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스크 프리미엄은 존재하는가?
이항 지구와 리스크 프리미엄
지구인은 위험회피적이다. 고위험 고수익(High risk, High return)이라는 현상은 지구인 대다수가 위험회피적이기 때문에 발생하는 현상이다. 금융시장도 다른 시장과 마찬가지로 수요와 공급의 법칙이 작용한다. 만약 지구인 대다수가 위험회피적이라면 위험도가 높은 금융자산들은 낮은 수요로 말미암아 더 낮은 가격에 거래될 것이다. 그리고 기대이익이 동일할 때 더 낮은 가격에 거래된 금융자산이 더 높은 기대수익률을 만들어 낼 것이다. 지구인들이 흔히 말하는 고위험 고수익이란 이런 현상을 축약적으로 표현한다.
고위험 고수익을 조금 더 직관적으로 이해하기 위해 훨씬 단순한 행태의 지구를 생각해보자. 이 지구의 이름은 이항(Binomial ) 지구다. 이항 지구는 동전 던지기와 순수한 수학적 법칙들이 지배하는 세상이다. 예를 들어 이항 지구에서 어떤 기업가가 사업을 하려고 한다면 그는 종업원을 고용하거나, 오랜 기간 연구 생산을 하거나, 판매를 하기 위해 노력할 필요가 없다. 기업가는 자본을 조달한 다음 동전을 던지기만 하면 된다. 앞면이 나오면 사업은 성공한다. 동전의 뒷면이 나오면 사업은 실패한다. 이곳에서 동전의 앞뒷면이 나올 확률은 50%로 완벽하게 동일하며 그 어떤 거짓도 속임수도 존재하지 않는다.
이항 지구에는 2개의 사업기회가 존재한다. 첫 번째 사업의 이름은 고위험이다. 고위험이 성공할 경우 200억 원의 수익이 발생하지만 실패할 경우 0원의 수익이 발생한다. 이 경우 고위험의 기댓값은 100억 원이다. 그러나 이 사업 자체는 내재된 위험-자칫하면 투자금을 모두 잃을 수 있다-으로 말미암아 100억 원보다 낮은 가격에 판매될 수밖에 없다. 앞서 지구인들이 위험회피적이라고 이야기했다. 이것은 이항 지구에서도 동일하게 적용한다. 금융시장은 각각의 사업들의 가격을 입찰을 통해 결정한다. 예를 들어 고위험의 가격이 50억 원에 결정되었다고 생각해보자. 이때 고위험의 기대이익은 50억 원이며 기대 이익률은 100%다.
두 번째 사업은 저위험이다. 저위험이 성공을 할 경우 120억 원의 수익이 발생하지만 실패할 경우 80억 원의 수익이 발생한다. 저위험의 경우도 기댓값은 100억 원으로 고위험과 동일하다. 하지만 저위험의 사업은 고위험보다는 훨씬 더 안전하다. 최악의 경우에도 80억 원을 회수할 가능성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만약 저위험의 가격이 80억 원에 결정되었다고 생각해보자. 저위험의 기대이익은 20억 원이며 기대 이익률은 25%다.
지구인들은 위험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들이 위험을 수용하는 것은 충분한 보상이 보장될 때뿐이다. 앞서 고위험의 가격이 50억 원에 결정된 것에 비해 저위험의 가격은 80억 원에 결정된 것을 보았다. 이처럼 지구의 금융시장은 기댓값이 동일하더라고 위험한 사업에 대해 가격을 더 많이 후려치는 방식으로 작동한다. 이를 할인이라고 한다(Discount). 미래의 기댓값이 동일함에도 지구인들은 각기 내재된 리스크에 따라 가격을 다르게 결정함으로써 자신들이 감수할 위험에 대한 보상 체계를 마련한 것이다. 이 차이를 리스크 프리미엄(Risk Premium)이라고 한다. 리스크 프리미엄은 흔히 고위험 고수익(High Risk High Return)이라고 표현되지만 이는 정확하지 않다. 기댓값이 동일할 때 고위험 자산은 저위험 자산보다 더 낮은 가격에 거래되므로 더 높은 이익률을 기대할 수 있다고 표현하는 것이 정확하다(High Risk, Low Price so you may expect Higher Expected Return). 지구인들이 위험회피적이며 이로 인해 고위험 자산이 종국에는 더 높은 기대수익률을 가지게 된다.
리스크 프리미엄은 실재하는가?
문제는 리스크 프리미엄의 개념을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의 금융시장에 리스크 프리미엄이 존재하는가 하는 점이다. 이점을 확인하기는 어렵지 않다. 리스크 프리미엄이 존재하는지 확인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채권과 주식의 수익률을 비교해서 보는 것이다. 주식은 속성상 채권보다 훨씬 위험한 자산군이다. 어떤 기업이 미래에 벌어들일 것으로 예상되는 수익을 예측하기가 매우 어렵기 때문이다. 부동산의 경우 임대료율를 통해서, 채권의 경우 이자율에 따라서 미래의 수익을 상당히 정확하게 예측할 수 있지만 어떤 기업이 미래에 얼마의 수익을 낼 수 있을지는 추측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게다가 주식에 투자하는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보다 자신의 몫을 가장 나중에 주장할 수밖에 없다.
