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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형 은행원 Dec 30. 2018

4-6. 주식시장과 이마트

전통적 자산군과 대체투자 자산군의 차이


이마트와 재래시장


나임이 살고 있는 동네에는 두 종류의 시장이 공존하고 있다. 이마트와 재래시장이다. 처음 이 동네에 이사를 왔을 때 나임은 조만간 재래시장이 사라질 것이라고 생각했다. 주차장도 불편하고, 가격도 일일이 흥정해야 하며, 지저분하기까지 한 재래시장은 이마트와 경쟁이 되지 않는다. 그런데 상당히 오랜 시간이 지났지만 재래시장은 아직 그대로 존재하고 있다. 이는 재래시장이 이마트가 제공할 수 없는 어떤 특별한 효용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아마 앞으로도 계속 이마트는 재래시장의 영역을 잠식할 테지만 모든 영역을 다 먹어치우지는 못할 것이다.


재래시장과 이마트는 유사한 시장으로 분류되지만 이 둘을 같지 않다. 우선 이마트의 경우는 범용적이다. 이곳에선 모든 상품을 판매하며 모든 사람이 이용한다. 이마트에 판매되는 모든 물건은 규격화되어 있으며, 엄격한 정찰제가 적용된다. 아무리 캐셔랑 친분이 있어도 에누리를 받을 가능성은 전혀 없다. 마찬가지로 바가지를 쓸 일도 없다. 누가 언제 가서 무엇을 집어 들건 준수한 가성비를 확보할 수 있다. 게다가 주차도 편하다. 누구나 쉽게 진입할 수 있는 곳이다.


재래시장은 이마트와 조금 다르다. 이곳에서 주로 판매되는 것은 농축수산물이다. 재래시장에는 라면이나 소주, 샴푸 같은 것을 매대에 깔아놓고 물건을 파는 사람이 없다. 먼 과거 재래시장은 이런 공산품을 판매하던 적도 있었지만 공산품 영역은 이제 이마트가 모두 장악해버렸다. 그러므로 재래시장에서 주로 판매되는 물건들은 농축수산물뿐이다. 이들은 표준화될 수 없다. 이곳에서 물건에 쓰여있는 가격은 초현실 추상미술만큼이나 해석의 여지가 훨씬 자유롭다. 그러므로 재래시장에서 대다수의 재화는 흥정을 바탕으로 거래된다. 규격화도 없고 환불 교환도 제한적이다. 품질도 들쑥날쑥하고 어설프게 행동하면 바가지를 쓰기 십상이다. 주차장도 엉망이다. 그럼에도 특정한 자질을 갖춘 어떤 사람은 이마트보다 재래시장을 더 선호한다.


예를 들면 40~60대의 여성 - 엄마들이 그렇다. 이들은 수십 년간의 가사 경험을 바탕으로 농축수산물의 질을 손금 보듯 파악할 수 있다. 상인과 길고 격렬한 흥정을 감내할 정신적 강임함을 가지고 있다. 아울러 광범위한 지역 연고를 가지고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들에게 어쭙잖게 바가지를 씌웠다간 정말로 혼쭐이 날 수 있다. 이때 이들이 재래시장에서 만들어 낼 수 있는 가성비는 이마트의 그것을 가볍게 압도한다. 엄마들이 김장을 하거나, 아들딸 장가 시집보내기 위해 귀한 식재료를 사러 가는 곳은 대부분 재래시장이었다.


