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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형 은행원 Dec 20. 2018

4-3. 돼지 등뼈와 주식이 만들어지는 과정

주식을 만드는 방법

용감한 마을 사람들과 주식


트랑쉐는 소심한 마을 사람들에게 핫도그 가게의 가장 안전한 부분들을 채권으로 만들어 판매했다. 그 결과 용감한 마을 사람들을 방문했을 때 그의 손에 남아있던 것은 채권으로 판매하고 남은 부위뿐이었다. 그의 임무는 이것을 어떻게든 용감한 마을 사람들에게 파는 것이다. 이 부위는 통상 몇 가지 공정작업을 거친 이후 주식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게 된다. 하지만 아직 이런 공정이 완료되기 이전이므로 이 부윗살을 주식이라고 부르기는 이르다. 편의상 이 부위를 E라고 부르도록 하자. 트랑쉐는 E를 가지고 용감한 마을 사람들이 살고 있는 마을에 도착했다.


용감한 마을 사람들의 요구


이 마을에 살고 있는 가장 유명한 사람은 아마도 주식형 펀드 매니저일 것이다. 대다수의 펀드 매니저는 수익률을 올리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는데 이는 수익률이 낮으면 펀드에 자금이 유입되지 않기 때문이다. 펀드에 돈이 들어오지 않으면 매니저는 그 성과급을 받을 수 없거나 더 나쁘게는 회사에서 쫓겨날 수 있다. 이에 이들은 가급적 수익률이 높은 자산에 투자하고 싶어 했고 이를 위해 더 높은 위험을 감당할 용의가 얼마든지 존재했다. 연기금, 헤지펀드, 기업의 전략적 투자자들, 겁 없는 개인투자자들도 모두가 이 마을에 옹기종기 모여 살고 있었다.


이들은 용감했지만 북방의 야만인처럼 멍청하지는 않았다. 당연했다. 용감한 동시에 멍청한 사람들은 이미 오래전에 전멸했기 때문이다. 똑똑하며 용감한 용감한 마을의 사람들은 자신의 이익을 지키기 위해 필수적으로 필요로 하는 몇 가지 장치를 요청했다.


첫 번째는 경영 참여권이다. 채권에 투자하는 사람들은 어차피 선순위 상환과 만기, 이자지급이라는 보호 장치가 있으므로 아무리 멍청한 사람이 CEO가 되어 헛짓을 하더라도 영향이 제한적이다. 하지만 용감한 마을 사람들은 그렇지 않다. 경영진이 헛짓을 하고 매출액이 급감한다고 생각해보자. 이때 채권 투자자가 이자와 원금을 깎아주거나, 임직원이 월급을 반납하거나, 입대업자가 월세를 깎아주거나, 납품업체가 납품가를 깎아주는 일은 절대 발생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결국 그 손해를 감당하는 것은 맨 뒤에 남은 용감한 마을 사람들이 된다. 그러므로 용감한 마을 사람들은 언제든 경영진이 헛짓을 한다는 생각이 들 때마다 경영진을 바꿔치울 권리-경영참여권이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합당한 이야기다. E에 투자한 사람들이 일정한 주기마다 모여 경영진의 성과와 전략을 검토하고 필요할 때 이들을 갈아치우는 장치를 만들어 달라고 했다. 여기에는 소심한 마을 사람들도 당연히 동의한다. 멍청한 경영진이 핫도그 가게를 지배하는 것은 소심한 마을 사람들도 달갑지 않았기 때문이다. 트랑쉐는 당연히 그렇게 했다.


두 번째는 지분율의 보호이다. 핫도그 가게가 돈을 많이 벌면 경영진은 언제든 채권 투자자들에게는 채권 원리금을 조기 상환할 수 있다. 조기상환 수수료라는 것이 발생할 수 있겠지만 채권 투자자들은 상환을 거부할 수 없다. 그런데 E에 투자한 사람들은 자신들이 투자한 돈이 아무 때고 상환되는 상황을 마뜩잖게 생각했다.


용감한 마을 사람들이 지분율의 보호를 요구한 것은 당연하다. 채권 투자자들은 핫도그 가게에서 상환 가능성이라는 안정적 요인을 거의 모두 가지고 가버린 이상 남아있는 것은 오로지 성장 가능성 정도뿐이다. 하지만 이 성장 가능성처럼 추상적이고 모호한 것도 없다. 이것은 현재 시점에서 획득할 수 있는 것이 아니며 눈에 보이지도 않는다. 그리고 미래 시점에 성장 가능성이 성장이란 결실로 현실화했을 때 이것을 현금으로 바꿀 수 있는 것은 미래 시점의 지분율뿐이다. 이에 용감한 마을 사람들은 지분율의 희석에 격렬한 알레르기 반응을 보인다.


