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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산체스 Aug 16. 2021

떼려야 뗄 수 없는 일본

어째서 일본 여행을 가고 싶지 않을 걸까

도발적인 주제다. 나는 여행지로서 일본을 고려하지 않는다.  얘기는 일본 여행을 가고 싶단 마음이  적이 없단 뜻이고, 일본을 좋은 여행지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는 의미다. 그렇다고 일본에 대해 억한 심정이 있거나, 가까운 조상 중에 항일투사가 있는 것도 아니어서 딱히 반일 성향이 있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음식과 음악에 관해서는 오히려 호의와 외경심을 잔뜩 가지고 있다. 음식과 음악 수준이 대단히 '높다' 생각한다기보다는 '넓다'라는 표현을 쓰고 싶다.

문화에 관해서는 다양성만큼 중요한 가치는 없다고 개인적으로 생각하는데  점에서 한국보다 일본이 나은 편이라고 본다. 일례로, 만일 내가 자메이카 스카를 아프로비트로 재해석한 음악을 하고 있는 (그런 음악이라는 게 가능한지는 모르겠지만) 뮤지션이고  음악을 좋아하는 팬이 1 명이 있다고 친다면, 일본에서라면 먹고사는  가능하나, 한국에서는 불가능하다.


큐슈 쿠마모토 어딘가의 숙소에서 제공된 가이세키 요리

 그러면 나는  일본에서 관광지로서의 매력을 느끼지 못하는 걸까. 나는 일본의 무엇이 못마땅한 걸까.  이유는 한국과 너무나 흡사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도쿄 어딘가에 내던져진 다음에 거리에 일본어 간판을 지운다면 그리고 차들이 좌측통행을 한다는  애써 외면한다면, 이곳이 서울 어딘가가 아닐까 착각에 빠지게 된다. 일상에서 벗어난답시고 여권을 챙겨 들고 비행기를 타고 도착한 곳이 아까 내가 머물고 있던 곳과 다를  없다면, 이거야말로  빠지는 일이 아닐  없다.


그러나 이건 어쩔 수 없는 노릇이다. 한국과 일본은 지리적으로 가장 가깝고 기후를 비롯한 환경이 비슷하며 인종적 특성도 흡사하다. 우리야 화장법이나 의상 스타일로 대략이라고 구분할 수 있다 치더라도 동아시아권 사람이 아니라면 한국인과 일본인을 절대로 구분할 수 없다, 고 장담한다. 그게 가능한 서양인이 있다면, 그이는 병아리 감별사 DNA의 세례를 온몸에 듬뿍 받은 게 틀림이 없다.

오다이바에서 바라본 레인보우 브릿지. 어디선 본 풍경 같지 않나요?

수이카 카드를 손에 쥔 채 지하철 플랫폼에 서있을 때도, 포렴을 젖히고 들어선 식당에서도, 더위를 피해 찾은 백화점에서도 일상의 기시감은 사라지지 않는다. 이럴 거면 방배동 스바루나 합정 교다이야나 가지 왜 비싼 항공권을 끊어서 여기까지 왔던가, 하는 자괴감에도 빠진다. 그러나 이것른 순전히 나의 문제이고 온전히 나의 탓이다. 낯선 곳을 동경하고 익명성을 즐기는 성향 탓일 거라 생각한다. 점심 메뉴를 고를 때도 그렇다. 검증된 맛집보다는 한 번도 가보지 못한 식당이 은근히 당긴다. 그런 경우 대개 실패한다. 가보지 않은 이유가, 많이들 찾지 않는 까닭이 분명 있는데도 불구하고

 

여행에서 익숙함을 배격하려는 태도는 과연 옳은 걸까?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익숙함은 선도 아니고 악도 아니다. 편안함도 마찬가지다. 그런 고로 여행에 대한 나의 가치관은 옳은 것도 그른 것도 아니다. 익숙하지 않은 것을 경험하러, 낯선 것들이 주는 불안함을 즐기기 위해서만 여행을 떠나는 것은 아니니까. 누군가에게는 여행지가 주는 익숙함과 편안함이 더 선호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점심 메뉴를 고르는 데 있어서의 내 성향은 동행에게 피해를 주니까 굳이 고르라면 '악'에 가까울지도 모르겠다)

  

니이가타 시장 초입. 사케가 참 맛난 고장입니다.


