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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형 은행원 Oct 06. 2019

3주일만에 글을 쓰려니 죽을 맛이다.

그러나 얻은 것이 있다. 전에는 몰랐던 하나의 가능성이다. 

4년 전 이야기다. 연말에 지점장이 부르더니 과거 1년 동안의 사진을 모아서 동영상을 만들라고 하는 것이 아닌가. 송년회에 그 동영상을 틀겠다는 것이다. 그전까지 나는 동영상 같은걸 한 번도 만들어 본 적이 없었다. 그러나 못한다고 할 수 없었다. 실적을 못하면 이런 거라도 넙죽넙죽 잘해야 하는 법이니까. 퇴근한 다음 늦게까지 네이버에서 동영상 만드는 방법을 찾은 다음 동영상을 만들었다. 처음에는 하기 싫어 죽겠었는데 하다 보니 재미가 있었다. 동영상이 다 만들어진 다음 몇 번이고 다시 틀어봤다. 내가 만들고 내가 보면서 키득거렸다.


그것이 꼬리표가 되어 지금까지 계속 따라다니게 될 줄은 몰랐다. 연례행사처럼 주기적으로 동영상을 만들라는 지시가 내게 떨어진다. 그리고 그때마다 막내 녀석은 자신은 동영상을 만드는 방법은 커녕 유튜브가 뭔지도 모른다는 표정으로 나를 쳐다봤다. 어쩔 수 없이 나는 업무 후 피시방에 가서 작업을 하곤 했다. 물론 거기에는 어떤 수당도 없었다. 짜증이 났다.

 

그러다 얼마 전 사내 UCC 공모를 우연히 보게 되었다. 그 공모를 보게 된 것은 UCC라는 단어 때문이었다. UCC라니... 아직까지 이런 석기시대의 단어를 사용하는 사람이 있단 말인가... 그리고 도대체 누가 얼마나 할 일이 없으면 UCC 같은걸 만들어서 사내 게시판에 올릴 생각을 한단 말인가.


비웃음이 절로 나왔다.




나였다. 


며칠 뒤에 보니 내가 그 짓을 하고 있었다. 얼마 되지도 않은 여가 시간을 모두 쏟아 넣어 각본을 쓰고 녹화를 하고 편집을 하고 있었다. 시간을 낭비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예전부터 하고 싶었던 이야기가 있었다. 나는 회사에 그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었다. 처음에는 8시간이면 될 줄 알았다. 그 정도 시간을 투자해서 맹렬히 동영상을 몇 편 만들어 올리고 땡치는 것이다. 그리고 다시 이전에 쓰던 글을 쓰기 시작하면 되리라 생각했다. 운이 좋아서 우승이라도 하면 해외여행 상품권을 받을 수 있다.


그런데 생각보다 시간이 많이 걸린다. 그 짤막한 영상 몇 편 만들어 올리는데 3주일이 걸렸다. 그 시간을 쏟아넣고도 허접했다. 그런데 마음에 들었다. 몇 번이나 다시 봐도 재미있다. 나는 내 글과 동영상에 한없이 너그러운 그런 사람인가 보다. 그래서 나는 내 동영상에 '좋아요'를 눌렀다. 그럼에도 내 '좋아요' 숫자는 모두 합쳐 10개를 넘기지 못한다. 대체 사내 UCC 공모전에 청룡영화제에서나 볼법한 동영상을 올리는 사람들은 도대체 뭐하는 사람들인지. 당신들 그렇게 할 일들이 없으세요?라고 묻고 싶지만 나도 그중 하나이므로 차마 물어볼 수는 없었다. 게다가 그 모두가 잘생기고 예쁘며 목소리도 낭랑하다.


공모전 마지막 날까지 내가 수상을 할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했었다. 참가자도 등재된 동영상도 별로 없었기 때문이다. 내 착각이었다. 모든 UCC 공모전 참가자들이 마지막 날까지 가장 잘 만든 동영상을 숨기고 있다가 밤늦게 등재한 것이다. 3주간의 노력은 아주 약간의 보람과 많은 쪽팔림만을 내게 남긴 채 허공으로 사라져 버릴 것 같다. 사내 UCC담당자들은 이런 사태를 이미 예상했던 것인지 삭제 버튼 같은 건 만들어 놓지도 않았다. 그 동영상들은 앞으로 영원히 회사 홈페이지에 남아 나를 쪽팔리게 할 것이다. 방대한 내 쪽팔림 연대기의 한 페이지가 더 늘어버렸다. 




