔는데, 이상하게도 '안동 하회마을'에 온 기분이 든다) 오스트리아와 독일 국경 인근 지역에 위치하고 있어서 프라하에서 여길 들은 다음에 체코를 빠져나가는 것이 일반적인 여행자들의 동선이다. 체스키를 구경하고 어디로 갈까. 약 250km 떨어진 독일의 또 다른 유명 관광지 베르히테스가덴에 갈까, 하고 고민해보자. 대중교통을 이용하면 체스키에서 버스를 타고 오스트리아 린츠로 간다. 린츠에서 기차를 타고 오스트리아 짤츠부르크로 이동한 후, 다시 베르히테스가덴으로 가는 버스를 타야 한다. 250km면 서울에서 대구 가는 것보다 가깝고, 대충 구미 정도 가는 거리다. 그런데 버스와 기차를 총 세 번 타야 한다. 이쯤 되면 베르히테스가덴에 가겠단 생각을 포기하게 된다.
이탈리아 종단 여행을 생각해보자. 로마와 피렌체는 당연히 1순위 여행지. 그러나 그 두 도시 사이에 있는 반짝반짝 빛나는 아름다운 소도시들... 아씨시, 몬테풀치아노, 몬탈치노, 산지미냐노, 시비타 디 반뇨레쪼 등을 둘러보는 것은 자동차 여행에서나 가능하다. 독일이라면 로맨틱 가도를 따라 생성된 중세도시들을 하나씩 방문할 기회도 가질 수 있다. 부다페스트행 도로를 한없이 달리다가 끝없이 펼쳐진 중앙 유럽 최대 호수인 발라톤 호수 수변공원에 주차를 하고 오묘한 호수색을 한없이 바라보다 지겨울 때쯤 다시 출발하는 일은 대중교통으로는 불가능하다.
그 외에도 장점은 많다. 코시국에 대중교통에서 마주치는 수많은 사람들과의 접촉을 피할 수 있는 건 물론이고 날씨가 좋지 않더라도 이동하는데 별 지장이 없다. 추억의 댄스가요를 크게 틀어놓고 동승자들과 떼창을 하며 달릴 수도 있다.
한국땅에서는 그다지 몰아볼 기회가 없는, 혹은 한국에 수입 자체가 되지 않는 외국의 대중차들을 몰아볼 기회도 생긴다. 체코의 스코다, 독일의 오펠, 이탈리아의 피아트 같은 차들.
그리고 유럽의 멋진 드라이브 코스들 -알프스를 날아다니는 기분이 드는 스위스 푸르카 패스와 그림젤 패스, 지중해의 눈부신 햇살과 바다를 만끽할 수 있는 이탈리아 아말피 해안도로 등- 은 그곳을 운전하는 것 자체가 하나의 여행지이며 경험해봐야 할 어트랙션이다.
무엇보다 내 손으로 운전을 함으로 인해서 그 땅에 살아가는 사람들의 경험을, 그것을 설령 맛보기 정도라 할지라도 누릴 수 있다. 버스나 기차에 타서 남의 손으로 이동당할(?) 때와는 전혀 다른 체감을 하게 된다. 내가 이동하는 경로가 어떤 곳인지 지도나 내비를 보고 그 거리를 가늠하게 되며 지리적인 정보가 축적된다.
또 도로를 달리며 그곳의 교통 체계를 습득하고 현지인들의 운전 습관을 체험한다. 휘발유 가격을 겪게 되고 셀프 주유소에서 주유를 하는 법을 배우게 된다.
마지막으로 별 것 아니겠지만 무사히 차를 반납했을 때, 이 먼 이국에서 나는 운전을 해냈구나, 사고를 내지 않았구나, 차를 빌리고 반납하는 일련의 사무적 프로세스를 훌륭히 수행해냈구나 하는 성취감도 따라온다.
여러 나라를 넘나드는 장기 유럽 여행 중심으로 이야기를 풀었지만 우리네 불쌍한 직장인들의 일주일 여행에도 기본적인 원리는 똑같다. 차를 빌려 여행을 하게 되면 머무르고 싶은 만큼 머무르고 떠나고 싶을 때 떠날 수 있다. 원하는 곳에 가닿을 수 있고 정말 원하기만 한다면 짧은 시간에 정말 많은 곳을 다닐 수 있다. 그리고 남들 다 가는 유명한 관광지가 아니라, 여행자의 발길이 뜸한 소도시들, 외딴곳들, 놀라운 자연 풍광이 당신을 발길을 기다리고 있다.
때로는 내비를 잘못 보고 수십 킬로미터를 돌아 가게 되거나, 외부 차의 진입이 금지된 올드타운으로 잘못 접어들어 현지인들이 당황해하며 도리도리하는 표정을 보게될지도 모른다. 어쩌면 타이어가 펑크가 날지도 모르고. 그것 또한 한국에 돌아와 무용담처럼 들려줄 이야깃거리가 된다. 여행에선 모든 것이 추억으로 남는다.
외국에서의 렌트를 두려워하지 마시라. 자동차 여행이 주는 축복을 거부하지 말고 한 번쯤 즐겨보시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