긴린코 호수를 품고 있는 유후인의 고즈넉한 정경

편협한 생각일 수도 있지만 남자와 여자 중에 여성 쪽이 일본 여행을  선호하는  아닐까? 아무 식당에나 들어가도 평타 이상 치는 음식, -심지어 편의점 도시락도 맛있다- 세계 수위를 다툴 만큼 발달한 카페와 간식 문화, 사람들의 친절함 -그것은 '혼네' 아니라 '다테마에'일뿐이라고 폄하하는 사람도 있다- 정갈하게 청소가  길거리, 공기처럼 마주치게 되는 아기자기한 소품들... 이런 것들이 여성들에게 어필하는 요소가 아닐까 한다.


그리고 그것은 낯선 곳에 내팽개쳐지지 않았다는 안도감이라는, 다른 여행지는 좀처럼 가지지 못하는 미덕과 함께 일본을 최고의 여행지 중 하나로 만들어주는 것이 아닐까. 나는 남자이기 때문에 절감하지는 못하지만,  낯선 여행지에서 마주 걸어오는 사람에게서 위압감이나 공포심이 느껴지지 않는 사실은 여성 여행자로서 엄청난 장점일 것이라고 생각된다. 평소 생활할 때와 동일한 편안한으로 마음 놓고 대중교통을 타고 별 의심 없이 식당과 술집에서 내어주는 음식을 먹으며 느긋하게 숙소에 들어가 안심을 끌어안고 잠에 들 수 있는 여행지, 그곳이 바로 일본인 것이다.

 

편의점에서 각종 시즌 한정 맥주와 달짝지근한 발포주, 그리고 주전부리를 사서 숙소에서 밤을 보내는 것도 일본 여행의 작지만 큰 즐거움이다


오타루의 오르골당. 여행을 가도 기념품이란 걸 잘 사지 않지만, 오르골을 하나 업어왔습니다. 태엽을 돌리면 80일간의 세계여행 테마가 흘러요

나의  해외여행이 일본이었다. 처음으로 여권을 만들고 아무것도 모른  도쿄행 비행기를 올랐다.  생애  캐리어의 손잡이가  손에 전해주는 까끌까끌함을 매만지며 도착한 그곳은, 내겐 서울과 다른 없는 공간이었다. 하루는 긴자에서 우에노 공원까지 마냥 걸었고,  하루는 신주쿠에서 시작해서 하라주쿠, 메이지신궁을 거쳐 시부야까지 걸었다. 여행이란 이런 건가 싶었다. 목이 마르면 자판기에서 캔음료를 뽑아마셨고 그래도 더우면 편의점에 들어가 쇼케이스 앞을 잠시 서성였다. 굳이 그럴 필요 없는데 하루  잡아서 마포에서 신림까지 굳이 걷는 것과 다를  없었다.


하루는 큰맘 먹고 디즈니씨(Disney Sea)를 찾았다. 마침 디즈니씨의 개장 1주년 기념일이었고 관람객들은 미어터져나가고 있었으며 혼자인 사람은 나뿐이었다. 그런 고로 점심으로 카레라이스를 주문할 때 외에는 단 한 마디도 입을 뗄 일이 없었다. '일본을 여행지로서 별로'라고 하는 편견이 생긴 것은 아마 이 첫 경험 때문이려나. 여행에도 PTSD라는 게 있다면 아마 내 첫 해외여행에도 임상 적용될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럭저럭 지금까지 아홉 번 현해탄을 건넜다. (아아, 내게서 이런 예스러운 표현이 나오다니. 현해탄!) 그중에서 세 번은 섬머소닉 락페스티벌을 보기 위해서였다. 일본의 남쪽 끝이라 할 수 있는 오키나와도, 그 반대인 홋카이도도 가볼 수 있었던 것은 좋은 추억이고 경험이었다. 작지 않은 국가고 지역적 특색이 확연했다. 내 발 길을 기다리는 곳이 아직 많이 남은 일본, 나는 앞으로 몇 번을 더 여행하게 될까.

