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산투자는 위험을 감소시킬 수 있는가?
지구인이 분산투자 회피적인 이유
금융시장은 분산투자를 기본 전재로 작동한다. 예를 들어 국민연금의 포트폴리오를 보면 마치 바둑판처럼 세분화되어 다양한 자산군/ 다양한 만기 상품에 촘촘히 분산 투자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마찬가지로 그 어떤 연기금, 은행, 보험사, 증권사를 보더라도 이들의 자산은 다양한 자산군에 촘촘하게 분산 투자되어 있다. 이들이 이렇게 분산투자를 하는 것은 금융기관의 임직원들이 바보이거나 소심해서가 아니다. 대다수의 경영자, 정책결정자, 투자자들이 분산투자라는 것이 합리적인 방침이라고 공통적으로 생각하기 때문이다.
출처: 국민연금 공단 공시자료 일부 재구성
심지어는 선택과 집중을 신봉하는 사람들이 닳도록 인용하는 워런 버핏조차도 그렇다. 워런 버핏은 버크셔 해서웨이라는 회사에 몰빵 투자를 했지만 그 회사 자체는 현금, 채권, 주식 등 다양한 자산군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주식만 하더라도 아메리칸 익스프레스, 애플, 코카콜라, 제네럴모터스 등 다양한 업종의 주식들로 구성되어 있다. 대체로 논란의 여지가 있는 것은 분산투자를 어떻게 하느냐의 문제이지 분산투자가 중요하다는 점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동의한다.
출처: 버크셔 해서웨이 2017년 사업보고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다수의 지구인들이 분산투자의 중요성을 인식하지 못하며 당연히 분산투자를 하지 않는다. 그래서 투자에 실패한다. 여기에는 두 가지 이유가 있다. 우선 분산투자 같은 것을 하지 않아도 막대한 투자수익을 거두는 사람들이 지구 상에 존재하며 그들 대부분은 분산투자가 중요하지 않다고 이야기한다. 그들 중 많은 수가 분산투자가 아니라 제약주나 IT특정주에 대한 몰빵투자를 통해서 성공했다. 이들의 이야기는 "투자란 자신이 가진 달걀을 가장 좋은 바구니에 모아놓고 혼신의 힘을 다해서 그 바구니를 지켜보는 것"으로 요약된다. 이들 중 대다수는 단순히 운이 좋아 높은 수익을 거뒀을 뿐이지만 이들의 이야기는 모든 미디어를 통해 전파되며 강력한 설득력을 갖는다. 반면 분산투자를 하지 않았기 때문에 처참하게 실패한 사람들의 이야기는 전달되지 않는다. 설사 이들의 이야기가 다른 사람들에게 전달하더라도 이들의 사례에서 도출되는 메시지는 "분산투자를 반드시 해야 합니다"라는 것이 아니다. 이들의 메시지는 "저처럼 똑똑한 사람도 실패했네요. 주식시장은 위험하니 은행 예금이나 하세요"라는 형태로 지구인들 사이에서 공유된다. 그 결과 지구인들은 위험회피적일 뿐만 아니라 분산투자 혐오적인 성향까지 갖게 되었다.
지구인들이 분산투자의 중요성을 인식하지 못하는 두 번째 이유는 분산투자가 위험을 감소시킨다는 주장에 공감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지구에서 성공하기 위해서는 선택과 집중이라는 과정이 필요하다. 지구에서 충분한 수익을 벌어들일 수 있는 사람들은 특정한 분야에서 고도의 숙련도를 획득하는 사람들뿐이다. 그리고 그것을 위해서는 자신의 전문분야에 대한 고도의 집중이 필요하다. 직업뿐 아니라 스타일, 습관, 취미, 가족 같이 지구인들이 중요시하는 가치들이 더 빛나기 위해서는 필수적으로 선택과 집중이라는 과정이 반드시 필요하다. 선택과 집중이 없다면 지구에서의 삶은 커피믹스를 함께 넣고 끓인 라면만큼이나 엉망진창이 될 것이다. 그런데 금융이라는 영역은 마치 뭐라도 된 것처럼 홀로 선택과 집중보다 분산투자가 중요하다고 이야기해서야 누구도 쉽게 공감할 수 없는 것이다.