이마트는 편하다. 모든 것이 표준화되어 있고 정찰제가 시행되기 때문이다. 누구라도 별다른 노력 없이도 준수한 가성비의 쇼핑을 할 수 있다. 하지만 이는 뒤집어 이야기하면 이마트에서 압도적인 가성비를 달성하기 어렵다는 말이다. 강박증에 사로잡혀 이마트와 홈플러스, 롯데마트 팸플릿을 샅샅이 비교 분석하여 카트를 채우는 사람과 대충 매대를 둘러보고 물건 몇 개를 집어서 카트를 채우는 사람이 달성할 수 있는 쇼핑 가성비의 차이는 사실상 그리 크지 않다. 특히나 공산품의 경우는 더욱 그렇다. 재래시장은 그렇지 않다. 40~50대의 주부가 갑자기 비가 오는 주말에 시장이 문을 닫기 직전 시장에 방문하여 상인과 치열한 가격 흥정을 한 다음 채우는 장바구니는 이마트가 감히 법접할 수 없는 가성비를 만들어 낸다. 물론 이는 몇몇 요건을 갖춘 사람에게만 해당한다. 만약 30대의 남성이 어쭙잖게 재래시장에 가서 흥정을 하겠다고 허우적거려봤자 얻을 건 아무것도 없다. 재래시장에서 30대 남자는 별반 재미를 볼 수 없고 심지어 바가지를 쓰는 경우도 태반이다. 이런 사람 차별적인 가격 정책을 통해 재래시장은 40~60대의 여성이라는 파워 구매자를 통한 지속적인 수요 유지와 30대 남성이라는 호구를 통한 수익성 증대라는 상반되는 두 목적을 동시에 달성하는 것이다. 여기에는 얼굴만 딱 봐도 호구와 고수를 가르는 시장 상인들의 노련함이 작용한다. 아마 재래시장의 입지는 계속 좁아지겠지만 결코 완전히 없어지지는 않을 것이다.


시장이란 곳이 원래 좀 불공평한 곳이다. 그러다 이마트라는 곳이 생겼다. 이곳은 공정하다. 가격은 모두 가격표에 써져있고, 사람에 따라 차별적인 가격 정책을 펼치는 곳도 아니다. 모든 상품은 공산품이다 보니 표준화되어 있고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옆에 있는 홈플러스와 가격을 1:1로 비교해 더 저렴한 곳에서 살 수도 있다. 그러다 보니 어느 수준의 가격 경쟁력은 만들어진 것이 아닐까? 하지만 이마트가 언제나 재래시장보다 나은 경쟁력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투명한 물에는 큰 물고기가 살지 않는다. 이것은 재래시장에서 배추를 사는 것은 물론이고 그리고 금융시장도 마찬가지다. 정말로 압도적인 성과는 좀 더러운 시장에서 발생하는 법이다.


전통적 금융자산과 이마트


금융시장에는 라면이나 소주처럼 표준화된 공산품 같은 자산들이 존재한다. 반면 고춧가루나 편육처럼 표준화가 되기 어렵거나 일반적이지 못한 자산들도 존재한다. 이 두 그룹의 금융자산들을 구분하는 경계는 흐릿하지만 분명히 존재한다. 그리고 두 자산군이 유통되는 경로는 같지 않다.


