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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형 은행원 Jan 06. 2021

승진에 떨어져 지랄 같은 날에..

2021년 나는 승진하지 못했다.

나는 내가 고작 승진을 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아플 것이라 생각하지 않았다.


그렇지 않았다. 내가 승진 대상자 명단에서 빠져있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아팠다. 더럽게 아프고 지랄 같아서 온몸에 분노가 차올랐다. 그것은 참으로 다시는 경험하고 싶지 않은 지랄 같은 순간이었다. 나는 내게 권리가 있다고 생각했다. 나는 실적이 좋았다. 올해만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다. 지난 3년 실적이 계속 좋았다. 그러므로 나는 내게 권리가 있다고 생각했다.


나는 데이터를 다루는 사람이다. 나는 데이터를 바탕으로 실적을 만든다. 나는 꽤 여러 번이나 내가 속한 그룹의 실적을 수도권 1위, 전국 1위로 끌어올린 적이 있다. "말씀만 하십시오. 제가 그것을 1위로 끌어올리겠습니다."가 나의 모토였다. 사실 어렵지도 않았다. 요령만 알고 있다면 어렵지 않게 만들 수 있는 결과물들이었다. 그러나 그 요령을 알지 못하는 사람은 쉽게 만들어 낼 수 없는 결과물이었다. 그러므로 나는 내게 권리가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2021년 나는 승진하지 못했다. 승진한 동료들에게 축하의 인사를 건네지도 못하고 나는 집으로 돌아왔다. 사무실에서 아무렇지 않은 척했지만 그렇지 않았다. 복장이 뒤집혀 목구멍에서 위장 맛이 나는 것 같았다.

 



집으로 돌아와 설거지를 했다. 생각을 정리하기에 충분하고도 넘칠 정도로 설거지 거리는 많았다. 설거지를 하며 나는 조던 피터슨이 산상 수훈에 관해 적은 글을 오디오 북으로 들었다(혹시나 궁금할까 봐 덧붙이자면 "12가지 인생의 법칙"이란 책 중 법칙 4에 관한 부분이었다).


그것이 설거지를 하며 오래도록 손을 물에 적시고 있어서였는지, 혹은 예수님이 오늘의 나를 긍휼히 여겨 2천 년 전 남겨주셨던 문장 때문인지, 그것도 아니면 그냥 내가 조던 피터슨을 좋아하기 때문인지는 알 수 없다. 설거지를 마치고 수세미의 물기를 짜낼 즈음에는 분노가 가라앉았다. 마음이 차분해졌다.


나는 내가 짜증 난 이유를 곰곰이 생각해보았다. 내가 짜증 났던 이유는 내가 나보다 못하다고 생각했던 사람이 나보다 먼저 승진을 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가 승진한 이유를 다시 한번 곱씹어 보았다. 어렵지 않게 이유를 생각해 낼 수 있었다. 그는 성실했다. 친절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겸손했다. 그는 유능하고 겸손했다.


나는 그와 상반되는 나의 면면들을 찾아낼 수 있었다. 나는 더 많은 것을 할 수 있음에도 안주했다. 이만하면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그리하여 새로운 것을 더 시도할 수 있었음에도 그렇게 하지 않았다. 업무시간에 여유가 생길 때면 딴짓을 하곤 했다. 내가 응당 지원하고 도움을 주어야 하는 사람들이 도움을 요청할 때 나는 친절하지 않았다. 적당히 봐서 뭉개거나 임기응변식으로 때우곤 했다. 그래도 괜찮다고 생각했다. 나는 도움을 주는 사람이지 받는 사람이 아니니까. 물론 나는 함께 근무하는 직원들을 배려하지도 않았다. 화합하지 않았고 그럴 필요도 없다고 생각했다. 그래도 괜찮다고 생각했다. 실적이 좋았으니까. 유능했으니까.


나는 유능했고 오만했다. 그래서 가끔은 깽판을 쳤고, 그 값을 내가 치를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다. 그렇지 않았다. 내가 친 깽판의 값은 온전히 나의 몫이었고 결코 저렴하지 않았다.




나는 언제인가 "공감"이라는 책을 사서 읽은 적이 있었다. 당시는 내가 세상 대다수의 사람들에게 쉽게 공감을 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어렴풋하게나마 깨달았던 시절이었다. 그때 나는 다른 사람의 아픔이나, 기쁨을 공감하는 능력이 일종의 엑셀 활용 능력과 비슷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참 유용할 것이라고 생각했고 책을 사서 읽어 배울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렇지 않았다. 애석한 일이다. 그 책을 읽고 공감하는 능력을 얻었다면 지금의 결혼생활이 이토록 어렵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삶의 다른 부분들- 특히 대인관계가 훨씬 쉬웠을 것이다.


그럼에도 지금 나는 "겸손함"이라는 책이라도 사다가 읽고 싶은 심정이다. 승진에 떨어진 날 설거지를 하면서 느낀 일시적인 깨달음이 결코 내 삶에 영구적인 변화로 작용하지 못할 것임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설사 그런 책이 있다 하더라도 별 소용은 없었을 것이다. 삶은 엑셀과 다르다. 책으로도, 인터넷으로도, 때로는 깨달음으로도 배울 수 없는 부분이 있는 것이다.


그러나 내게는 "아픔"이라는 책이 있다. 승진에 떨어져 한번 더럽게 아프고 나니까 비로소 보이는 것들이 있다. 불과 2일 전만 해도 나는 고작 승진에서 떨어졌다는 이유로 힘들어하는 직원들에게 공감할 수 없었다. 그러나 지금은 그들이 지금 얼마나 아플지 절절히 공감할 수 있다. 마찬가지로 나는 어쩌면 내가 앞으로 살아갈 모든 날들에 "겸손함"이 13% 정도 더 늘어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하고 있다. 겸손함이 삶에 있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절절히 느껴보았으니까. 만약 그럴 수 있다면 어제 내가 느낀 아픔이 결코 내게 손해는 아닐 것이다.




생각해보면 나는 살아오면서 꽤나 많은 "아픔"이란 책을 읽었다. 이루어지지 못한 사랑, 회신이 없는 입사지원서, 돈에 대한 걱정 같은 것들이 그 책의 주제였다. 나는 아픔이란 책을 좋아한 적이 단 한 번도 없었지만 인정할 수밖에 없다. 결국 삶을 바꾸고 앞으로 나아가게 했던 가장 본질적인 요소가 아픔이었단 것을.


삶이란 어쩌면 터무니없이 간단한 것인지도 모른다.

가끔씩 아픈 것.

그리고 그때마다 앞으로 나아가는 것.


https://www.youtube.com/watch?v=Y_x5SGvPTY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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