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율적 시장가설과 궁극의 포트폴리오
금기의 지식: 효율적 시장 가설
효율적 시장가설은 중요하다. 만약 금융시장이 최소한의 수준으로도 효율적으로 작동하지 못한다면 금융시장은 힘없는 사람에게서 힘 있는 사람에게로 부(富)를 이전하는 기능 이외에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종국에는 이마저도 할 수 없을 것이다. 아무도 금융시장 따위 거들떠보지도 않을 테니까. 게다가 금융시장이 효율적이지 않다고 생각한다면 앞서 이야기한 금융이론들 모두가 보편적이고 일관적이고 체계적으로 작동할 것이라고 믿을 근거 자체가 없어진다. 시장이 매우 비효율적이라고 믿는 알파 헌터라고 해도 이들이 시장의 빈틈에 투자해서 알파를 만들어 낼 수 있는 것도 늦든 빠르든 종국에는 시장이 효율적임 지점으로 회귀할 것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결국에는 고평가/저평가된 자산 가격이 적정한 수준으로 조정되지 않고 지속된다면 알파 헌터라는 업도 지속할 수 없다. 순수한 카오스는 정렬될 수 없다. 하지만 대다수의 지구인들은 미니스커트와 주가의 상관관계에 대한 이야기는 숫하게 들어보았지만 효율적 시장가설에 대해서는 거의 알지 못한다. 여기에는 두 가지 이유가 있다.
첫 번째 이유는 효율적 시장 가설이 아직 입증되지 못한 이론이기 때문이다. 효율적 시장 가설은 말 그대로 하나의 가설(Theory)이다. 가설이란 아집 증명되지 못한 이론을 의미한다. 증명되지 못한 모든 이론과 마찬가지로 효율적 시장가설은 이를 부정하는 집단에 의해 끊임없이 공격을 받고 있다. 수없이 많은 지구인들이 자신이 금융시장의 빈틈을 찾아 그 속에서 거대한 시장 초과 수익을 꺼낸 이야기들을 질리지도 않게 반복해서 이야기한다. 그리고 이를 근거로 자신이 금융시장보다 똑똑하며 금융시장은 비효율적이라는 것을 증명하려 시도한다. 반면 효율적 시장 가설을 믿는 사람들은 자신들이 다트를 던져 만들어낸 포트폴리오나 원숭이가 만들어낸 포트폴리오가 대다수의 펀드 수익률과 비교하여 수익이 낮지 않았다는 점, 대다수의 펀드매니저의 수익률이 시장 수익률을 쫓아가지 못하는 점을 들어 금융시장이 효율적이라는 점을 증명하려 시도한다. 하지만 어느 쪽도 결정적으로 자신이 옳다는 점을 증명하는 데는 실패했다.
이는 금융시장이 고정된 시스템이 아니기 때문이다. 금융시장은 지금 이 순간도 효율적인 상태가 그렇지 않은 상태 사이 어딘가를 표류하고 있다. 게다가 금융시장의 경계 자체도 불분명하다. 금융시장의 범위가 어디인지에 대해서도 지구인들은 아직 협의점을 찾지 못하고 있다. 지구에서는 생명, 전쟁, 섹스, 마약이 가격을 갖고 거래되는 경우가 비일비재한데 이 경우 이들은 금융시장에 포함될 수 있는가? 그렇지 않다면 그 경계는 어디인가? 아울러 실시간은커녕 10년 단위의 가치 산정도 할 수 없는 특수 부동산이나 비상장 기업의 증권 같은 자산들도 금융시장의 효율성을 판단하는데 당연히 감안되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 하지만 금융 이론가라는 사람들은 이런 자산의 가격을 알 수 없다는 이유로 태연히 상장 증권들만을 대상으로 효율성을 검증한다. 이는 과연 맞는 검증 방식인가? 물론 이에 비판을 할 수 있지만 다른 대안이 존재하는 것도 아니다. 그러므로 효율적 시장가설은 결코 증명될 수 없는 이론인 것이다.