왼쪽은 '원숭이' 때문에 어느 팀인지 맞출 사람이 있을 것도 같다. 바로 Black Eyed Peas. 오른쪽은 Imagine Dragons의 댄 레이놀즈가 열창중이다


홋카이도 섬의 중심부에 해당하는 곳에 위치한 후라노, 비에이의 풍광

나에게 있어 일본 최고의 매력은 바로 '나무'다. 사람이 이동하고 거주하기 위해 만들어놓은 인공적인 면적을 제외하면, 일본은 그 어디에나 나무가 있었다. 나무가 없으면 풀이라도 있었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다들 곳곳에 화분을 놓고 식물을 키우고 있었다.

그리고 나무가 모여있다면 그것은 성기지 않고 꼼꼼하고 빈틈없는 '숲'을 이루고 있었다. 요요기공원과 메이지신궁이라는 도심에서 그 광경에 처음 놀랐고, 후쿠오카 시내를 빠져나오면서 도로 양옆의 빽빽하게 들어선 나무들을 보며 확신이 들었다. 원시림 가득한 홋카이도는 더 말할 것도 없다. 이렇게 조림을 열심히 한 나라니까 틀림없이 짧은 몇 세기 동안만이라도 이 나라는 어느 정도 체력을 유지하고 버텨나갈 수 있겠구나 싶었다.


관용적 표현으로 일본을 '가깝고도 먼 나라'라고 한다. 개인적으로는 '가깝지만 멀리 하려 한 나라'였다. 해외여행을 마음먹을 때 일본만큼은 좀처럼 떠올리지 않는 나조차도 어느 틈엔가 그 가장 많은 횟수를 여행한 나라가 일본이 되어버렸다. '떼려야 뗄 수 없는 나라'가 바로 일본이다.


알그몰그 (알아도 그만 몰라도 그만)


- 혼네, 마테다에: 일본인들이 마음속에 숨긴 본심을 '혼네'라고 하고, 겉으로 드러나는 겉치레 포장 언어를 '다테마에'라고 한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이것은 일본인의 특질이 아니다. 체면, 겉치레에 관해서라면 한국인도 일본인 못지않다. 토론에 서툴고, 대놓고 싫은 소리 하기 껄끄러워하는 습성, 유행에 뒤떨어지지 않기 위해 혹은 남들 시선을 의식해 '트렌드'라는 핑계 아래 서로가 서로를 뒤좇는 경향성, 과연 부정할 수 있을까? 체면문화에 관해서는 우리가 일본인을 꾸짖을 수 없는 형편이고, 마찬가지로 서양인들도 우리더러 뭐라 할 수 있는 권리는 없다고 생각한다.


- 한국인 최대 해외여행지는 어디?

코로나 이전을 기준으로, 세계에서 가장 많은 비행기가 오고 가는 노선은 어디였을까? 바로 김포-제주다. 하루 213편. 1년에 거의 8만 편의 항공기가 배정된 노선이다. 압도적 1위.

그렇다면 한국인들이 가장 많이 타는 국제선 노선은 어딜까? 바로 인천-오사카. 1년에 2만 대의 항공기가 이 노선으로 날아올랐다. 부산, 제주, 대구 등에서 오사카를 찾는 항공기까지 포함하면, 한국인이 가장 많이 찾는 해외여행지는 바로 오사카인 것이다. 인천-오사카는 국제선 분야에서 세계 6위권이다.


- 현해탄 : 일본과 한반도를 오가는 일을 '현해탄을 건넌다’라는 관용적 표현을 쓴다. 아니 썼다. 유감스럽게도 이 표현은 옳지 않다. '대한해협을 건넌다’'라는 표현이 맞다. 한반도의 경남 지역과 일본 큐슈 섬 및 혼슈 섬 남서부 사이의 바다의 명칭은 '대한해협'이다.

현해탄은 큐슈 섬의 서북부 앞바다를 일컫는다. 좀 더 정확하게는 큐슈 섬의 부속섬인 오시마 섬과 이키시마 섬(하트로 표시) 사이의 좁은 해역을 의미한다. 대마도(쓰시마 섬)와 큐슈 섬 사이는 쓰시마 해협이라 부른다. 고 1 수학 시간에 배운 집합 개념으로 표시한다면, "대한해협  쓰시마해협  현해탄"이 된다.

 

하코네


오키나와 츄라우미 수족관


대게 다리 스시는 꼭 '생'으로 드시지 마시고 익힌 걸로 드세요. 대게 사시미는 입에 쩍쩍 달라 붙어 식감이 안 좋아요. 그리고 익힌 쪽이 훨씬 씹히는 맛이 좋고 살이 달아요 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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