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인은 어째서 위험회피적인가?
지구인이 경제시스템을 운영하는 방법
나임이 처음 지구에 와서 가장 놀란 것은 경제를 다루는 지구인들의 방식이었다. 지구인들은 시장(Market)이라는 시스템을 이용하여 자신들이 가진 자원을 배분하고 사용한다. 시장이란 곧 경제를 의미한다고 할 정도로 지구인들은 자신들의 경제 문제를 시장에 전적으로 의존하며 살아간다. 시장은 지구인들에게 있어서 투표라는 정치 시스템과 함께 삶을 운명 짓는 가장 거대한 운영시스템이라고 할 수 있다. 제정신을 가진 보고인들이라면 이것이 얼마나 미친 짓인지 알 것이다. 시장에 인격이 없기 때문이다. 지구인들은 자신의 운명을 인격도 형태도 없으며 따라서 책임도 질 수 없는 무형의 시스템에 온전히 내맡기고 있는 것이다. 그 결과 극심한 빈부격차와 주기적인 경제시스템 위기는 지구인의 피할 수 없는 숙명이 되었다. 반면 보고인들은 훨씬 우아한 방법으로 자신들의 경제시스템을 운영한다. 보고인들은 은하계에서 가장 현명한 생명체(이하 은.현.생)를 몇 마리 잡아다가 자신들의 행성의 경제를 작동하는 데 사용한다. 그리고 모든 보고인들은 경제시스템이 불만족스럽다고 판단을 할 때면 이들을 한 명씩 산채로 불태워버릴 수 있는 양도 불가한 권리를 가지고 있다. 이로 인해 보고인들은 지구인들과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안정적이고 합리적인 경제시스템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지구인들이 자신들의 경제시스템을 전적으로 시장에 의지하는 것을 무작정 미련하다고 비판할 수만은 없다. 지구인들은 아직 항성 이동 수단을 발명하지 못했고 따라서 은.현.생을 잡아 오고 싶어도 방법이 없는 것이다. 은.현.생이 없기에 지구인들 스스로가 직접 경제시스템을 운영하고자 했던 시도했던 적이 있었다. 하지만 은.현.생의 지성 비하면 지구인 단일 개체의 전두엽은 티끌 조각에 불과하다. 지구인이 스스로 경제 시스템을 운영하려는 시도가 최근까지도 러시아와 중국에서 있었지만 이런 시도들은 괴멸적인 타격을 초래한 채 실패로 끝나곤 했다. 그것에 비하면 시장이라는 무형의 주체에게 경제시스템을 운영할 전권을 부여하고 이로 인해 발생하는 주기적인 경제시스템 오작동 정도는 감수해야 한다는 것이 지구인들이 경제를 다루는 방식이다. 즉 시장이란 지구인들이 자신들의 제한된 능력과 자원에도 불구하고 지속적으로 지구 위에서 생존하기 위해 만들어낸 경제 운영시스템인 것이다.
지구상에는 수없이 많은 시장이 존재한다. 그리고 그 모든 시장은 금융시장을 통해 하나로 연결된다. 이는 지구 상에 존재하는 대다수의 시장에서의 거래가 돈이라는 매개체를 통해서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금융시장이 다른 모든 시장을 지배한다. 금융시장에서 거래되는 주요 상품은 돈 그자체이거나 미래에 이행될 것으로 기대되는 약속들이다. '앞으로 3개월 후에 1,000만 원을 드릴게요.', '앞으로 영원히 제가 벌어들일 수익의 0.0032%를 드릴게요.', '앞으로 4년 동안 환율이 하락하는 폭에 20억 원을 곱한 값을 드릴게요.' 같은 약속이다. 지구인들은 이런 약속들은 종이에 적어서 거래하며 이렇게 종이에 적힌 약속들을 증권이라고 한다. 그리고 최근에는 대다수의 증권들이 전산화되어 실물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 경우가 대다수이다. 보고인들은 도대체 데이터화 된 약속이나 종이조각들이 과연 무슨 가치가 있으며 누가 그딴 것을 사려고 할지 궁금할 것이다. 심지어 이런 약속을 하는 주체 또한 주식회사라는 실체가 존재하지 않는 가상의 인격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러나 지구인들은 종이에 적힌 약속이 지켜지도록 강제할 수단과 함께 거래 시스템을 지속적으로 발전시켜왔다. 이런 방법은 전세계적으로 표준화되었으며 꽤 효과적으로 작용한다. 그리고 약속을 한 주체와 금액, 형태, 도래시기 등을 통해 종이조각의 가격을 산정하는 방법을 끊임없이 개발하고 있다. 어떻게 보면 당연한 일이다. 지구인들이 자신들의 경제시스템을 시장이라는 시스템에 전적으로 의존하고 있으며 모든 개별시장들은 금융시장에 종속되어 있기 때문이다. 금융시장이 더 이상 작동하지 않을 때 지구인들은 생존할 수 없다. 금융시장에서 거래되는 것은 형체조차 없는 약속들뿐이지만 금융시장은 지구의 경제 시스템 그 자체를 의미한다. 지구에서 가장 거대한 시장은 무기 시장도 의식주 시장도 아니다. 금융시장이다.
