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소맥으로 피워 낸 열정.
"이런 질문도 대답 못하세요?"
면접관의 목소리에 담긴 실망감이 회의실을 가득 채웠다. 이마에 송골송골 맺힌 땀이 등을 타고 흘러내렸다. 불과 1년 전, 내 사무실에서 직원들에게 지시를 내리던 그 자신감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새벽 6시 30분, 알람 소리에 눈을 떴다. 전주에서 대전까지, KTX를 타고 가야 하는 첫 개발자 면접날이었다. 정장을 꺼내 입고 구두를 닦았다. 사업할 때 중요한 미팅이 있을 때면 항상 입던 그 정장이었다. 그 옷을 입으면 늘 좋은 일이 있었다.
"이력서 보니까 사업체를 운영하셨네요? 왜 갑자기 개발자로 전향하려는 거죠?"
예상했던 질문이었다. 몇 번이고 연습했던 대답을 꺼냈다. 내 대답에 면접관들은 그저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의 눈에는 '35살에 무슨 개발자냐'는 의구심이 역력했다.
그때부터였다. 기술 질문들이 쏟아지기 시작한 것은.
"MSA 환경에서 Circuit Breaker 패턴을 구현한 경험이 있으신가요?" "Redis의 Pub/Sub과 Kafka의 차이점을 설명해 보세요." "동시성 이슈를 어떻게 해결하셨는지 구체적인 사례를 들어주세요."
독학으로 공부한 지식의 한계가 드러나는 순간이었다. 면접관의 표정은 점점 굳어갔고, 질문은 점점 더 기본적인 것들로 내려갔다. 그들은 내 수준을 테스트하는 것이 아니라, 얼마나 기초가 부족한지 확인하고 있었다.
"아... 네. 잘 모르겠네요."
열 번째 "모르겠습니다" 대답을 하고 있는 내 모습이 초라하게 느껴졌다. 예전에 사업할 때는 모르는 것이 있어도 당당하게 "그건 제 분야가 아닙니다"라고 말할 수 있었는데. 지금은 그저 무지한 지원자일 뿐이었다.
"저희가 연락드리겠습니다."
모두가 아는 그 말의 의미. 탈락이다. 정장 재킷을 들고 면접실을 나오는데, 회의실 유리창 너머로 면접관들이 웃는 모습이 보였다. 내가 나가자마자 무슨 농담이라도 했을까?
대전역으로 돌아가는 길, 구두가 발을 쓸어 물집이 잡혔다. 정장은 이제 땀으로 구겨졌다. 개발자가 되겠다고 사업체를 정리한 게 정말 잘한 결정이었을까? 머릿속은 의심과 자책으로 가득했다.
그때 눈에 들어온 간판. '대전 특급 한우'.
"소주 한 병이요. 아니, 두 병 주세요."
혼자 소고기를 굽고, 소주를 소맥으로 만들어 마시며 생각했다. 내 인생에서 가장 창피한 날 중 하나였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소주가 들어갈수록 마음속에 불이 피어오르는 것 같았다.
"개발자가 못 될 이유가 뭐지? 나이? 경력? 그게 뭐라고."
세 번째 소맥잔을 비우며 다짐했다. 3개월 안에 반드시 개발자로 취업하리라. 이 면접관들에게, 아니 나 자신에게 증명해 보이리라. 35살의 늦은 시작이 장점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집으로 돌아오는 KTX 안, 노트북을 꺼내 들었다. 술기운이 아직 남아있었지만, 머릿속은 그 어느 때보다 명료했다.
면접에서 대답하지 못했던 질문들을 하나하나 메모해 두었다. REST API, 클로저, 시간 복잡도... 이것들을 완벽히 이해하고, 설명할 수 있을 때까지 공부하리라. 더 이상 "모르겠습니다"라는 말은 하지 않을 것이다.
전주에 도착해 집으로 돌아오는 택시 안에서, 술에 취한 상태로 GitHub에 새 저장소를 만들었다. 이름은 'revenge-coding'.
"언젠가 다시 만납시다, 개발자 세계."
"Circuit Breaker 패턴이 뭐지?" "Redis Pub/Sub과 Kafka의 차이..." "동시성 이슈 해결 방법..."
모르는 용어들을 하나씩 검색하며 정리했다. 사업을 할 때는 모르는 것이 있으면 누군가에게 물어볼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모든 것을 스스로 해결해야 했다.
"3개월. 3개월 안에 이 모든 것을 마스터하겠다."
무시당했다는 분노보다 더 큰 에너지가 내 안에서 솟아올랐다. 그것은 증명하고 싶은 욕구였다. 내 나이가, 내 배경이 약점이 아니라는 것을.
35살, 개발자로의 여정은 그렇게 진짜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