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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형 은행원 Dec 13. 2018

3-6. 덜떨어진 지구별에 효율적 시장 가설

효율적 시장가설의 탄생과 작동원리

효율적 시장가설의 탄생


오래전 미국에서 자동차 회사를 만들어서 많은 돈을 번 포드라는 남자가 있었다. 포드는 돈이 너무 많았고 자신의 돈을 선한 곳에 사용하고 싶었다. 포드는 자신의 재산의 일부로 포드재단을 만들었다. 포드재단은 오랫동안 도서관이나 미술관, 박물관 같은 것들을 지어서 자신의 역할에 충실했다. 포드재단이 한 일 중에 독특한 한 가지는 시카고대학 증권거래연구소(CRSP: The Center for Research in Security Prices)에 연구비를 지원한 것이었다. CRSP이 지원금으로 한일은 주식 가격 데이터를 집대성하는 것이었다. 그 당시까지도 주식 가격에 대한 표준화된 데이터가 존재하지 않았었다. 주식회사들은 때때로 필요에 의해 주식을 추가로 발행하거나, 기존에 발행한 주식을 매입해 소각하기도 하며, 기존에 존재하는 주식 한주를 여러 주로 분할하기도 한다. 이로 인해 주식의 가격 그 자체는 적절한 조정 없이는 현실과 동떨어진 터무니없이 높은 수익률이나 낮은 수익률을 나타내게 된다. CRSP은 미국에 존재하는 모든 주식의 먼 과거부터 당시까지의 가격에 대하여 이러한 조정 작업을 한 것이다. 당시는 이메일이나 USB, 인터넷이 등장하기 한참 전이었으므로 이렇게 조정된 데이터는 UNIVAC 테이프에 기록되어 연구자들에게 제공되었다.(출처: Open Yale Courses / Financial Markets (2011) / Robert J. Shiller / Lecture 7 Efficient Markets 내용을 재구성)


정제된 주식 데이터가 존재할 때 이를 재조합하여 과거의 주가 추세를 만들어 낼 수 있다. 시카고 대학의 유진 파마 교수는 과거의 주가 추세를 계산했고 당시 존재하던 투자 전문가들의 수익률과 비교해보았다. 그리고 유진 파마는 자신이 만들어낸 과거 주가 추세와 펀드나 연기금의 수익률을 비교했을 때 별다른 차이가 없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그때나 지금이나 펀드나 연기금 같은 투자기구들을 운용하던 사람들은 전문가 집단이다. 그들은 금융시장을 연구했고, 예측에 기반하여 전략을 개발했고, 전략을 실행했다. 그런데 이런 전문가 집단의 수익률이 시장 수익률과 차이가 없다. 일반적인 상황에서는 이런 일이 발생할 수 없다. 예를 들어 지나가는 행인들로 무작위로 구성한 축구팀은 레알 마드리드와의 게임에서 이길 수 없다. 건축설계, 컴퓨터 프로그래밍, 외과 수술, 자동차 정비, 그래픽 디자인 같은 분야도 마찬가지다. 임의로 구성된 일반인은 전문가와 비교의 대상조차 될 수 없다. 그런데 유독 금융시장만은 다르 다는 것이다. 전문가라고 분류되는 집단의 수익이 시장의 평균 수익률과 별 차이가 없었다.


유진 파마는 이런 현상을 설명하기 위해 효율적 시장가설이라는 이론을 소개했다. 금융시장이 현재 시점에서 가용한 모든 정보를 금융자산들의 가격에 반영하고 있다고 생각해보자. 이때 금융자산의 가격은 기존의 정보가 아니라 오로지 새로운 정보에만 반응할 것이다. 새로운 정보는 수많은 미디어를 통해 무작위의 다수에게 예상하지 못한 시점에 배포된다. 지구에서 정보는 빛의 속도로 전파된다. 새로운 정보가 등장할 때면 모든 시장 참여자는 전력을 다해서 정보의 진위여부와 그 영향을 가늠한 다음 수익을 얻기 위한 방법을 강구할 것이다. 그 결과 거래가 발생한다. 이를 통해 금융시장은 새로운 정보를 빠르게 반영하여 새로운 가격을 산출한다. 누군가가 새로운 정보를 시장 전체보다 빠르게 획득할 수 있는 독점적인 방법을 가지고 있지 못한 이상 시장보다 높은 수익을 지속적으로 올리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이 효율적 시장가설의 주요 내용이다.


하지만 효율적 시장가설은 직관적이지 않다. 우리가 발 딛고 사는 지구라는 행성이 이렇게 덜떨어지고 부조리하며 불합리한 모순으로 가득 차 있는데 한낱 지구인이 만들어낸 금융시장 따위가 뭐라고 혼자서 고상한 척 성층권 위에서 우아하게 공전하며 자기만은 완벽하다고 주장할 수 있겠는가. 지구인이 만들어낸 모든 것과 마찬가지로 금융시장도 완벽과는 거리가 멀다. 효율적 시장 가설은 금융시장이 효율적인 지점- 즉 완벽에 가깝게 작용한다고 주장하는 이론이다. 이래서야 직관적으로 받아들일 수 없다. 그러나 진화와 경쟁이라는 측면에서 보면 금융시장이 효율적으로 작동할 수 있는 원리를 알 수 있다.