앞서 우리는 밥 아저씨의 핫도그 가게에서 만들어진 주식과 채권에 대해 이야기했다. 이런 주식과 채권은 표준화된 공산품에 가까운 자산군이다. 핫도그 가게는 다른 모든 기업과 동일한 회계기준으로 작성된 재무제표를 제공한다. 거래소를 통해 거래되므로 각각의 종목에는 한 시점에 오직 한 개의 시장 가격만이 존재한다. 가격은 끊임없이 변하지만 이는 수요와 공급에 따른 것이지 매도자와 매수자에 따라 차별적으로 만들어지는 가격이 아니다. 게다가 한번 거래소에 상장된 이상 모든 거래 가격과 거래물량에 대한 데이터가 실시간으로 시장에 제공된다. 이러한 요소들은 사실상 주식과 채권이 표준화되어 정가제가 도입되는 것과 유사한 상황을 만들어 낸다. 금융시장 참가자들은 핫도그 가게의 재무제표와 과거 거래 가격, 유사 기업의 가격 등을 바탕으로 상당히 정확한 수준에서 가치를 산출할 수 있다. 그리고 핫도그 가게 주식을 사고자 하는 사람은 주식을 고른 다음 집중화된 거래소로 가서(중간에 증권사라는 중개업체를 경우 하긴 하지만) 돈을 내고 사면된다. 팔 때도 마찬가지다. 거래소는 누가 무엇을 왜 사는지 따위에는 관심이 없다. 그저 불특정 다수의 매수자와 매도자를 매칭 시켜 거래를 완료시킬 뿐이다. 한 번이라도 주식을 사본 사람이라면 주식을 사는 것이 이마트에서 라면을 사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채권과 주식을 전통적 자산군이라고 부른다. 주식과 채권 시장이 효율적으로 작동하는지에 대한 의견은 분분하다. 그러나 전통적 자산군과 다른 자산군과 함께 작동하는 방식을 비교해보면 답은 좀 더 명료해진다. 감사가 완료된 재무제표와 집중화된 거래소의 존재는 그 자체로 중요한 금융인프라가 된다. 진입장벽이 존재하지도 않으므로 이러한 인프라들을 바탕으로 주식시장과 채권시장에는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매도자와 매수자가 시장에 참여하고 있다. 투명하고 공정한 시장과 수많은 참가자는 시장의 효율적인 작동으로 이어진다. 주식과 채권시장이 이런 요소를 갖추지 못한 다른 자산군들 보다는 더 효율적으로 작동할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주식과 채권을 제외한 다른 자산군에는 이러한 시스템적 요소들이 전부 또는 아예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는 또한 주식채권 시장에서 아무리 똑똑하게 행동하건, 멍청하게 행동하건 얻을 수 있는 수익률-위험의 페이오프가 그다지 큰 차이를 나타내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대체투자와 재래시장


금융시장에는 상장주식과 채권 이외에 다른 자산군들이 존재한다. 예를 들어 벤처캐피털, 부동산(한국의 아파트는 제외하도록 하자. 이들은 너무 표준화되어 있고, 사실상의 실시간 거래 데이터가 제공되며,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매도자 매수자가 득실거리는 시장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일반적인 상가, 공장, 농장, 대지, 산야는 표준화라는 요건과는 거리가 한참 멀다), PF(Project Finance), LBO(Leveraged Buyout), NPL(Non Performing Loan), 비상장주식, 헤지펀드, 예술작품, 금, 원유 같은 자산들이 그것이다. 이들에게는 주식시장과 채권시장이 가진 시스템적인 속성이 일부 또는 전부 결여되어 있다.


가장 먼저 이들에게는 높은 진입장벽이 존재한다. 예를 들어 PF를 생각해보자. PF란 비행기, 부동산 개발사업, 미분양 아파트, 선박 같은 기초자산을 바탕으로 만들어지는 맞춤형 상품이라고 할 수 있다. PF에 투자하기 위해서는 오십억 원에서 오백억 원을 넘는 최소 투자 원금이 필요하다. 설사 이런 돈이 있다고 하더라도 PF 투자기회를 가지고 있는 금융업자들은 이런 투자 참여기회를 일반적인 개인에게는 제공하지 않는다. 이런 투자기회가 대중에게 제공되지 않는 주요 이유는 소액투자자에 대한 보호의무 내지는 번잡성 때문이다. PF에 많은 경험과 법률지식, 시장 지식이 있는 전문 투자기관끼리 5줄짜리 카카오톡 메시지 하나로 요약할 수 있는 내용을 일반 대중에게 설명하기 위해서는 수백 장의 문서와 별도의 상품 설명서와 설명회, 설명을 온전히 했다는 증빙 같은 것들이 필요하다.