완전 분리기로 리스크를 학살하는 방법
분산투자에 공감할 수 없다. 하지만 입증할 수는 있다. 이를 위해서 앞서 소개한 이항 지구 이야기를 다시 이어서 하도록 하자. 이항 지구에는 완전 분리기라는 독특한 기계가 존재한다. 완전 분리기란 세상에 존재하는 어떤 것이든 개별적인 속성의 변화 없이 정확하게 1/2로 분리시킬 수 있다. 예를 들어 완전 분리기에 토끼를 집어넣고 분리 버튼을 누르면 허리에서 두 동강 난 토끼 시체가 나오는 것이 아니라 정확하게 1/2로 축소된 토끼 두 마리가 깡총거리며 뛰어나오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말하자면 고위험의 사업에 내재된 위험은 완전 분리기를 통해 완전히 제거 가능하다. 지구에서 가장 많이 사용되는 위험 측량 지표는 표준편차다. 표준편차는 결괏값의 분포도를 나타내는 수치로 결괏값들이 평균의 주변에 가깝게 분포되어 있을수록 표준편차는 더 낮아지게 된다. 반면 결괏값들이 평균에서 더 멀리 분포되어 있을수록 표준편차는 더 높아진다. 표준편차에 대해 온전히 이해하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상관없다. 표준편차가 높으면 높을수록 위험이 더 높다고 이해할 수 있으면 충분하다. 앞서 고위험과 저위험의 표준편차를 비교해보면 성장성의 표준편차가 더 높은 것을 볼 수 있다. 즉 표준편차 100억 원인 성장성의 사업은 표준편차 20억 원인 안정성의 사업보다 훨씬 위험하다.
지금부터는 위험성의 사업에 내재된 위험을 제거시키는 작업을 해보자. 우선 위험성의 사업을 완전 분리기에 넣는다. 위험성의 사업은 완전 분리기에 넣었을 때 기댓값이 50억 원인 두 개의 사업으로 나누어진다. 앞면이 나오면 200억 원, 뒷면이 나오면 0원이 나오는 위험성의 사업은 이제 앞면이 나오면 100억 원, 뒷면이 나오면 0원이 나오는 1/2고위험사업 2개로 분리되었다. 한 번의 분열을 거친 사업 2개의 기대이익의 합계는 100억 원으로 분열 전과 동일하지만 표준편차는 71억 원으로 감소한다.
두 개로 분리된 사업을 다시 완전 분리기에 넣고 4개로 나누어볼까? 2개의 사업이 4개의 사업으로 분리되었을 때 다시 한번 표준편차는 감소한다. 그 짓을 다시 완전 분리기가 마침내 고장 날 때까지 멈추지 않고 반복한다면 어떻게 될까? 사업의 개수는 2, 4, 8, 16, 32... 2의 배수로 점점 증가할 것이다. 이때 기대이익은 변하지 않는다. 다만 사업이 잘게 분열될수록 결괏값 분포는 기대이익 100억 원에 밀착하게 된다. 분열의 횟수가 증가할수록 표준편차는 0에 수렴한다. 이는 위험의 소멸을 의미한다.
예를 들어 고위험이 완전 분리기를 10번 작동했다고 생각을 해보자. 성장성은 1,024개의 사업을 갖게 되며 각각의 사업은 앞면이 나오면 1,953만 원의 값을 돌려준다. 물론 뒷면이 나왔을 때 수익은 변함없이 0이다. 이때의 산출되는 표준편차는 3.1억 원이다. 조금 더 풀어서 이야기하면 기대이익 100억 원에 표준편차 3.1억 원이라는 것은 99.9%의 확률로 90.4억 원에서 109.6억 원의 값을 얻게 되는 의미이다. 만약 이것조차 위험하다는 생각이 든다면 얼마든지 완전 분리기를 더 사용하여 리스크를 더 줄일 수 있다.