효율적 시장 가설의 작동원리


초기의 금융시장은 그리 효율적이지도 합리적이지도 않았다. 초기의 금융시장은 수두룩한 오류를 내재하고 있었는데, 이러한 오류는 대개 고평가 또는 저평가된 자산이라는 형태로 나타나곤 했다. 튤립, 인터넷 주식, 부동산, 비트코인, 랩 음악 그리고 상상할 수 있는 모든 자산들이 자신들의 가치에 비해 높거나 낮은 가격에 거래되곤 한다. 금융시장의 메커니즘은 이러한 오류를 찾아 제거하는 데 성공하는 사람에게 수익(이것을 알파(alpha)라고 한다.)을 제공한다. 시장은 불완전하게 작동하며 그 불완전을 바로잡음으로써 알파를 얻을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지구인들은 한 가지 선택에 직면하게 된다. 불완전한 시장이 만들어내는 불완전한 수익에 만족할 것이냐, 혹은 불완전한 시장의 빈틈을 찾아 봉합하고 알파-때때로 천문학적인-를 얻을 받을 것인가. 많은 지구인들이 두 번째 선택을 했다. 나임은 이들을 '알파 헌터'라고 부른다.


알파 헌터가 활동을 하던 초기 시대에는 거대하고 뚜렷한 시장의 빈틈이 많았다. 셈을 제대로 하지도 못하는 5살짜리 아이를 데려다 저것이 빈틈이니? 저 안에 알파가 있니? 하고 물었다 하더라도 그에 대한 옳은 답을 얻을 수 있었다. 그리고 그것에 대한 차익거래를 통해 아무리 멍청한 알파 헌터라 하더라도 돈을 무더기로 쓸어 담을 수 있었다. 우리는 아직도 당시의 알파 헌터 중 아직 살아있는 일부가 돈 자랑을 하며 자신의 현명함을 스스로 찬양하는 꼴을 얼마든지 유튜브를 통해 볼 수 있다.


좋은 시절은 오래가지 못했다. 알파 헌터의 숫자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다. 뚜렷하고 잡아먹기 편한 알파는 얼마 지나지 않아 전멸해 버렸다. 이제 금융시장에 남아있는 것은 식별이 어려울 만큼 희미하거나, 너무 빨라서 도저히 잡을 수 없는 알파뿐이었다. 금융시장 초기에 존재했던 멍청하고 굼뜬 알파 헌터 들은 얼마 지나지 않아 모두 멸종했다. 알파의 공급은 제한적이었고 더 많은 알파를 확보하기 위한 개체들의 경쟁은 상상을 초월했다. 이들은 자산의 가치를 평가할 수 있는 더 정교한 모델과 시스템을 계속해서 발견했고, 실험했고, 실패를 하면 도태하거나 혹은 살아남아 더 강력한 모델을 고안하곤 했다. 이 과정은 지난한 과정이었지만 금융시장이 더 효율적으로 작동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거쳐야만 하는 과정이었다.


금융시장에 서식하고 있는 알파 헌터들은 저평가되거나 고평가 된 자산을 찾아내는데 최적화된 형태로 진화하였다. 일종의 메타 인류 지성으로서 이들이 알파를 찾아내는 메커니즘은 인간의 사고로는 이해할 수 있는 범위를 초월하며 시장의 빈틈은 빛의 속도로 제거된다. 이런 환경에서 알파 헌터들이 가질 수 있는 알파의 양은 극히 제한적이며 그 공급은 순수한 무작위성을 따른다. 알파는 존재하지만 경쟁으로 인하여 사실상 존재하지 않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이런 조건에서는 가장 뛰어난 알파 헌터가 얻을 수 있는 수익조차 단순히 시장을 복제해서 얻을 수 있는 수익과 차이가 없다. 이때 시장은 효율적으로 작동한다.


알파가 희소해질 때 필연적으로 알파 헌터의 숫자가 줄어들기 시작한다. 그리고 어느 순간 시장이 효율적으로 작동하기 위해 필요한 알파 헌터의 숫자보다 실제의 알파 헌터의 숫자가 적어지면 시장은 조금씩 비효율적으로 변하기 시작한다. 시장의 빈틈은 실시간으로 제거되지 못하고 방치되며 이런 것들이 누적이 되면 금융시장 전체를 초토화할 만큼 거대한 오작동이 발생하기도 한다. 하지만 걱정할 것 없다. 시장에 알파가 여기저기 굴러다니는 바로 그때 알파 헌터의 숫자가 다시 증가하기 시작할 것이기 때문이다.


효율적 시장이론이란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의 금융시장에는 빈틈 따위는 없고 따라서 그 누구도 알파를 시스템적으로 획득할 수 없다는 이론이다. 설사 알파가 시장에 나타난다 하더라도 이런 알파는 수없이 많은 시장 참여자들 사이에 무작위로 배분된다. 시장은 본질적으로 완벽하지는 않지만 수많은 시장 참여자들이 존재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들이 시장의 빈틈을 놓고 치열하게 경쟁할수록 시장은 효율적으로 작동한다. 이런 시장에서는 알파를 찾기 위해 노력을 하는 것은 무가치하다. 시장은 한 명이 인간의 인지를 벗어난 영역에서 나름의 법칙으로 효율적으로 작동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가설은 전 지구적으로 그다지 환영받지 못했는데 여기에는 몇가지 이유가 있었다.


# 효율적 시장 가설에 대한 나머지 이야기가 다음 글에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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