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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형 은행원 Dec 12. 2018

3-5. 궁극의 쇼핑리스트와 현대포트폴리오 이론

궁극의 포트폴리오를 만드는 첫 번째 방법

쇼핑의 신 아프로디테의 최적화 기계


오래전 올림푸스 여신들 사이에 미모 대결이 벌어진 적이 있었다. 운명의 세 여신은 트로이의 파리스 왕자를 심판으로 정했다. 풍요의 여신 헤라, 지혜의 여신 아테네, 사랑의 여신 아프로디테까지 세명의 아름다운 여신은 파리스 왕자에게 가서 가장 아름다운 여신에게 황금 사과를 전해달라고 했다. 파리스 왕자는 아프로디테에게 황금 사과를 건네주었다. 이로서 올림푸스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신은 아프로디테로 결정되었다.


"파리스의 앞으로 나선 아프로디테는 아름답게 빛나는 허리띠를 차고 있었다. 그녀 주변에 신비로운 광채가 빛나고 있었기 때문에 다른 두 여신의 매력은 빛을 잃어버렸다. 아프로디테의 매력에 빠진 파리스는 그녀에게 황금 사과를 건네주었다." 그리스 로마 신화 - 구스타프 슈바브


모든 여신들은 완벽한 미모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실제로 가장 아름다운 여신을 결정한 것은 그들이 착용한 의상과 장신구라고 보아야 한다. 헤라와 아테네는 이런 결과를 납득할 수 없었다. 당시 모든 왕과 제후들은 지혜와 풍요의 여신들에게 많은 것을 빚지고 있었다. 왕과 제후들은 언제나 자신이 바칠 수 있는 최고의 제물을 헤라와 아테나에게 바쳤다. 하지만 왕과 제후는 미의 여신에게는 그다지 빚이랄 것이 없었다. 이로 인해 아프로디테의 수익은 헤라와 아테나에 비해 보잘것이 없었다. 파리스 앞에 나설 때 헤라와 아테네는 올림푸스에서 가장 비싸고 아름다운 의상과 장신구를 착용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아프로디테의 싸구려 허리띠 하나에 패배하고 만 것이다. 헤라와 아테네가 평가가 공정하지 않았다고 제우스에게 따져 물은 것- 그로 인해 결국 트로이 전쟁이 반발한 것도 이 때문이다.


아프로디테는 미의 여신이자 쇼핑의 여신이다. 아프로디테는 쇼핑의 아마추어들이 이해하지 못하는 것을 이해하고 있었다. 아프로디테가 생각하기에 쇼핑을 할 때 물건의 자체의 아름다움만을 보고 구입을 하는 것은 초콜렛만으로 저녁상을 차리는 것만큼이나 멍청한 짓이다. 아이템 자체의 아름다움은 쇼핑을 결정하는 중요한 판단요소이기는 하지만 고려해야 할 여러 가지 사항 중에 하나일 뿐이다. 쇼핑을 할 때는 자신이 이미 보유하고 있는 의상들과의 상관관계를 감안해야 한다. 만약 어떤 아이템이 볼품없어 보인다고 할지라도 아프로디테가 이미 보유하고 있는 다른 의상의 아름다움을 극대화할 수 있다면 사지 않을 이유가 없다. 두 번째로 고려해야 할 사항은 변동성이다. 맹렬히 변화하는 올림푸스의 패션 트렌드와 여신들의 불멸성을 감안해야 한다. 설사 지금 이 한순간 어떤 옷이 가장 아름다워 보일지라도 그것은 일시적이란 점을 알아야 한다. 아프로디테는 쇼핑을 할 때 아이템이 가진 본질적인 아름다움과 더불어 자신이 소유하고 있는 방대한 컬렉션과의 상관관계, 그리고 아이템에 내재된 변동성을 고려하여 궁극의 쇼핑리스트를 작성한다. 쇼핑은 정보력과 분석력, 판단력, 자제력을 동시에 필요로 하는 고도의 지적 활동이다. 쇼핑을 마친 여자들이 허기에 지는 이유, 백화점의 지하에 음식점이 즐비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현재 아프로디테가 가지고 있는 의상과 장신구의 컬렉션의 규모를 감안할 때 아무리 아프로디테라고 하더라도 그처럼 방대한 요소들을 감안하여 쇼핑리스트를 만들 수는 없다. 하나의 아이템을 사기 위해서는 기존에 아프로디테가 가지고 있는 모든 아이템들의 아름다움과 변동성에 대한 데이터와 더불어 새로운 아이템과 기존의 아이템 각각과의 상관계수라는 방대한 데이터를 처리해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프로디테에게는 헤파이스토스라는 남편이 있었다. 오래전 헤파이스토스는 제우스의 번개 창을 만들어준 대가로 아프로디테를 아내로 얻을 수 있었다. 헤파이스토스는 제우스의 창을 만들기 위해 다중 선형 분석을 기반으로 한 최적화 기계(Optimizer)라는 시스템을 구축해 사용했다. 창에 들어가는 재료의 접합 방식과 크기, 강도에 관한 데이터를 모두 최적화 기계에 적재하고 시작 버튼을 누르면 역행렬 산출을 통해 궁극의 답을 얻을 수 있다. 아프로디테는 남편이 집을 비울 때면 이 최적화 기계를 이용해 궁극의 쇼핑리스트를 만들곤 했다. 트로이 전쟁이 끝난 이후에도 헤라와 아테네는 가장 아름다운 여신을 빼앗아 오기 위해 천문학적인 돈을 쇼핑에 쏟아부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프로디테는 단 한 번도 가장 아름다운 여신의 자리를 빼앗긴 적이 없었다. 최적화 기계는 변함없이 강력하고 아프로디테 또한 변함없이 아름답다.