UCC를 등재한 다음 날 컴퓨터에 앉아 브런치를 실행했다. 3주일 만이다. 전에 쓰던 글이 어디까지였더라? 기억도 나지 않는다. 오랜만에 글을 쓰니 단어 하나하나를 쓰는 것도 곤욕이다. 몸을 비비 틀며 앉아 있다가 영화를 한편 보았다. 의자에 엉덩이를 붙이기 무섭게 다시 일어나 슬리퍼를 신은채 정처 없이 여기저기 쏘다녔다. 그래도 글이 잘 안 나온다. 3주라는 시간을 통으로 잃었다. 줄줄이 나오던 이야기가 맥락을 잃었다. 글을 쓰며 느꼈던 기쁨이 무엇이었는지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러나 하나 얻은 것이 있다. 전에는 몰랐던 하나의 가능성이다. 나는 오래전 내가 글 쓰는 것을 좋아한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리고 35살이 저물어가는 이 시점에야 나는 내가 동영상을 만드는 것도 그만큼이나 좋아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이다. 이것은 또 하나의 가능성이다. 그리고 이 가능성은 열린 결말을 가지고 있다. 그 끝에 무엇이 있을지 아무도 모르는 것이다. 실현 가능성은 극히 희박할지 몰라도 이 가능성들에는 상방 한계가 없다.


나는 내가 발견한 이 보잘것 없는 가능성을 소중히 잘 간직할 생각이다.




막차는 10년 전에 떠났다는 이야기를 많이 듣는다. “고도성장은 끝났고 그 후폭풍처럼 따라붙었던 부동산 폭등의 시기도 지났다. 사회 전반적인 엔트로피가 늘어났다. 사회구조가 고착화되었다. 부의 계층을 이동할 수 있는 문은 갈수록 좁아지고 있다.”라는 이야기다. 그리고 여기에는 약간의 후렴구 같은 것이 따라붙는다. “그러나 아직 완전히 문이 닫힌 것은 아니다. 아직 가격 수준이 낮은 서울의 부동산들이 남아있다. 미친 듯이 뛰어가면 그 막차의 마지막 칸 정도는 탈 수 있다. 그러니 너는 뛰어라. 미친 듯이.”라고.


나는 이런 이야기가 불편하다. 사회 전체가 내가 성취할 수 있고 축적할 수 있는 가능성의 정도를 예단하고 제한하는 것 같다. 내가 행복해질 수 있는 방법은 하나뿐인데 - 그 방법은 지들이 안 먹고 버린 서울의 허접하기 짝이 없는 싸구려 아파트를 내가 주워 먹는 것이라고 강요한다. 선발주자인 자신들이 무조건 옳으므로 후발주자인 나는 닥치고 자기들 말에 따르라고 억압한다. 그리고 내게 말한다. 너는 안된다고. 너는 늦었고, 패자고, 뭘 해도 안될 거라고.


이 거대하고 어두운 이야기 앞에서 내가 발견한 그 가능성들이 위안이 되어 준다. 내가 발견한 가능성이 아무리 보잘것없고, 허무맹랑한 나의 자만심으로 왜곡되어 있다고 할지라도 말이다. 이 가능성들이 있어 나는 그 모든 진부하고 거만한 이야기들에 대하여 "상관 없고, 관심 없고, 너님 다 쳐드세요."라고 말할 수 있다. 이렇게 말할 수 있어 기쁘다.




언제인가 회식자리에서 술을 먹고 기고만장해진 내가 이런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회사에 맹목적으로 충성하지 말라고. 회사를 떠나서도 안전한 무언가를 구축해야 한다고. 지금 그것을 가지고 있지 않다면 그 가능성을 찾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혹시 이미 그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면 아끼지 말고 시간과 노력을 쏟아 넣으라고 말이다. 꽤 높은 직위의 상사가 함께한 자리였다. 정말로 위험천만한 발언이었다. 나를 포함한 모두가 만취한 상태라 다행이었다. 하지만 그 만취한 상태에서도 모든 사람이 내 말에 귀를 기울이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한참 후 내 옆에 앉아있던 사람이 내게 물었다. 자신이 가진 가능성은 어떻게 찾는 거냐고. 자신은 그것을 도저히 찾을 수 없었다고 했다. 나는 대답했다. 


