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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형 은행원 Dec 16. 2018

4-2. 주식과 채권이 만들어지는 과정 Part 2

소심한 마을 사람들과 채권의 탄생

두 이질적인 증권들이 가진 속성


앞서 밥 아저씨의 핫도그 가게를 금융시장에서 가장 높은 가격으로 판매하기 위한 방법을 이야기했다. 기업은 이마트나 아마존 같은 일반적인 유통채널을 통해서 매각되지 않는다. 기업은 주식과 채권이라는 형태로 가공된 다음 금융시장을 통해서만 거래가 가능하다.


기업을 주식과 채권의 형태로 가공하여 금융시장에 판매하는 것은 번잡스러운 일이다. 그러므로 대부분의 금융기관들은 이 업무를 대행으로 하는 서비스를 제공한다. 지금 이 순간도 동네 도서관에 가면 공인중개사 시험을 준비하는 지구인들이 즐비할 것이다. 이는 공인중개사가 되어 단 1억 원짜리 부동산을 1건 매매 중개하는 것만 해도 꽤 쏠쏠한 수수료 수입을 올릴 수 있다는 것을 지구인들이 경험적으로 알기 때문이다.


기업 매각 대행도 마찬가지다. 대부분의 기업은 수백억 원에서 수조 원에 달하는 가격을 가지고 있다. 이를 주식과 채권의 형태로 가공하여 금융시장에 판매하는 것은 매우 수익이 높은 사업이 된다. 그렇기 때문에 기업 매각 대행-IPO라는 단어로 더 잘 알려진 이 행위는 상당히 경쟁이 치열하다. 수많은 디테일이 존재하겠지만 IPO 딜을 하나 따오기 위해 금융기관이 불러야 하는 궁극의 대답은 하나다. 얼마까지 팔아주겠다는 것이다.


이런 최고가 입찰 방식을 통해 IPO 주관사가 선정되고 그들은 가급적 기업을 높은 가격에 매각하기 위해 기업을 주식과 채권이라는 두 이질적인 증권으로 가급적 작은 단위로 분해한 다음 금융시장에서 매각을 진행한다. 지금부터 이야기할 것은 이 두 이질적인 증권들이 가진 속성들에 대한 이야기다.


소심한 마을 사람들과 채권


낯설게 보기라는 단어가 있다. 우리에게 친숙한 어떤 사물이나 현상을 낯설게 보기 위해 노력하는 것만으로도 우리가 보지 못했던 삶의 놀라운 이면을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주식과 채권은 이미 지구에서 너무나 보편적으로 존재하는 관념으로서 굳이 책에서 설명을 할 필요조차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이미 시중에는 주식과 채권에 관한 책이 헤아릴 듯이 많이 존재하고 있기도 하다. 하지만 이 두 이질적인 증권을 조금 낯선 방향에서 바라보려고 한다. 이는 우리가 너무 당연하게 생각하는 주식과 채권의 속성들이 사실상 지구인들의 냉철한 이성과 이해가 작용한 창작물이라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이며, 이 두 자산군에 대한 이해가 투자에 앞서 반드시 선행되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야기는 앞서 밥 아저씨가 핫도그 가게를 판매하는 부분에서 계속 이어진다. 밥 아저씨는 최종적으로 가장 높은 가격을 부른 트랑쉐라는 남자와 기업 매각 대행 계약을 체결했다. 주식과 채권의 속성을 더 쉽게 이해하기 위해 밥 아저씨의 핫도그 가게 매각이 인류가 지구 상에서 최초로 성공한 IPO라고 생각해보자.


트랑쉐는 핫도그 가게를 매각하기 위해 가장 먼저 소심한 마을을 찾았다. 앞서 이야기했듯이 지구 금융시장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것은 이 소심한 마을 사람들이다. 그렇기에 트랑쉐가 핫도그 가게를 팔기 위해 가장 먼저 방문한 것은 소심한 마을이었다. 소심한 마을 사람들은 말 그대로 쫌생이 집단이다. 이 마을에 이장을 맡고 있는 은행은 아마 이 마을에서 가장 유명한 사람일 것이다. 이 마을에는 은행 말고도 보험사, 증권사, 각종 연기금들이 살고 있다. 트랑쉐가 자신이 핫도그 가게의 일부를 판매하고 싶다고 했을때 소심한 마을 사람들이 먼저 보인 반응은 우려와 걱정이었다. 핫도그 가게가 지금 잘 나가고 장사가 잘되는 것은 알겠지만 앞으로 핫도그의 시대가 저물고 햄버거나 샌드위치의 시대가 오면 어떻게 하느냐는 것이다. 혹은 샘 아저씨의 1+1 핫도그 가게 같은 것이 시장을 장악할 수도 있다.


