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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형 은행원 Apr 16. 2022

그러나 우리는 모두 신의 악기

책을 덮고 노래를 불러야 할 시간이다.

술을 마셨다. A가 악기를 연주하고 싶다고 했다. 이 도심에서 악기를 연주할 수 있는 곳은 교회와 7080이 유일했다. 이렇게 만취한 채 생면부지의 교회에 찾아 들어가 악기를 연주할 수 있을 리 없었다. 영업을 하고 있는 7080도 없었다. 모두가 흩어져 집으로 돌아가려는 순간 A가 라이브카페를 찾아냈다. 우리가 이날 라이브카페에 갔던 것은 A가 그곳에서 악기를 연주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거리마다 가게마다 사람이 가득했지만, 이곳은 텅 비어 있었다. 나는 밴드와 피아노를 생각했었는데 그보다 훨씬 단출했다. A가 연주하고 싶어 했던 악기는 무대에 없었다. 아마 있었다고 해도 연주를 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무대에는 이미 주인공이 있었으니까. 무대에는 내 또래의 뮤지션이 홀로 기타를 치며 알지 못할 노래들을 부르고 있었다. 뮤지션은 잘생기지 않았고, 성량이 풍부하지도 않았다. 평범했다. 그래서 우리는 뮤지션의 노래를 듣지 않았다. 아무도 그의 노래를 듣지 않았다.


우리는 맥주를 마시며 좋은 일들에 관한 이야기를 했다. 최근 공단 내 공장 가격이 급등하고 있었다. 넘쳐나는 유동성과 가계대출 규제가 결합하여 빚어낸 현상이었다. 지난 2개월 동안 공장 시세가 50% 급등했다. 우리는 또 비트코인과 골프장 회원권에 대해 이야기를 했고 상장사 소유주 자녀와 결혼한 직원에 대해 이야기를 했다. 모두가 좋은 일이었다. 왜냐하면 내 주변에는 좋은 사람들이 꽤 많이 있는데 앞서 언급한 이야기들은 모두 그들에게 일어난 좋은 일들이었기 때문이다. 내 주변의 좋은 사람들이 잘된다는데 좋지 않을 리가 없다.


이상하게도 마음이 편치 않았다. 마음이 질시와 물욕으로 탁하게 물들어 가는 것이 느껴졌다. 더 이상 이야기를 듣고 싶지 않았다. 나는 핸드폰을 열고 책을 읽었다. 책을 두 페이지 정도 읽고 고개를 들었을 때 보기 힘든 광경이 눈에 들어왔다. 창밖에서 젊은 남녀가 입을 맞추고 있었다. 가벼운 입맞춤이 아니었다. 나는 술에 취했고 심란한 상태였다. 그런 장면을 보고 싶은 상황이 전혀  아니었다.


그런데 하필이면 그 창문이 무대 바로 옆에 있었다. 가까웠다. 가게 안은 어두웠지만, 그들이 있는 장소는 밝았다. 그래서 바라보지 않을 도리가 없었다. 누군가 그 모습을 바라보며 “좋은 시절이다.”라고 이야기했다. 나는 내 삶의 좋은 시절을 곰곰이 생각해보았다. 나의 좋은 시절은 그리 좋지 않았다.


질시와 물욕으로 탁해진 마음에 성욕까지 비집고 들어왔다. 그것들이 뱃속의 술과 섞이면서 분노와 질투심이 불길처럼 타올랐다. 나는 이 카페가 조금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이곳은 내가 갖고 싶지만 가질 수 없는 것들, 내가 가질 수 있지만 허락되지 않은 것들로 가득한 시궁창 같은 곳이었다. 가장 좋은 상태에서도 이런 것들을 정직하게 마주하기는 쉽지 않다. 나가고 싶었지만 먼저 일어날 명분이 없었다. 그래서 맥주를 뱃속에 쏟아 넣었다.




그때 누군가 노래를 한 곡 신청했다. 뮤지션은 곡명을 받아보고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모르는 곡인 것이 분명했다. 그는 잠시만 기다려 달라고 한 다음 그 음악을 잠시 동안 주의 깊게 들었다. 그리고 악보를 보며 그 노래를 어찌어찌 불렀다. 그는 자신이 모르는 노래가 많기 때문에 가급적 신청 곡을 많이 써달라고 요청했다.


잠시 후 두 번째, 세 번째 신청 곡이 나왔다. 이번엔 그가 아는 곡들이었다. 세번째 신청곡을 연주할 때 앰프가 고장이 났다. 연주가 잠시 중단되었다. 뮤지션은 미안하다고 한 다음 앰프 없이 다시 연주를 시작했다. 마이크를 거치지 않은 그의 목소리가 가게를 가득 채웠다.


듣기 좋았다. 어느덧 가게에 있는 사람 모두가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다음 신청 곡이 나왔다. 그가 웃으며 “20대 이후로 이렇게 해보긴 처음이네요.”라고 이야기 하고 뒤의 서랍을 뒤적이더니 하모니카를 꺼냈다. 그가 하모니카를 불었고 기타를 연주했다. 그리고 김광석의 [일어나]를 부르기 시작했다. A가 브라보를 외쳤다.




전단지를 들고 밖으로 나간 사장님은 가끔 손님을  데리고 오기도 했다. 그러나 대부분의 자리는 여전히 텅텅 비어있었다. 게다가 전단지를 뿌려서 데리고 온 손님들은 무례했다. 자신들 앞에서 노래를 부르는 존재가 스피커가 아닌 인간이라는 사실을 알지 못하는 것 같았다. 땅콩이 바삭하지 않다고 언성을 높였고 팁을 주지도 않았다. 이 가게가 얼마나 버틸 수 있을지 모르겠다. 1년? 6개월? 어쩌면 3달도 어렵지 않을까?


그는 텅 빈 객석을 바라보며 자신이 알지 못하는 노래를 불렀다. 앰프가 터진 다음에는 생목으로 노래를 불러야 했다. 그때 그 뮤지션의 마음속을 채운 감정이 무엇인지 나는 알지 못한다. 좌절이나 슬픔은 아니었다. 그런 것이 아니었다. 그의 노래에는 삶을 대하는 겸손한 태도와 애정이 담겨있었다. 아직 꿈을 잃어버리지 않은 사람의 냄새가 배어 있었다.


성량이 풍부하지 않다. 잘생기지 않았다. 평범했다. 그러나 그는 무대에 섰다. 삶이 던져대는 온갖 지저분한 시련을 의연하게 마주했다. 노래를 불렀다. 정말이지 듣기에 좋았다.


알고 있었다. 다만 잊고 있었다. 나의 좋은 시절이 사실은 꽤 좋았었다는 사실을. 그때 내게는 정말 많은 꿈들이 있었다. 일기장을 넘쳐흐르던 꿈들, 도서관의 책보다도 훨씬 빼곡히 쌓였던 꿈들, 라디오를 틀 때마다 흘러나오던 꿈들. 설레고 달콤하고 몰랑몰랑했던 그 모든 꿈들이 나를 가득 채웠다. 그 중 어떤 것들은 지금까지도 살아남아 내 안에서 일렁이고 있었다. 좋았다.




밤이 깊었고 집으로 돌아가야 할 시간이었다. 그러나 우리는 모두 신의 악기. 잃어버렸던 꿈들이 내 안에 일렁이고 있었다. 책을 덮고 노래를 불러야 할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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