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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형 은행원 Jan 13. 2019

5-1. 완벽한 금융시장과 펀드의 탄생

펀드의 구조에 관한 이야기들

시장 포트폴리오를 복제하는 방법


아주 먼 과거 올림푸스의 신들이 지구인들에게 아직 호의적이었던 시절이 있었다. 후세의 사람들은 당시를 가리켜 금의 시대라고 불렀다. 헤파이스토스와 헤르메스의 호의에 힘입어 당시 지구의 금융시장은 완벽하게 작동했다. 금융시장에 순수한 무작위성은 남아 있었지만 누구도 금융시장보다 현명할 수 없었다. 금융시장보다 높은 수익을 얻은 사람은 단순히 운이 좋았거나 더 많은 위험을 감수한 결과 리스크 프리미엄을 얻은 사람들뿐이었다.


수학자들과 철학자들은 금융시장이 완벽하므로 인간은 금융시장의 베팅을 그대로 복제해서 시장 포트폴리오를 구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신전의 무녀 또한 그것이 신의 뜻이라고 했다. 하지만 당시에는 소수의 사람을 제외하고는 시장 포트폴리오를 구축한다는 것이 쉽지 않았다. 이것은 순전히 물리적인 문제였다.


금융시장에 존재하는 모든 투자가능 자산군은 최소 거래 단위가 정해져 있다. 우리가 카페에서 아메리카노 0.0043잔을 구입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시장 포트폴리오를 구축하기 위해서는 금융시장에 존재하는 수십만~수천만 개에 달하는 자산들을 시장의 자산배분과 동일한 비율로 구입을 하여야 한다.


만약 금융시장에 자산의 종류가 A, B, C 세 개뿐이고 각각의 가치가 정확히 1:2:3의 비율을 이루고 있다고 생각해보자. 만약 거래단위가 각각 100원이라면 우리는 A, B, C를 각각 100원, 200원, 300원어치를 삼으로써 금융시장을 그대로 복제할 수 있다. 이때 필요한 최소 금액은 600원이다. 하지만 금융시장에 수백만 개의 자산이 존재하며 각각의 자산의 최소 거래단위가 100원에서 2,000억 원까지 광범위하게 분포하고 있을 때 시장 포트폴리오를 구성하는 것은 물리적으로 불가능해진다. 금융시장에 존재하는 모든 자산의 최소 거래 단위와 시장의 비율이 동일해질 수 있는 최소 공배수는 수천억 원에서 수조 원에 달할 수 있기 때문이다.


금의 시대에도 수천억 원 단위의 돈으로 포트폴리오를 구축할 수 있는 것은 몇몇 왕과 제후 밖에 없었다. 금의 시대 사람들은 누구나 헤파이스토스 신전에 설치된 단말기를 통해 궁극의 포트폴리오를 만들 수 있는 레시피를 언제든지 볼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시장 포트폴리오를 구축하기 위해 소요되는 최소자금 단위라는 허들 때문에 시장 포트폴리오를 구축할 수 없었다. 극소수의 사람들만이 시장 포트폴리오를 만들어 투자를 했고 대다수의 투자자들은 금융시장의 언저리에서 시답잖은 투자를 하며 살았다. 대개는 투자라기보다는 짤짤이에 가까운 것이었다.


멕시칸 스탠드오프와 펀드의 탄생


금의 시대에는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나라들이 존재했다. 작은 나라도 있었고 큰 나라도 있었다. 작은 나라의 왕들은 자산규모가 작았기 때문에 시장 포트폴리오에 투자할 수 없었다. 이들은 시장 포트폴리오에 투자할 수 없었고 이로 인해 시장 포트폴리오에 투자하는 큰 나라의 왕들과의 수익률의 차이가 누적되는 상황을 우려했다. 때때로 작은 나라의 왕들은 순전히 운에 의해 시장 포트폴리오보다 높은 수익률을 얻을 수는 있었지만 이것은 지속 가능한 현상이 아니었다. 장기적으로는 결코 시장 포트폴리오를 이길 수 없다. 작은 나라의 왕들은 장기 수익률의 차이로 인해 발생할 멸망의 순간을 기다리고 있었다. 수학적으로 증명된 작은 나라들의 멸망은 천천히 하지만 확실히 다가오고 있었다.


