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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산체스 Nov 17. 2021

오를 수 있는 높은 곳이 있다면 일단 올라라

여행의 방법. 높은 곳에서 조망하기



뮌헨 신시청사와 마리엔 광장이 내려다 보이는 이곳은 성 페터 교회의 전망대

여행에 정도正道가 어디 있겠는가. 각자 나름의 방법으로 취향껏 다니면 그것으로 족하다. 시장을 무조건 가야 한다는 사람도 있고, 각종 문화행사나 이벤트 중심으로 다니는 사람도 있다. 어느 쪽이 됐든 많은 것을 보고 듣고 겪고 느끼고 생각하면 된다. 그게 정답 아니겠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어떤가 하면, 높은 곳이 보이면, 그리고 그곳에 올라갈 수 있는 상황이라면, 무조건 오른다. 교회의 종탑이든 마천루 위 전망대든 혹은 비쭉 솟아오른 산이든 상관없다. 높아 올라 가서 내려볼 수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상관없다.


선조 중에 바벨탑을 쌓다 죽은 바빌로니아 사람이 있는 것도 아니고, 실제로는 아주 경증의 고소공포증이 있어서 높은 곳에 오르면 매우 아찔하기까지 한데, 어쨌든 오르고 싶다. 그런 마음가짐으로 사회의 피라미드의  높은 곳에 오르는 열심을 보였다면  삶은 윤택해지겠지, ... ...  다시 태어나도  따위 그런 위인은 못될  같다. 굳이  얘길 꺼낸 이유는, 성공/성취에 대한 강렬한 열망이 내게 있거나 내가 상승 지향형 인간이기 때문에 저도 모르게 높은 곳에 오르고 싶어하는  아니다는 사실을 말해두고 싶어서다.  그렇다고 안분지족 연하는 사람도 아니지만.

록펠러 센터에서 맨해튼 북쪽을 바라본 풍경. 센트럴 파크가 보이네요
원 월드 트레이드 센터에서 바라본 맨해튼 남쪽 월스트리트와 이스트강 건너 브루클린 지역
원 월드 트레이드 센터에서 바라본 윌리엄스버그 다리와 그 뒤편의 브루클린(중에 월리엄스버그 동네)


나는 개인적으로 지리를 좋아한다. 학창시절부터 '사회과부도'(요즘도 이런 말 쓰나요?)라면 사족을 못 썼다. 넓은 면적을 수천 분의 1 혹은 수만 분의 1의 축적으로 오밀조밀하게 만들어 놓은 지도가 너무나 사랑스러웠다. 아무데나 펼쳐 보아도 그곳에는 새로운 세상이 펼쳐지니 그 어찌 경이롭지 않은가.


지금은 종이지도가 흔치 않으니, 구글맵을 여는 것으로 대신한다.  손가락으로 핀치인을 하면 거대한 대륙이 확대되고 나라와 도시의 이름들이 등장하고 도로와 강이 그리고 거대한 구조물들이 점점 보이기 시작한다. 구불구불한 등고선과 사행천 같은 자연(고엔트로피 상태라고 하자), 도심의 바둑판 같은 도시공학의 산물(그러니까 인위적인 저엔트로피 상태) 좋다.


 중에서 특히 좋아하는 것은 리아스식 해안으로, 말만 들어도 오금이 린다. 육지와 바다가 만나 비합리적으로 조형된 자연의 산물. '우연' 산물이라는 점에서는 같을지 모르지만 잭슨 폴락의 작품보다는 리아스식 해안 쪽이 훨씬 아름답다고 생각한다.

(쓸데없는 TMI인데 캄차카 반도도 특히 개인적으로 애정하는 지역이다. 아직 가볼 기회는 없었지만.)

'몬테네그로'라는 나라의 '코토르'라는 도시의 뒷산에 해당하는 (뒷산이라 하기엔 좀 높구나) 로브첸 산에서 내려다본 복잡다단한 리아스식 해안 지형.
코토르 지역의 구글맵은 이렇습니다. 아름답지 않나요? 리아스식 해안을 자꾸 강요해서 죄송합니다 ㅜㅠ
도대체 몬테네그로가 어디에 붙어있는 거야, 감 잡으시라고. 레드포인트에요 (노랑 별표시는 제가 가본 곳들)
센트럴 월드호텔 56층에 위치한 루프탑 바 '레드 스카이 바'에서 바라본 방콕의 야경


지도를 좋아하니까, 지형을 보는 것을 좋아하니까 높은 곳에 오른다는 나의 여행법, 어째 어패가 맞는 것도 같고 아닌 것도 같지만. 여행지를 위에서 조망하는  나쁠 리가 없잖아, 하는   생각이다.


높은 곳에 오르면 당연히 우선 이 도시가 어떻게 생겼는지 전체적인 지형을 파악할 수 있다. 보도 위에서는 보이지 않던 건물도 보이고, 건너 마을도 볼 수 있고, 저 들판 너머 산도 강도 보인다. 그것들이 보여서 여행을 망칠 리가 있는가. 심지어 눈앞을 가리는 담장도 숲도 없고 머리 위로는 모두 하늘이다. 높은 곳에서는 하늘을 흠뻑 즐길 수 있다. 거기엔 새도 있고 구름도 있다. 만일 밤이라면 별빛도 가득하다. 하늘이 당신 인생에 해꼬지할 리 없잖아요.