트랑쉐는 이들의 걱정을 불식시킬 필요가 있었다. 트랑쉐가 처음 내건 조건은 상환 선순위라는 조건이다. 밥 아저씨의 핫도그 가게가 앞으로 영업이 악화될 수 있는 가능성은 분명 존재한다. 이 가능성을 없앨 방법도 없다. 하지만 밥 아저씨의 핫도그 가게에는 핫도그 공장을 비롯하여 사무실, 각종 지적재산권 같은 것들이 존재한다. 설사 핫도그 가게가 장사가 되지 않는다고 할지라도 이런 자산을 판매하면 투자 원금의 상당 부분을 회수할 수 있다. 소심한 마을 사람들은 수긍했지만 아직 걱정을 내려놓지 못했다.


한 소심한 남자가 이야기했다. "상환 선순위라는 장치가 위험의 상당 부분을 없앨 수 있다는 것은 납득합니다. 하지만 핫도그 가게가 장사가 안될 때 자산을 지속적으로 판매하면서 시간만 질질 끈다면 결국엔 아무것도 남지 않을 수 있겠지요. 그러면 원금 상환은 물 건너갑니다. 이와 더불어 우리는 너무 바쁜 사람들입니다. 우리 돈이 투자된 이상 밥 아저씨의 핫도그 가게에 상주하면서 장사가 잘되는지 모니터링을 해야 하지만 그럴 여지도 없습니다."


상환 선순위라는 강력한 안전책에도 불안을 느끼는 소심한 마을 사람들에게 트랑쉐는 욕지거리가 나왔다. 하지만 트랑쉐는 이어 두 번째 세 번째 조건을 걸었다. 두 번째 조건은 만기의 설정이다. 통상 기업은 영원히 존재할 것으로 가정된다. 그런데 채권에 만기를 설정함으로써 소심한 마을 사람들은 훨씬 안전한 투자를 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기업의 영업주기과 상관없이 만기가 왔을 때 신중한 마을 사람들은 다시 한번 밥 아저씨의 핫도그 가게를 살펴보고 뭔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면 원금을 싸들고 떠나면 된다. 만기의 주기가 상대적으로 짧은 만큼 핫도그 가게가 설사 장사가 잘 되지 않는다고 할지라도 처분 가능한 자산이 더 많이 남을 가능성이 높아진다. 물론 만기시점에 금리는 해당 시점의 영업현황과 시장 상황에 따라 결정되므로 더 높아지거나 낮아질 수도 있다.


세 번째 조건은 이자의 지급 조건이다. 트랑쉐는 핫도그 가게가 돈을 벌던 벌지 못하던 주기적으로 이자를 지급할 것을 약속했다. 이로서 신중한 마을 사람들은 매일 핫도그 가게의 문치에 앉아서 장사가 잘되는지, 돈을 삥땅 치는 일은 벌어지지 않는지 점검을 할 필요가 없어졌다. 짧은 단위의 이자 지급주기를 설정하고 이자가 제때제때 들어오는 것을 확인하는 것만으로도 장사가 잘되는지 여부를 대략 파악할 수 있다. 게다가 이자를 지급해야 하는 의무가 있는 기업은 쉽게 현금을 유용하지도 못한다. 이자를 내야 하는 빚이 있는 자는 함부로 지출을 하지 못하는 법이다. 그리고 만약 이자가 제때 들어오지 않는다면 신중한 마을 사람들은 즉각적이고도 격렬한 자신들의 방식으로 원금을 회수할 수 있었다. 신중한 마을 사람들은 이소룡이 쌍절권을 휘두르는 것만큼이나 능수능란하게 가압류, 압류, 경매, 채권자 취소권 같은 원금 회수장치를 사용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트랑쉐와 신중한 마을 사람들의 협상으로 인해 선순위 청구권, 만기의 존재, 이자 지급의 의무는 채권에 기본적으로 내재된 속성이 되었다. 흔히 채권의 이런 속성이 너무나 당연하다고 생각하지만 이는 일반적인 조건들이 아니다. 실제로 만기가 존재하지 않는 채권, 이자지급의 의무가 없는 채권들이 존재하며 상당한 인기를 누린다. 하지만 이들은 대개 기업이 발행한 채권이 아니다. 이런 채권들은 오로지 파산 위험이 없는 정부에 의해서만 발행 가능하다. 소심한 마을 사람들은 만기나 이자지급 의무가 없는 정부 발행 무위험 채권에 굶주린 비둘기처럼 달려든다.