주식의 경우 어떤 기업에서 매출이 발생했을 때 여기서 납품업자에게 물품대금을 지급하고, 근로자에게 임금을 지급하고, 채권자에게 원금과 이자를 지급하고, 정부에 세금을 지급하고 이도 부족해서 향후에 이런 비용을 지급하는데 별다른 지장이 없을 것이라는 사실을 확인한 그다음에야 기업은 수익의 일부를 주식의 소유주에게 지급을 할 수 있다. 따라서 주식이란 잔여이익 청구권이라고 표현되기도 한다. 반면 어떤 기업이 손해를 보거나 혹은 손해를 볼 것이 예상되기만 해도 가장 먼저 손실을 보아야 하는 것이 주식의 소유주들이다. 이런 까닭으로 주식은 모든 자산군 중 가장 변동성이 크며 위험한 자산군으로 분류된다. 이에 반해 채권은 속성상 주식보다는 훨씬 안전한 자산군으로 분류된다. 채권에 투자한 사람들은 자신이 투자한 기업이 파산했을 때 기업의 공장이나 기계를 처분해서 투자원금을 얼마라도 회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아울러 정부가 발행한 채권- 국채는 무위험자산으로 분류되는데 정부의 경우 돈이 없을 때 얼마든지 돈을 더 찍어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가장 위험한 자산군인 주식의 수익률과 가장 안전한 국채의 수익률을 비교해보면 지구에 리스크 프리미엄이 존재하는지 여부를 확인해볼 수 있다는 이야기이다. 우선 미국의 사례를 보도록 하자. 와튼스쿨의 제레미 시겔 교수는 '주식에 장기 투자하라'라는 책에서 무려 210년에 걸쳐 다양한 자산군의 실질 총수익률을 비교하였다. 시겔 교수에 따르면 만약 1802년에 다양한 자산에 투자했다면 2012년 각각의 자산을 통해 얻을 실질적인 가치와 연 환산 수익률은 아래와 같다. 결과부터 말하자면 장기적인 주식의 수익률은 장기국채, 단기 국채, 금을 모두 압도한다.
출처: 주식에 장기 투자하라, 이레미디어(2014), 제레미 시겔 지음, 이건 옮김 / 그래프를 표로 변환하여 인용
미국 이외 다른 국가의 사례를 보도록 하자. 영국의 엘로이 딤슨 등은 낙관론자들의 승리(미래에셋투자교육연구소(2009), 엘로이 딤슨, 폴마시, 마이크 스톤 튼/ 고영태 옮김)라는 책을 통해 세계 각국의 주요 자산별 과거 100년간(1900~2000)의 연환산 실질 수익률을 비교하였다. 사례에 포함된 모든 주요 국가에서 주식의 투자수익률은 장단기 채권의 수익률을 압도한다.
*독일의 경우 1922~1923년 장단기 채권 데이터 제외
출처: 낙관론자들의 승리, 미래에셋투자교육연구소(2009), 엘로이 딤슨, 폴마시, 마이크 스톤튼 지음/ 고영태 옮김
로또에 당첨되어 100억 원을 가진 지구인들은 100억 원 빵 동전 던지기를 하지 않는다. 지구인들이 위험회피적이기 때문이다. 지구인들은 위험회피적이기 때문에 위험한 자산에 대해서는 그만큼 더 많은 보상을 요구한다. 더 많은 보상은 더 많은 할인이라는 형태로 만들어진다. 더 많은 할인은 시간의 경과에 따라 더 많은 수익으로 실현된다. 주식의 경우 구조상 채권과 비교하여 훨씬 더 위험한 자산군이다. 미래 현금흐름을 예측하기가 어렵고 상환청구권이 가장 뒤로 밀리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주식은 미래가치에 비해 훨씬 더 많이 할인되었을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즉 주식의 장기 수익률이 채권의 장기 수익률보다 높을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이것은 어디까지나 하나의 가설이다. 이 가설을 입증하기 위해 우리는 여러 나라의 과거 사례를 확인해 보았다. 그리고 당연히 대다수의 국가에서 주식의 장기 수익률이 채권의 장기 수익률을 앞서는 것을 확인했다.
나임은 탐욕이 가슴속 가득 차 있는 보고인이고 따라서 주식을 투자의 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주식 투자에 실패한다. 문제는 지구의 주식시장에 있지 않다. 문제는 주식 시장에 투자하는 방식에 있다. 대다수의 지구인들은 주식시장이 채권시장보다 더 높은 장기 수익률을 낸다는 사실을 쉽게 받아들이지 못한다. 그 이유는 주변에 주식에 투자하여 참담한 결과를 초래한 수많은 사람들을 실제로 주변에서 만나고 이야기를 들어볼 수 있기 때문이다. 주식투자에 실패한 사람들은 주변 사람들에게 주식시장 따위 거들떠보지도 말라고 신신당부한다. "주식시장에 투자하면 패가망신하는 거야" 나임은 지구에 살면서 몇 차례나 이런 이야기를 들었다. 언젠가 KOSPI시장은 나임에게 이런 이야기를 한 적이 있었다. "나는 과거 30년 동안 28배 성장해서 연 환산하면 7.9%의 수익률을 만들어서 지구인들에게 전달해 줬어. 그런데 나한테 투자하면 패가망신한다는 주장은 도대체 어떻게 가능한 거지? 그것이 가능하긴 한 거야?" 주식시장이 들으면 억울해서 울화병이 터질 이야기다. 대다수의 지구인들이 주식투자에 실패하는 원인은 주식시장에 있지 않다. 그들이 실패하는 원인은 그들이 분산투자에 실패했기 때문이다.
다음 글은 분산투자는 실제로 위험을 감소시킬 수 있는 것일까라는 주제로 이야기하려고 한다.
작가의 말
# 가급적이면 수식적인 부분을 제외하려고 노력하지만 리스크 프리미엄과 분산투자 부분은 계산을 뺄 수가 없네요. 결국 딱딱한 글이 되어 버렸습니다. 좀 더 부드럽게 설명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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