지구에서 부자가 되기 위해서 금융시장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리고 금융시장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지구인의 의사결정 체계에 대해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 금융시장이란 지구인들이 만들어내는 수백, 수천만 개의 거래들을 집계하여 가격을 만들어내는 시스템이기 때문이다. 각각의 개별거래를 만들어 내는 것은 지구인이며, 지구인들을 움직이는 것은 그들의 마음 혹은 마음속에 들어있는 무언가다. 그러므로 금융시장을 이해한다는 것은 지구인들의 마음속에 무엇이 들어있는가를 이해하는 것과 같다.
지구인의 마음 가장 깊은 곳에는 무엇이 들어있나
지구인의 마음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들의 뇌 구조를 이해할 필요가 있다. 인간의 뇌는 일종의 층계 구조를 이루고 있다. 깊이 내려갈수록 본능에 가까운 기능을 담당하는 기관이 존재한다. 뇌의 가장 깊은 부분은 움직임과 감각을 담당한다. 그리고 중간 부분에는 감정을 담당하는 부분이 존재하며, 가장 윗부분에는 이성을 담당하는 부분이 존재한다. 이는 인간의 진화 과정과 관련이 있을 것이다. 지구인은 최초에 단순한 운동기능만을 가진 해파리 비슷한 존재에서, 감정을 가진 생쥐 같은 존재로 그리고 마지막으로 덧 샘과 뺄 샘을 할 수 있는 원숭이로 차례차례 진화해온 것이다. 그리고 그때마다 지구인의 뇌는 한층 한층 쌓여 현재의 복합적인 구조를 이루게 되었다. 지구인들은 자신들이 지성체인 양 거들먹거리지만 사실 그들이 가진 뇌의 이성적 기능은 의사결정에 그다지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 일전에 나임은 감정을 담당하는 뇌 부분을 사고로 잃은 한 지구인의 이야기를 읽은 적이 있었다. 당시의 과학자들은 감정처럼 미개한 기능을 잃은 인간은 오로지 이성에 의지하여 더 합리적으로 의사 결정하고 행동할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아니었다. 감정을 잃은 지구인은 선택 자체를 하지 못하게 되어버린 것이다. 그는 자신이 먹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 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 무엇을 입을지 결정을 할 수 없게 되어 버렸다(출처 확인 필요). 이는 지구인이 이성적이라고 생각하며 내리는 거의 모든 결정조차도 실제로는 감정이라는 사실상의 지배자에 의해 좌우된다는 것을 보여준다. 모든 지구인에게 매일 같이 강림하는 지름신은 미약한 이성에 비해 감정이란 얼마나 파괴적인 폭군인지를 보여주는 실질적인 증거다. 경제란 결국 심리라는 유명한 말이 있다. 이는 개별적이든 집단적이든 지구의 시장시스템을 움직이는 가장 중요한 요소가 지구인의 감정이라는 뜻이다. 그렇다면 지구인들은 무엇을 느끼는가? 그들의 감정의 가장 깊은 곳은 무엇으로 이루어져 있는가 하는 문제가 남는다.
이것을 알아보기 위해 나임은 주변의 지구인들과 점심을 먹으면서 종종 "당신의 감정 가장 깊은 곳에는 무엇이 들어있나요?"라는 질문을 하곤 했다. 이는 지구에서 마주하는 가장 중요한 질문 중 하나임에도 불구하고 지구인들인 이 질문에 관심이 없었다. 심지어 나임이 점심을 샀을 때조차 이 질문에 대한 지구인들의 일반적인 반응은 다시는 너처럼 이상한 사람과 밥을 먹지 않겠다는 것에 가까웠다.
몇 번의 시행착오 후 나임은 질문에 문제가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임은 질문을 바꾸었다. 질문의 요지는 이렇다. "어느 날 당신이 로또에 100억 원에 당첨되었다. 주머니에 100억 원을 넣고 집에 가고 있는데 천사가 나타나서 동전 던지기 게임을 제안한다. 만약 앞면이 나오면 내 100억 원을 천사에게 준다. 만약 뒷면이 나오면 천사가 내게 110억 원을 준다. 간단한 사고 시험인 만큼 이 게임은 그 어떤 속임수나 거짓도 존재하지 않으며 동전은 정확하게 50%의 확률로 앞면이 나온다고 가정을 해보자. 천사와 동전 던지기 게임을 할 생각이 있는가? 힌트를 준다면 이 동전 던지기 게임의 기대이익은 +5억 원이다."