"비밀"이라고.


그딴 방법 나도 모르기 때문이다. 간헐적인 일탈과 시행착오에서 찾아지는 것인지도 모른다. 아니다. 어쩌면 그 가능성이 그냥 자기 내키는 대로 주인에게 찾아가는 것인지도 모른다. 우연인지, 필연인지 모르겠다. 그러나 확실한 것은 하나 있다. 자기가 가지고 있는 가능성에 대해 하나라도 인지하고 있는 사람이 매우 적다는 것이다.


정말로 많지 않다. 지금도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자신이 가진 가능성을 찾고 싶어 하고, 거기에서 삶의 의미를 찾고 싶어 한다. 그런데 그것을 찾는 방법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알려진 것이 없다. 그만큼 희소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므로 만약 당신 스스로가 좋아하고, 잘할 수 있다고 느끼는 무언가가 있다면 그것은 정말로 커다란 축복이 아닐 수 없다. 그것이 글이건, 동영상이건, 음악이건, 코딩이건, 그래픽이건, 운동이건 혹은 그 무엇이건 상관없다. 


나는 브런치에서 이 글을 읽고 있을 당신에게는 분명 그런 가능성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삶이 아무리 팍팍할지라도 그 가능성이 당신에게 위안이 되기를 바란다. 당신이 가진 가능성이 삶의 매 순간마다 견디기 어려운 질투심과 좌절감을 유발한다고 할지라도, 그 가능성이 거추장스럽게 당신을 옳아 멘다고 할지라도, 그 가능성이 현실화되어 당신 앞에 나타날 확률이 숫자로 표현될 수 없을 정로로 희박할지라도 말이다. 이런 가능성은 모든 사람에게 허락된 것이 아니다. 마땅히 감사해하고 그에 합당한 애정과 관심을 계속 주어야 한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머지않아 그것은 죽어버릴 것이다. 그리고 당신은 남은 생을 그것 없이 홀로 살아가야 한다.




얼마 전 구독하고 있는 한 브런치 작가가 직장을 그만둔 이야기를 읽었다. 글을 읽으면서 오래 전의 기억이 떠올랐다. 내가 계약직으로 일하던 시절에 계약기간이 만료된 날의 기억이다. 최초에 1년만 계약직으로 일하면 정규직으로 전환이 될 거라는 약속이 있었다. 그러나 HR에서는 그딴 약속 존재하지도 않았다는 양 1년만 더 계약직으로 일해달라고 이야기했다. 구구절절한 사정이 있었지만 기억나지 않는다. 지금 기억나는 건 내가 느꼈던 수치심과 배신감 그리고 암담함 뿐이다.


비슷한 상황이었던 것 같다. 그녀의 글은 담담했지만 그녀가 느꼈을 분노와 실망감과 두려움이 내게도 느껴졌다. 그녀가 그딴 쪼다 같은 놈들 때문에 마음 상해하지 않기를 바란다. 수치심은 응당 그들이 느껴야 마땅한 것이었다. 그녀의 글에는 다른 곳에서 찾아보기 힘든 독특한 라임이 있다. 나는 그녀의 글에서 용기와 위안을 얻었고 가끔 웃기도 했다. 나는 그녀가 자신이 가진 가능성을 대하는 모습을 보며 분명 무럭무럭 자라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녀와 그녀의 가능성 모두 말이다. 이토록 반짝반짝 빛나는데 잘되지 않을 리가 없다. 그녀의 가능성이 그녀에게 위안이 되기를 바란다.

두려워하지 마시길- 이 좋은 날씨에 산책도 실컷 하고 남편분과 정다운 시간 많이 가지시길- 이 글을 보고 풉 하고 웃더라도 라이킷은 누르고 가시길 바랍니다. 저도 낑낑거리며 쓴 이 글을 용기를 내어 발행한 다음 - 내일은 일단 좀 쉬고 - 내일 모레부터 다시 열심히 글을 쓰도록 하겠습니다. 




글이 작품이 되는 공간, 브런치에 'B형 은행원'이 쓴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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