우리는 대개 땅에 붙어 산다. 가끔 지하에도 내려가고, 높은 빌딩에서 일도 하지만, 그럼에도 우리의 시각은 대략 지상에서 1.5~2.0m 사이의 눈높이에 갇혀 있다. 거리를 뛰어오는 개들( 포함한 대부분의 육상 동물들)보다는.다소 높은 위치에서 세상을 바라보지만, 새들보다는 한참 아래에 있다. 지하의 두더지는 세상을 제대로  보니까 패스.

우리는 가로등과 나무 그리고 대부분의 건축물들은 올려다 봐야한다. 그리고 담장 너머는   없다.


인간의 눈높이에 대해 불평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수십 년동안  높이에서만 세상을 바라봐야 하는 처지에 대한 투정이다. 여행이라는  일상에서 벗어나 세상을 새로운 시선으로 바라보는 행위라면, 여행을 떠나서 인간의 평소 눈높이와는 다르게 세상을 보는 것도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일 뿐이다.


같은 이치로 땅 위 10~20cm 정도의 낮은 눈높이로 여행을 할 수 있다면, 나는 기꺼이 그렇게 할 것이다. 그건 그것대로 새로운 시각을 보여준다. 그런 까닭에 나는 종종 카메라를 땅 가까이 두고 틸트업 샷을 찍는다.

이탈리아 산지미냐노. 탑들의 중세도시
슬로베니아의 수도 류블라냐. 류블라냐 성에서


여행지 조망을 차치하고, 인간에게는 높은 곳에 오르고 싶은 본능이 있다고 생각한다. 언어만 보더라도 관습적으로도 '높은 곳'은 대개 긍정적(positive)인 의미를 담고 있다.일례로 '저 높은 곳을 향하여' '높은 자리에 오르다'는 모두 좋은 의미다. '날개를 달아 주다'라는 표현도 '높은 곳'이라는 단어가 직접적으로 들어있지는 않지만 높을 곳을 지향하는 인간의 마음이 내포되어 있다.


만일 신적인 존재가 나타나 '당신에게 날 수 있는 능력을 드릴게요'라고 할 때, '아, 싫다고요 그런 능력 따위. 어따 쓰라고'라고 마다할 사람은 거의 없을 거라고 나는 단언할 수 있다. 얼마나 날고 싶었으면 다이달로스와 이카루스는 밀랍으로 날개를 만들었을까. 르네상스의 천재 다빈치는 또 어떻고. 일본의 모 쇼핑몰 창업자는 일론 머스크에게 3천억 원을 지불하고 우주여행을 할 날이 기다리고 있지 않은가.

(실은 달을 몇바퀴 돌고 오는 상품이라 머리가 핑 돌 만큼 비싼 것이고, 지상 100km~130km 구간을 11분간 여행하고 오는 버진 갤럭틱의 상품은 25만 달러밖에 안 한다)

독일 뇌르틀링겐. 독일의 로맨틱가도를 따라 형성된 소도시들은 원형의 성곽이 도시를 두르고 있고 중간에는 꼭 성당이 있다. 종탑에 오르면 이 귀여운 도시 외관을 관람할 수 있다.


인터라켄을 코앞에서 내려다 볼 수 있는 하더쿨름. 맞은편 저 멀리 융프라우가 보인다.


영국의 등산가 조지 허버트  맬러리 (줄여서 '조지 맬러리') 등산에 관한 명언은 누구나 들어서  알고 있을 것이다. ' 등산을 하냐' 질문에 '산이 거기에 있으니까'라고 답했다. 그는 그렇게 답했지만,  안에 숨어있는 진의를 파악한다면 '산은 높으니까' 진짜 답이 아닐까 한다.


어떤가? '전망탑' 따위 시간 모자란 패키지 여행자들이나 오르는 곳이라며 무시하진 않았는가. 진정한 여행자라면 두 발로 여행지 곳곳을 누비며 그곳을 몸으로 느끼고 파악하는 것이지, 높은 곳에 올라 조망 한번 했다고 알게 되는 것은 아니라며 젠체하지 않았는가?

서두에 정도正道는 없다고 했듯 여행에 틀린 방법이란 없다. 높은 곳에 올라 내가 발 딛고 있는 곳의 어떻게 생겼는지 보는 것도 나름의 가치를 주니, 발뺌할 필요가 없다는 나의 이야기에 동의하나요?


프라하의 구시청사 전망대. 높은 곳에 오르다 보면 이런 광경을 누리는 행운이 찾아 오기도 한다
도시의 조망을 하는 방법으로 꼭 건축물에 올라야만 하는 건 아니다. 이를테면 건물 사이즈의 대관람차. 위는 런던 아이(London Eye), 아래는 싱가포르 플라이어(Flyer)


초점도 제대로 맞지 않은, 딱히 별 감흥없는 어느 도시의 야경 사진 같다. 이곳은 리우 데 자네이루다. 위쪽에 검고 뾰족한 산봉우리 위에 빛나는 건, 세계7대 불가사의 건축물 중 하나로도 유명한 '코르도바 예수상'이다. 이 얘길 들으면 이 못난 사진이 조금 용서되는가?


와이나픽추에서 내려다본 마추픽추. 케추아어(잉카어)로 마추픽추는 오래된 산, 와이나픽추는 젊은 산을 의미한다


 P.S.

조지 허버트 리 맬러리 '산이 거기에 있으니까'

엄청 (zen)적인 대답 같은데, 실은 등산가에게 ' 등산을 하나요?'라는 쓸데없고 뻔한 질문을 묻는 기자에게 귀찮아서 그냥  내뱉은 말이었다고 한다.

"아니, 산을 왜 오르냐고? 산이 거기 있으니까 오르지, 이 멍청한 기자 양반아.'

그러니까 우리가 상상하던, 득도한 등산가의 심오한 우문현답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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