나임에게 이 질문을 받은 모든 지구인들은 그딴 내기를 할 생각이 없다고 대답했다. 심지어 매주 로또를 사고, 와이프 몰래 경마장을 다니며, 신용대출을 받아서 주식을 사는 사람까지 말이다. 그런 사람들조차 천사와의 100억 원 빵 동전 던지기 내기를 하지 않겠다고 했다. 그 이유를 물었을 때 답은 "너라면 하겠냐?"라는 것이었다.
글쎄 나임이라면 할 것 같은데- 합리적인 보고인이라면 대다수가 내기를 하겠다고 대답했을 것이다. 동전 던지기 게임의 기대이익이 +5억 원이기 때문이다. 나임의 마음 가장 깊숙한 곳을 지배하는 감정은 탐욕이다. 그러므로 기대이익이 (+)인 내기는 마다할 이유가 없다. 그러나 지구인은 그렇지가 않다. 나임은 지구인들이 기대이익을 산출하는 방법을 모르는 것은 아닐까 생각했지만 그것은 아니었다. 그렇다면 유일한 설명은 인간의 마음 가장 깊숙한 곳에 공포가 있다는 것뿐이다. 평소에 인간은 점잖은 척, 용감한 척, 아무렇지 않은 척을 하지만 결정적인 순간 지구인의 마음을 지배하는 것은 공포심이라는 것이다. 이것은 지구에 존재했고 지금도 존재하는 사회 대부분에서 극도의 소수 인원이 압도적인 다수를 그토록 효과적으로 지배하고 통제할 수 있는 것 까지 설명할 수 있다. 지구인의 마음속 가장 깊은 곳에 공포심이 있고, 이 공포심이 지구인의 행동을 지배한다. 이러한 지구인의 특성은 그들의 기원과 그들의 진화 방향을 생각하면 이해하지 못할 것도 아니다.
최초의 지구인은 세렝게티 초원에서 나타났다. 최초의 지구인들은 생존을 하기 위해 급급했다. 그들은 커다란 이빨이나, 날개, 뿔, 근육이 없었을뿐더러 활이나 창, 칼처럼 자신을 방어할 수 있는 수단도 전혀 없었기 때문이다. 가장 연약한 경쟁종조차 육체적인 능력으로는 인류를 압도했다. 험난한 자연환경에서 생존하기 위해서 인류는 오랫동안 아무리 사소한 위험의 낌새에 대해서도 즉각적이고 강력하게 반응하는 인자들을 발전시켜야만 했다. 그렇지 못한 개체들은 대개 살아남기 어려웠다. 모든 지구인의 유전자에는 굵은 글씨로 "위험을 회피할 것"이라고 각인되어 있고 아마도 오랜 기간- 혹은 영원히 이 글씨는 지울 수 없을 것이다. 게다가 인류는 후천적으로 다시 한번 위험을 회피하기 위한 과정을 밟는다. 인류의 역사는 전통 또는 관습에서 벗어난 생각과 행동을 한 사람들을 몰살시키는 과정으로 요약할 수 있다. 위험에 대해 무감각한 특이한 인물들은 극소수를 제외하고는 남들과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추방당하거나, 화형에 처해지거나, 돌에 맞아 죽고는 했다. 지금 이 순간도 거의 모든 학교, 회사에서는 남들과 아주 약간 다르게 행동하게 생각한다는 이유만으로도 수많은 사람이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다. 이런 과정을 통해서 인류는 다시 한번 후천적으로 학습한다. 위험을 최소화할 것. 무리와 달라지지 말 것. 두려워할 것. 지구인의 유전자에 각인된 인자들과 후천적인 학습으로 인해 대다수의 인류는 위험을 좋아하지 않는다.
이것이 나임이 지구인들이 위험회피적이라고 주장하는 이유이다. 그리고 지구를 이해하고 살아남기 위해서는 이점을 분명히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지구인 사회를 지탱하는 가장 중요한 운영체제가 금융시장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금융시장은 지구인들이 만들어내는 수백, 수천만 개의 개별거래들을 통해 형성되는 가격결정 메커니즘이다. 이때 각각의 개별 거래들을 만들어 내는 것은 지구인들의 마음이다. 그리고 지구인들의 마음 가장 깊은 곳에는 공포가 자리하고 있다.
지구인은 위험 회피적이다. 금융은 이 한 줄의 명제 위에서 시작된다.
작가의 말:
지구인이 위험회피적이라는 내용을 설명하기 위해 꽤 많은 분량의 글이 나왔네요.
다음 글에서는 지구인이 위험회피적이라는 사실이 위험과 수익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이야기하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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