두 번째 이유는 효율적 시장가설이 금융기관들의 수익을 감소시킨 다는 것이다. 지구인들이 금융에 대한 정보를 얻는 가장 큰 채널인 신문, 뉴스, SNS, 책, 재무상담사, 자산운용사 등은 기본적으로 수익을 발생시켜야 한다. 이런 채널을 통해 수익을 발생시키는 단 하나의 방법은 자신이 시장을 초과하는 수익률을 만들어내는 방법을 알고 있다고 주장하는 것뿐이다. 자신이 효율적 시장가설을 지지하며 투자수익률이 순수한 무작위성을 따르기 때문에 자신은 금융시장에서 어떠한 초과수익도 만들어내지 못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오래전에 모두 굶어 죽었다. 반면 시장은 효율적으로 작동하지 않고 자신이 시장 초과 수익률을 만들어 낼 수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돈을- 때로는 천문학적인 돈을-번다. 이들은 조언 자체를 팔거나 돈을 위탁받아 대신 운용함으로써 막대한 수익을 벌어들이다.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그리고 채널을 지배하는 집단은 이들이다. 이들이 금융시장이 효율적이라는 주장을 할 이유가 없다.
어떤 시인이 노래했다. 오래 보아야 예쁜 사람이 있다고(나태주 시인의 풀꽃 중 일부 인용). 금융시장 또한 그렇다. 장기적으로 보면 효율적이다. 이것은 장기적으로 보면 금융이론들이 보편적이고 일관적이고 체계적으로 작용할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는 뜻이다.
[효율적 시장 가설이 중요한 이유]
효율적 시장가설은 중요하다. 만약 금융시장이 어느 정도라도 효율적으로 작동하지 않는다면 앞서 우리가 이야기 한 내용들과 앞으로 우리가 이야기할 내용들이 아무런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 시장이 효율적이라고 가정하는 것은 금융시장에 어느 정도 통용되는 규칙이 있고, 이것들이 일반적인 상황에서는 대개는 무리 없이 작동한다고 믿을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설사 일시적으로 금융시장이 효율적이지 않게 작동을 한다고 할지라도 결국은 워래의 상태로 회복할 것이라고 믿는다는 뜻이다.
나는 지금 금융시장의 규칙에 관한 관한 글을 쓴다. 이는 내가 지구의 금융시장이 장기적으로는 효율적으로 작동할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것은 내가 지구의 금융시장에 리스크 프리미엄과 분산투자 효과가 지금까지 존재했고, 앞으로도 존재할 것이라고 생각한다는 뜻이다. 효율적 시장가설에 가장 냉소적인 사람들도 시장이 때때로 비효율적으로 작동을 하지만 장기적으로는 효율적인 지점을 찾아 수렴할 것이라는 것에 동의할 것이다. 다만 그 과정이 매끄러운가 그렇지 않은가가 문제가 될 뿐이다. 버블의 탄생과 붕괴는 단기적으로 균형점을 벗어난 금융시장이 장기적으로는 어떻게든 효율적인 지점으로 수렴하는 과정을 보여준다.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지구의 경제시스템 자체가 지속적으로 운영될 수 없기 때문이다.
효율적 시장가설이 중요한 두 번째 이유는 금융시장 지금도 진화를 하는 것처럼 보인다는 사실이다. 금융시장의 규제는 더 강해지고 있으며, 중요한 정보들은 금융시장에 투명하고 공정하게 공시되도록 강제된다. 무엇보다 금융시장에서 데이터를 얻고, 그것을 해석하는 방법, 실행하는 방법 자체가 빠르게 상향 평준화되고 있다. 중학교 때 아이돌 연예인 대신 피터 린치나, 워런 버핏의 브로마이드를 방에 붙인 상태로 성장을 했으며, 방학에는 엑셀 단축키를 익히는데 시간을 보내고, 해리포터 대신 기업가치 분석이라는 책을 읽으며, 용돈으로 코코넛 선물거래를 하면서 성장한 지구인들이 매년 수천 명씩 MBA에서 쏟아져 나와 금융시장으로 직행한다(금융시장에 몰두하는 중학생들의 이야기는 영머니(캐빈 루스, 부키(2015)의 한 단락을 변경해서 가지고 왔다). 그리고 아등바등하면서 알파를 만들어 내기 위해 노력하지만 대다수가 실패한다. 당연한 일이다. 그들 자신들의 총합이 금융시장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그들의 경쟁이 치열할수록 그들의 수익은 시장 수익률에 근접할 것이고 금융 시장은 더 효율적으로 작동할 것이다.