만약 핫도그 가게의 경영진들이 웃돈을 주면서까지 용감한 마을 사람들이 가진 E를 되사오려고 한다고 생각을 해보자. 이것이 의미하는 것은 단 한 가지다. E가 가진 성장 가능성의 가치가 경영진이 되사오려는 가격보다 높다는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경영진이 이것을 되사고 싶어 할 이유가 없다. 투자자에 불과한 용감한 마을 사람들이 경영 전반에 관여하는 핫도그 가게 경영진보다 E의 성장 가능성을 더 자세히 알기란 불가능하다. 정보 불균형이 발생하는 것이다. 용감한 사람들은 멍청하지 않다. 경영진은 억만금을 주어도 지분을 가진 사람들이 동의하지 않으면 단 0.0001%의 지분도 임의로 상환할 수 없다. 아니 주식에는 아예 상환이라는 단어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다.


소셜 네트워크의 사례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라는 영화의 한 장면은 상환이 불가능한 주식의 속성을 잘 보여준다. 페이스북을 창조한 것은 마크 주커버크이지만 최초 거기에 소요되는 자금을 투자한 것은 주커버크의 친구 새버린이었다. 페이스북이 어마어마한 성공을 거두고 새버린이 페이스북의 경영에 방해만 되자 주커버크는 친구를 속인 다음 지분을 빼앗아서 상장시켜 버린다. 그리고 한 임원은 분노에 차 쫓아온 새버린에게 그가 처음에 투자했던 돈의 원금을 집어던지며 가져가라고 한다.


주식 투자금에 대해 상환을 시도한 것이다. 하지만 일반적으로 상환을 통해 다른 주주의 지분을 희석시키는 것은 불가능하다. 영화 속에서 이것이 가능했던 것은 새버린이 속아서 자신의 지분이 희석되는 것에 대해 동의하는 서류에 사인을 했기 때문이다. 그가 서류에 사인하지 않았다면 주커버크는 죽었다 깨어나도 친구의 지분율을 0.0001%도 빼앗을 수 없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아마도 페이스북은 지금까지 비상장회사로 남아있었을지도 모른다.


용감한 마을 사람들은 상환불가라는 조건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갔다. 핫도그 가게가 사업 확장이나 혹은 경영악화로 인해 추가로 더 자금을 필요하다고 생각해보자. 이들은 E를 좀 더 발행하는 방법(이것을 유상증자라고 한다)을 사용해서 자금을 더 유치할 수 있다. 하지만 이 경우 추가로 발행하는 E로 인해 기존 E의 투자자들의 지분율이 희석되는 경우가 발생할 수 있다. 용감한 마을 사람들은 이 조차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러므로 핫도그 가게의 경영진들은 유상증자를 할 때 지분율을 희석시키지 않는 범위 내에서 기존 E의 투자자들에게 먼저 유상증자 참여 기회를 부여해야 한다. 기존 투자자에게 팔고 남은 것만 다른 사람들에게 판매할 수 있는 것이다.


여기서 짚고 넘어갈 것은 용감한 마을 사람들 또한 핫도그 가게에 대해 투자 원금을 상환 요청할 수 없다는 것이다. 주식의 상환을 위해서는 각종 변제를 완료하고, 종업원들을 모두 해고하며, 각종 자산을 모두 팔아치우는 청산이라는 과정을 거친 이후에만 가능한데 이 과정이 험난하기 짝이 없기 때문이다. 종업원 해고에 대해 노조가 동의할리 만무하고, 청산으로 각종 자산을 팔아치우면 제값을 받기도 쉽지 않다. 게다가 그렇게 하고 남은 돈 대부분은 선순위 상환청구권을 가진 채권 투자자들이 홀랑 가져가 버린다. 그리고 이 과정이 모두 완료된 이후 용감한 마을 사람들이 가져갈 수 있는 투자원금은 거의 남아있지 않거나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은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E는 거래가 될지언정 상환되지는 않는다. 채권 투자자의 돈은 타인자본이라고 부르지만 주식 투자자의 돈을 자기 자본이라고 부르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주식의 기대수익률


어떤 비즈니스건 안전한 부분은 존재한다. 트랑쉐는 핫도그 가게의 내부에 존재하는 안전한 부분들을 조심스럽게 발라내었고 소심한 마을 사람들의 입맛에 맞게 몇 가지 옵션을 붙여 채권으로 가공했다. 그리고 소심한 마을 사람들에게 판매했다. 이것은 생각처럼 간단한 일이 아니다. 기업매각은 동물적인 감각이 필요한 일종의 복합 금융 예술이다. 트랑쉐는 변덕스러운 자본시장의 입맛에 맞는 딱 그만큼의 기대이익과 리스크를 조합한 채권을 만들어 팔아야 했다. 수요와 상품이 맞아떨어질 때 채권은 신중한 마을 사람들에게 날개 돋친 듯 팔려 나간다. 앞서 지구인 대다수가 위험 회피적이라고 이야기했다. 채권에는 구조적으로 리스크가 적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지구인들의 수요가 많다. 수요가 많다는 것은 낮은 기대이익을 더 높은 가격에 팔 수 있다는 것이다. 채권 투자자들은 그만큼 더 낮은 수익률을 감수한다. 이것이 금융시장이 작동하는 방식이다.