이자 지급의 의무 또는 만기의 존재는 자연스러운 현상이 아니다. 1년 단위로 밀을 수확하는 농부에게 3개월 만기로 돈을 빌려주고 매월 이자를 받는 다고 생각을 해보자. 이렇게 영업 주기와 재무 주기를 불일치시키는 것은 농부에게도 비극이거니와 그 농부에게 돈을 빌려준 영주에게도 비극이다. 농부가 결국 밭을 갈아엎은 다음 가진 모든 재산을 챙긴 다음 도망가버릴 수 있기 때문이다. 기업도 마찬가지다.

 

기업은 영속을 가정하고 운영된다. 수익 창출 주기가 1년 혹은 15년이 될 수도 있다. 그런데 1년 단위의 만기와 한 달 단위의 이자지급 의무를 두는 것은 기업 자체의 잠재적인 성장 가능성과 안정성을 파괴한다. 아주 좋은 기업도 일시적인 재무악화 시점에 도래하는 채권 만기로 인해 치명타를 입고 소멸할 수 있다. 이자지급도 마찬가지다. 이 두 조건은 너무나 광범위하게 관습이 된 나머지 부자연스럽다는 자연스러운 인식을 차단해버린다.


기업이 위태로울 때 소심한 마을 사람들은 자신들의 투자원금을 챙겨서 뒤도 안 돌아보고 떠난다. 남아있는 기업은 이들의 관심 밖이다. 이들은 완전한 타인이다. 이런 이유로 채권 투자자들이 투자한 자금은 타인 자금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이는 주식에 투자하는 사람들의 이익과 정면으로 배치할뿐더러 소심한 마을 사람들 자신들에게도 별도의 리스크를 부담하게 한다. 재투자 위험이다.


이자의 수취, 만기의 존재는 그 자체로 번잡스러운 일이다. 게다가 재투자 위험이라는 새로운 위험을 탄생시킨다. 이자나 원금을 받았는데 시중금리가 내려가서 동일한 수준으로 투자할 수 없는 일은 비일비재하게 일어난다. 소심한 마을 사람들 대다수가 다른 사람에게 빌린 돈으로 자금을 조달하는 은행 같은 금융기관임을 생각해보자. 만기 또는 이자의 존재로 말미암아 과거 시점에 높은 금리로 빌려서 현재 시점에 낮은 금리로 빌려줘야 하는 현상이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소심한 마을 사람들은 이 정도의 번잡성과 재투자 위험은 원금 손실 가능성 최우선이라는 대전재 앞에서 수용한 것이다.  


상환 선순위 조건

만기의 존재

이자 지급의 의무


이것이 채권이다. 이 조건들이 모두 신중한 마을 사람들에게 받아들여졌을 때 밥 아저씨의 핫도그 가게의 상당 부분은 채권의 형태로 신중한 마을 사람들에게 판매될 수 있다. 자산군으로서의 채권은 구조상 주식보다 훨씬 안전하다. 트랑쉐는 핫도그 가게의 가장 안전한 부분들을 채권의 형태로 그러모아 판매를 했다. 그리고 남은 부분이 있다. 하지만 이 남은 부분은 찌꺼기 같은 것이 아니다. 이 남은 부분이 투자의 꽃 - 핫도그로 치면 이 남은 부분이 소세지라고 할 수 있다. 트랑쉐는 소시지를 팔기 위해 용감한 마을로 향했다.



주식에 관한 다음 이야기가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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