게다가 이렇게 더 배려를 했음에도 손실이 발생했을 때 소송을 남발하는 것은 대개는 소액투자자들이다. 서로 오랫동안 거래했고, 앞으로도 함께 거래해야만 하는 기관투자자들끼리는 어지간해서 소송을 하지 않는다. 소송을 남발하는 기관투자자는 모두 오래전에 멸종했는데 이는 누구도 이들과 거래하고 싶어 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마땅히 굶어 죽어버렸다. 주식과 채권의 상품구조는 매우 단순하다. 하지만 PF는 정확히 이것이 무엇인지 설명하는 데 성공한 사람이 아무도 없을 정도로 복잡하고 표준화된 구조가 존재하는 것도 아니다. 복잡성과 특수성은 일반 투자자를 배제하는 산업 관행으로 이어진다. 진입장벽이 존재하는 것이다. 진입장벽이란 단어에 군침이 돌지 모르지만 애석하게도 여기에 참석할 수 있는 티켓은 한정적이고 일반적인 개인에게는 제공되지 않는다.


대체투자군의 두번째 특징은 통상 재무제표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설사 존재한다고 할지라도 일반적인 기업보다는 그 사용이 매우 제한적이다. 원자재 같은 자산은 그 특성상 재무제표가 존재할 수 없다. 부동산, 예술작품 같은 경우 자가 사용을 할 경우 수익과 비용, 현금흐름이 발생하지 않는다. 재무제표 따위 만들 수 없다. 이런 자산들을 설사 임대한다고 할지라도 이는 너무 쉽게 조작될 수 있다. 나와 특수관계가 있는 사람들에게 터무니없이 높거나 낮은 가격으로 임대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부동산이나 예술작품 같은 자산들은 대부분 상장된 상태로 거래되지 않는다. 상장되지 않았기 때문에 관련 재무자료를 공시할 의무도 없다. 유사한 자산들의 공시된 자료가 없다. 이는 대조군이 없다는 것이고 대조군이 없으면 임대료의 적정여부 따위 알 방법이 없다. 벤처캐피털도 마찬가지다. 초창기의 페이스북, 구글, 카카오톡처럼 아주 초기 인터넷 기업이라서 사용자 숫자는 폭증하고 있지만 수익이 전무할 수 있다. 인터넷 기업뿐만 아니라 수많은 기업들이 사업 초기에는 수익을 내지 못한다. 자산도 없고 수익도 내지 못하는 기업의 재무제표를 바탕으로 가치 산정을 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재무제표로서의 효용이 제한적이다.


마지막으로 대체투자 자산 대부분은 집중화된 거래소에서 거래되지 않는다. 비상장 주식이나 벤처캐피탈 주식, 을 생각해보자. 대다수의 거래는 거래소를 통해 이루어지지 않는다. 이들의 거래는 지인, 브로커, 광고 등을 통해 이루어진다. 이 때문에 거래도 드물고 거래가 이루어진다고 하더라도 거래 내용은 공개되지 않는다. 설사 나 이외의 다른 사람들이 해당 자산을 거래했다고 하더라도 그들이 얼마에 얼마만큼의 매물을 어떤 조건으로 거래했는지는 당사자 이외에 아무도 알지 못한다. 물건의 상태와 과거 거래 가격에 대하 아무런 확고한 데이터가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가격에 대한 확고한 기반이 없는 매수자와 매도자의 거래는 재래시장의 그것과 매우 유사하게 전개된다. 에누리를 하려는 사람과 바가지를 씌우려는 사람의 맹렬한 협상이 시작되는 것이다.


대체투자의 경우 높은 진입장벽, 불완전한 재무 데이터, 불완전한 가격 데이터라는 한계로 인해 재래시장과 비슷한 방식으로 작동한다. 이때 수익을 보는 자와 손해를 보는 자 또한 재래시장과 비슷한 논리로 결정된다. 힘이 있는 사람은 더러운 시장에서 더 높은 수익을 얻을 수 있다. 반면 여기서 힘이 없는 사람은 바가지만 쓸 뿐이다. 그러므로 각각의 시장에 맞춰 각각에 맞는 전략을 수립하여 접근해야 한다. 주식과 채권 시장에 어떻게 투자해야 하는가? 이 답은 이미 정해져 있다.


주식과 채권에 대한 이야기가 다음 글에서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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