하지만 채권을 만들어 내고 남은 부분에는 그만큼 더 많은 리스크가 내재되어 있을 수밖에 없다. 리스크가 많은 자산은 인기가 없다. 하지만 해법은 존재한다. 정육업자는 돼지를 잡을 때 뼈가 많아 인기가 없는 부위에는 살코기를 일부러 많이 붙여서 염가에 판매하고 이를 통해서 재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돼지 등뼈가 동일한 가격에 가장 많은 살코기를 먹을 수 있는 부윗살인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트랑쉐가 주식을 판매하기 위해 사용한 방법도 동일하다.


리스크가 있는 부위에는 기대이익을 넉넉히 붙여서 판매하면 된다. 트랑쉐는 가장 위험한 부위에 기대이익을 넉넉하게 붙인 다음 작게 썰어서 염가 판매한다. 이를 위해서는 채권에 붙는 기대이익을 가급적 최소화하면서도 시장에서 무리 없이 소화되도록 하기 위한 치밀한 작업이 필요했다(한 기업의 기대이익은 대개 고정된 값이다). 트랑쉐는 대체로 이 일을 잘하는 편이었고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위험한 부위에 기대이익을 많이 붙이기 위해 트랑쉐는 채권에 기대이익이 너무 많이 가지 않도록 사전에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그만큼의 기대이익이 주식투자자에게 간다. 지구인은 대체로 위험을 좋아하지 않지만 밥 아저씨의 핫도그 가게는 넉넉한 기대 이익률로 인해 트랑쉐는 핫도그 가게의 주식을 모두 완판 시키는 데 성공했다. 이 작업이 미진할 때 발생하는 메자닌- 땜빵을 만들어서 파는 불상사도 일어나지 않았다.


이로서 트랑쉐는 밥 아저씨의 핫도그 가게를 최초 제안한 판매 가격에 주식과 채권이라는 두 부윗살로 나누어 깔끔하게 완판 하는 데 성공한 것이다.  트랑쉐는 바람처럼 달려 밥 아저씨에게 갔고 자신 몫의 수수료를 받아갔다.


트랑쉐라는 남자


트랑쉐라는 남자의 이름의 유래에 대해 조금 이야기하려고 한다. 하나의 기업을 몇 가지의 이질적인 권리로 분할하는 것을 영어로 트렌칭(Tranching)이라고 한다. 그리고 이렇게 분할된 각각의 권리는 트렌치(Tranche)라고 불린다. 즉 주식과 채권은 각각의 트렌치인 것이다. 트렌치란 단어는 프랑스어 트랑쉐(tranché [ tʀɑ̃ʃe ])라는 단어에서 유래했다. 이 단어는 거대한 향유고래부터 돼지까지 커다란 짐승을 다양한 부위로 나누는 것에서, 햄이나 치즈 같은 작은 식품을 칼로 슬라이스 치는 것까지를 포괄하는 단어다. 기업을 주식과 채권의 형태로 나누는 것은 기본적으로 돼지를 분해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다만 통상적인 기업의 규모가 향유고래 따위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거대하며, 짐승을 잘라내기 위해 사용하는 톱과 칼 대신 법무법인과 그 소속 변호사, 법무사가 사용된다는 점 정도가 다를 뿐이다.


전지전능한 변호사의 존재로 말미암아 트렌칭이 가능한 자산은 기업에 국한되지 않는다. 현금흐름을 동반하는 모든 자산은 트렌칭이 가능하다. 부동산, 그림, 조각, 인공위성, 비행기 등 사실상 모든 가격이 있는 자산에 대해 주식과 채권 그리고 필요하다면 기타 등등의 자산군을 만들어 내는 것이 가능하다. 각각의 부윗살은 아마 트렌치 1, 트렌치 2라는 이름으로 불릴 것이다. 이들 또한 마찬가지로 금융시장을 통해 거래된다.


마무리


채권 투자자들은 선순위 상환청구권이라는 장치를 통해서 상환 안정성을 가져갔다. 주식투자자들은 지분율 보호와 경영권 참여 장치를 통해서 최소한의 안전장치와 향후 예상되는 성장에서 발생하는 수익이 희석되는 것을 방지하는 장치를 마련했다. 트랑쉐는 요령 좋게 칼을 휘둘러 밥 아저씨의 핫도그 가게를 채권과 주식이라는 두 이질적인 자산으로 가공해냈고 금융시장에서 판매할 수 있었다.  


지금까지 주식과 채권을 만들어지는 기본적인 과정에 대해 이야기했다. 여기에는 상식과 관습이라는 요소가 주로 작동했다.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주식과 채권이 금융시장에서 정상적으로 거래되기 위해서는 외부적인 보호장치가 필요하다. 요컨대 거래소와 회계감사 같은 것이 그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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