효율적 시장가설이 중요한 세 번째 이유는 효율적 시장가설이 금융시장을 이해하고 활용하는 방법을 극도로 간소화시켜주기 때문이다. 앞서서 우리는 마코위츠의 현대 포트폴리오 이론에 대해 이야기했다. 마코위츠의 이론을 현실에 적용시키기 위해서는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자산의 변수에 대한 미래 데이터를 가지고 있어야 한다. 하지만 이런 데이터는 존재하지 않는다. Matlab을 쓰던, 파이썬을 쓰던, 슈퍼컴퓨터가 스마트폰에 내장되고 모든 지구인이 6살짜리 아이 숙제로 소수 판별 알고리즘을 구현하는 날이 온다고 하더라도 마찬가지다. 타임머신이 존재하지 않는 이상 이런 데이터는 존재할 수 없다.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쓸 수 없는 이론이다. 하지만 금융시장이 효율적이라고 가정한다면 이런 사소한 문제를 가볍게 극복할 수 있다.
금융시장이 효율적이라고 가정하는 것은 금융시장이 현재까지 알려져 있는 모든 가용한 데이터를 활용하여 이상적인 가격을 책정하였을 것이라는 의미이다. 그리고 새로운 정보가 나타나면 빠른 속도로 그것을 반영하여 새로운 균형점을 찾을 것이라는 의미이다. 즉 현재의 금융시장에 배분된 부의 배팅 비율이 인류 전체의 지성이 작동하여 만들어낸 궁극의 레시피라는 뜻이다. 이 궁극의 레시피를 시장 포트폴리오라고 부른다. 이론적으로 이 시장 포트폴리오는 다른 어떤 금융자산이나 포트폴리오보다 위험조정 수익률이라는 측면에서 우월하다. 설사 시장 포트폴리오보다 높은 수익률을 얻는 사람이 있더라도 곰곰이 따져 분석해보면 단순히 그는 더 많은 리스크를 감수했거나, 운이 좋았거나 둘 중에 하나라는 의미이다. 금융시장이 효율적일 때 시장 포트폴리오가 궁극의 포트폴리오가 된다.
시장(市場)이 모든 것을 해결한다.
직접적인 친분은 없지만-나는 아담 스미스와, 그가 남긴 몇 개의 중요한 문장들을 기억하고 있다. 그의 문장은 하나같이 간결하고 힘이 넘쳤지만, 그중에서도 특히-나는 위의 문장이 좋았다.
- 카스테라, 박민규, 문학동네(2005)
시장(市場)이 모든 것을 해결한다. 시장 포트폴리오가 궁극의 포트폴리오다. 지구인 누구도 시장 포트폴리오에 대한 배타적인 지적 재산권을 주장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이론적으로는 누구나 시장 포트폴리오를 만들 수 있다. 구글 파이낸스를 사용하면 금융시장을 구성하는 개별 종목들의 현재 시장 가격을 알 수 있다. 엑셀을 통해서 각각의 개별 종목이 전체 시장가치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산출한 다음에 HTS을 통해서 이것을 구현하면 된다. 그리고 이렇게 만들어진 시장 포트폴리오는 다른 어떤 포트폴리오보다 위험조정 수익률이라는 측면에서 나을 것이다.
물론 쉽지 않다. 직접 이런 일을 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이런 복잡하고 지루한 일은 다른 사람에게 시키는 것이 제맛이다. 직접 할 필요가 없다. 아니 다른 사람을 시킬 필요도 없다. 이미 이런 상품들은 규격화되고 대량 양산되어 전국의 증권사, 은행, 보험사를 통해 판매되고 있다. 이들을 활용하면 된다. 그러면 투자의 난이도는 급격하게 내려간다.
하지만 이를 위해 먼저 금융 상품이 어떻게 만들어지고 작동하는지 이해해야 한다. 지금까지 우리는 지구인이 위험회피적이라는 사실에서 출발하여 분산투자, 현대포트폴리오 이론, 효율적 시장가설까지 금융시작이 작동하는 주요 원리들에 대해 이야기 했다. 그리고 지금부터는 이러한 금융시장의 작동원리를 바탕으로 실제 금융상품들이 어떻게 만들어지고 판매되며 작동하는지 알아보려고 한다. 처음으로 이야기 할 주제는 주식과 채권이다.
작가의 말
3장이 끝났습니다. 수식적인 부분을 최대한 제외하고 이야기로 금융이론 부분을 풀어보려 했는데 잘 되었는지는 모르겠네요. 다음 장은 금융상품입니다. 주식/채권/펀드/ELS/변액보험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가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