최적화 기계를 지구 금융시장에서 사용하지 못하는 이유


아주 오랜 시간이 흘렀다. 지구인들은 최적화 기계를 통해 건축물이나 항공기 구조를 설계하거나, 지구의 대기권을 이탈하여 달까지 여행을 하는 경로를 결정하는 데 사용하는 방법을 조금씩 터득하고 있었다. 컴퓨터의 등장은 이러한 움직임에 기름을 부은 격이었다. 그리고 1960년대 대학원생 마코위츠는 마침내 이런 생각을 했었다. 만약에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금융자산들의 기대이익과 변동성(위험), 그리고 상관관계를 알 수 있다면 최적화 기계를 이용하여 궁극의 포트폴리오를 구할 수 있는 것은 아닐까? 그 전까지만 해도 분산투자를 해야 한다는 것은 상식에 속했지만 어떻게 얼마나 분산투자를 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누구도 산술적으로 답을 하지 못했다. 마코위츠는 자신의 생각을 현대 포트폴리오 이론(Modern portfolio Theory)이라는 논문으로 발표했고 노벨상을 받았다. 마코위츠의 아이디어는 간단하다. 금융자산으로 포트폴리오를 구성할 때는 기대수익률과 변동성, 자산들 간의 상관관계를 함께 고려해야 한다는 것이다.


궁극의 포트폴리오를 만드는 방법은 간단하다. 지구 상 존재하는 모든 금융자산들의 기대수익률과 변동성, 상관관계에 대한 온전한 데이터팩을 구한 다음 최적화 기계에 집어넣고 시작 버튼을 누르기만 하면 된다. 지구 상에 존재하는 모든 공과대학의 커리큘럼은 결국 다양한 영역에서 최적화 기계를 어떻게 구현하고 운영하는가에 관한 것이다. 컴퓨터가 지천으로 널린 현재의 지구에서 최적화 기계를 구하는 것은 전혀 문제가 없다. 문제는 그 속에 들어가야 하는 데이터팩에 있다.


금융자산들에 대한 온전한 데이터는 오직 미래에만 존재하며 지구인 그 누구도 미래에 가서 데이터팩을 가지고 현재로 돌아오는 데 성공하지 못했다. 그렇기 때문에 지구인들은 궁여지책으로 과거 추출한 데이터팩을 가져다가 현재에 적용을 하는 방법을 사용해서 궁극의 포트폴리오를 만들고자 시도하곤 했다. 이 방법에는 몇 가지 문제가 있었는데 우선 과거에서 가져온 데이터가 현재에서 유효한지 누구도 알 수 없다. 금융자산의 과거 수익률, 변동성, 상관관계라는 것이 끊임없이 변하기 때문이다.


최적화 기계가 사용되는 다른 영역에서는 이런 문제가 존재하지 않는다. 항공기나 초고층 빌딩, 우주선을 만들 때 사용되는 모든 재료들은 현재의 지구 상에 존재한다. 이들의 강도를 비롯한 다양한 물질적인 특성들은 사실상 자와 저울, 온도계만 있으면 간단하게 측정할 수 있다. 그러므로 산출된 데이터를 최적화 기계에 쏟아 넣으면 짠하고 최적의 답은 튀어나온다. 게다가 이런 데이터가 시간이 지난다고 변하는 것도 아니다. 2500년 전  파르테논 신전을 지었을 시점의 재료 속성은 현재 시점에도 동일한다. 그러나 금융시장 데이터 팩에 속한 데이터 값은 불과 어제의 측정값이라고 해도 현재 시점까지 유효한지 누구도 확신할 수 없다.


몇몇 지구인들은 과거에서 추출한 데이터팩에 몇 가지 조정을 하면 현재 시점에서 사용하는데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주장한다. 이런 이야기를 들을 때면 나임은 오두막에서 수정구슬로 미래를 점쳐주는 귀여운 마녀 동화가 생각난다. 약간의 차이가 있다면 자신이 예언을 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대개는 커튼월로 치장된 고층 사무실에서 블룸버그 터미널과 구글을 사용한다는 정도일 뿐이다. 커튼월도 블룸버그 터미널도 예언을 팔아서 마련한 것이란 점을 과거의 마녀들이 알았더라면 참으로 격세지감을 느꼈을법하다. 최적화 기계는 매우 예민한 메커니즘이다. 아주 약간의 데이터의 오차만으로도 최적화 값은 전혀 엉뚱한 방향으로 산출될 수 있다. 이론적으로 완벽하지만 거기에 넣어야 할 데이터 팩이 현재에는 불완전한 형태로만 존재할 뿐이다. 그것에 대한 조정작업을 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지구인 또한 모두 불완전하다. 그러므로 쓸 수 없다.


마코위츠의 현대 포트폴리오 이론은 이론적으로 완벽하다. 문제는 지구인들이 아직 시간여행을 하는 방법을 발견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마코위츠의 방법은 궁극의 포트폴리오를 만드는 방법으로 적절하지 않다. 그러다 문득 궁극의 포트폴리오를 만드는 다른 방법이 조금 의외의 장소에서 등장했다. 심지어 이 방법은 타임머신을 필요로 하지도 않는다. 이야기의 시작은 미국의 포드자동차 회사에서 시작한다.


작가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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