단순히 사업을 잘게 잘랐을 뿐인데도 사실상 리스크가 사라지는 것은 완전 분리기를 통해 분리된 사업들이 독립적이기 때문이다. 이항 지구에 1,024개의 사업이 있고 각각의 사업들이 독립적이라고 할 때 첫 번째 사업은 나머지 1,023개의 사업들의 결과에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 즉 사업 간의 상관관계가 0인 것이다. 상관관계가 0일 때 자산의 숫자가 늘어남에 따라 내재된 위험은 0에 수렴한다.
상관관계가 +1 또는 -1일 때 생기는 일들
만약 완전 분리기를 최초에 사용하는 시점에서 그 속에 초강력 접착제를 한방을 떨어뜨렸다고 생각을 해보자. 완전 분리기에서 2개로 분리된 사업이 튀어나오면서 순간접착제로 딱 붙어버린 것이다. 만약 사업이 같은 방향으로 놓고 접착된다면 사업이 분리가 되었다고 하더라도 위험의 감소 효과는 전혀 발생하지 않는다. 동일한 방향으로 붙은 사업 두 개의 결괏값은 두 개의 앞면 혹은 두 개의 뒷면일 것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완전히 같은 방향으로 움직이는 두 개의 사업은 상관관계가 1이다. 상관관계가 1일 때 자산의 개수의 증가는 표준편차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즉 분산투자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한다.
혹은 재수가 좋아 첫 번째 완전 분리기 사용에서 분리된 2개의 사업이 반대방향으로 붙어서 튀어나왔다고 생각을 해보자. 이 경우 완전 분리기를 단 한번 사용했을 뿐이지만 사업에 내재된 모든 위험은 소멸한다. 엇다른 방향으로 용접된 두 개의 동전을 던졌을 때 결괏값은 앞뒤, 혹은 뒤 앞 일 것이기 때문이다. 이 경우 두 사업의 상관관계는 -1이라고 한다. 상관관계가 -1일 때 분산투자는 가장 극적인 형태로 발현된다.
상관관계가 지구별 금융시장에 미치는 영향
지구의 금융시장에는 헤아릴 수 없이 많은 금융자산들이 존재하고 있다. 그리고 그 모든 금융자산들 사이에는 상관계수가 존재한다. 상관계수는 -1~1 사이 어딘가에 분포되어 있다. 그리고 상관계수가 1이 아닌 이상 분산투자는 반드시 리스크를 감소시키는 효과를 발휘한다. 반드시라는 수식어를 사용한 것을 눈여겨 봐주기 바란다. 반드시다. 왜냐하면 실질적으로 두개의 이질적인 금융자산의 상관관계가 1인 경우는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모든 시계열에서 동일하게 가격이 변동하는 자산이 존재한다는 가정은 지구 반대편 어딘가 나와 동일한 유전자와 영혼을 가진 지구인이 존재한다고 생각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이항 지구에서는 모든 자산의 상관관계가 0이었기 때문에 완전분리기를 통해 자산의 개수를 무한대로 증가시킴에 따라 리스크를 0에 수렴시킬 수 있었다. 하지만 지구의 금융시장에서는 아무리 분산투자를 한들 리스크를 0으로 수렴시킬 방법은 존재하지 않는다. 지구에서 모든 금융자산의 상관관계는 0보다는 1에 더욱 가까운 곳에 존재하기 때문이다. 상식적으로 전혀 상관관계가 없을 것이라고 생각되는 미국의 IT기업과 한국의 라면기업 주가 사이에도 상당한 수준의 상관관계가 존재한다. 이로 인해 분산투자를 통해서 제거할 수 있는 리스크의 양에 한계가 있다. 즉 현세의 지구에서는 분산투자를 통해서 리스크를 0으로 만들 수 없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분산투자를 하지 않는 것은 바보 같은 짓이다. 기대이익이 동일할 때 아주 위험한 것보다는 그냥 위험한 것이 훨씬 낫기 때문이다. 분산투자는 그것을 가능하게 해 준다. 지구에 본격적으로 투자를 하려고 한다면 분산투자를 할 것이냐 말 것이냐는 고려의 대상조차 되지 못한다. 분산투자를 어떻게 할 것인가라는 부분만이 조금 더 깊은 사려가 필요하다.
그리고 분산투자를 어떻게 할 것인가라는 문제는 결국 하나의 물음으로 이어진다.
궁극의 포트폴리오는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작가의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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