작은 나라의 왕들 몇몇은 서로 돈을 모아서 시장 포트폴리오를 만드는 생각을 했다. 함께 돈을 모아 시장 포트폴리오를 구축하고 투자금액에 비례하여 수익을 함께 공유하는 것이다. 마치 계처럼 말이다. 처음에 이런 집합투자는 좋은 생각처럼 여겨졌지만 결코 이루어질 수는 없었다. 테베의 왕이 시장 포트폴리오를 구축하기 위해 자신의 돈을 코린토스의 왕에게 송금하는 순간 코린토스의 왕은 당장 성문을 걸어 닫고 입을 싹 닫을 수 있기 때문이다. 분명히 그럴 것이다. 그 순간 테베라는 나라는 지도에서 사라지게 된다. 그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당시만 해도 한나라가 다른 나라에 자신의 돈을 맡아달라고 하는 것은 인간이 상상할 수 있는 모든 일 중 가장 어리석은 일이었다.


돈을 누가 맡을 것인가 하는 사소한 문제를 해결하지 못해 멸망을 기다리고만 있던 작은 나라의 왕들에게 어느 날 한 청년이 나타났다. 청년의 이름은 오디세우스였고 자신이 신탁(信託)의 힘을 빌려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하였다.


먼 옛날 전사들은 신의 부름을 받고 전쟁에 나갈 때면 자신의 전재산을 믿을 수 있는 친구에게 신탁을 하곤 했다. 만약 자신이 전쟁터에서 죽으면 신탁을 받은 친구는 그 재산으로 자신의 자녀들을 보살펴주다가 자녀가 성인이 되면 그 재산을 돌려주라는 약속이었다. 간혹 재산을 맡아준 친구가 파산을 하거나 반역자로 몰려 재산이 몰수될 위험이 있었다. 이 경우 친구는 자기 재산을 몰수하고 자신을 노예로 파는 것은 동의하지만 자기 금고에 있는 2억 원과 성 밖의 농장 0.5 에이커는 지금 바다 건너에서 전쟁을 하고 있는 테세우스의 소유이니 손대지 말라고 이야기했을 것이다. 이 경우 누구도- 심지어 왕조차도 신탁된 재산에 손을 댈 수 없다. 만약 그랬다간 올림푸스의 신들이 대로해서 그를 산채로 태워버렸을 것이기 때문이다. 지옥이 가장 깊숙한 곳은 신탁된 자금에 손을 댄 사람을 위해 비워져 있다. 지금 테세우스는 신의 뜻을 대신해 성전을 치르고 있는 것이고 그의 재산은 어떠한 상황에서도 보호받아야 한다. 이러한 전통은 신성한 것이고 전쟁의 역사와 함께 신탁이라는 제도로 구체화되었다.

오디세우스는 시장 포트폴리오 구축을 위해 작은 나라의 왕들의 돈을 중립적인 제삼자에게 신탁하여 관리해야 한다고 이야기했다. 이 경우 왕 중 하나가 돈을 횡령하는 위험을 제거할 수 있다. 왕들은 오디세우스의 말이 옳다고 생각했다. 그들은 자신들이 가진 황소 중에 가장 살찐 것들을 헤르메스 신전에 제물로 바치고 자신들이 신탁을 통해서 집합투자를 할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이야기했다. 헤르메스는 왕들의 재산을 올림푸스 은행에 신탁(信託)하라는 신탁(神託)을 내렸다.


왕들은 자신들이 가진 돈을 올림푸스 은행에 신탁했고, 은행은 왕들이 낸 돈의 비율만큼 신탁수익권을 발행해 주었다. 왕들은 신탁수익권자가 된 것이다. 왕들은 주기적으로 모여서 자신들의 돈을 어떻게 운영할지 결정을 했고 올림푸스 은행은 왕들의 결정에 따라 돈을 운용했다. 돈의 규모가 충분하고도 남았기 때문에 왕들은 안정적으로 시장 포트폴리오 복제할 수 있었다. 왕들은 신탁된 자산의 일부를 매년 신탁수수료로 올림푸스 은행에 제공했고, 올림푸스 은행의 대주주인 헤르메스는 점점 예대마진이 감소하는 상황에서 추가 수입원을 만들어 낼 수 있어 행복했다.


일반적으로 우리가 주변에서 흔히 보는 계와 펀드의 결정적인 차이가 신탁 여부에 있다. 두 경우 모두 투자 결과에 따라 돈을 잃거나 얻을 수 있지만 계와는 다르게 펀드에서는 누군가가 투자원금을 들고 튀는 일은 발생할 수 없다. 돈이 모두 신탁 영업권을 가진 신용 있는 금융기관(대개는 은행)에 신탁이 되어 있기 때문이다. 설사 은행이 파산을 한다고 할지라도 돈이 은행신탁계정에 들어있고 내게 신탁수익권이 있는 이상 내 돈은 안전하다.

그러나 문제는 남는다. 아무리 신탁을 통해 시장을 복제한다는 단순한 전략을 쓴다고 해도 그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시장의 범위가 광범위하고 금융시장의 자산분배가 실시간으로 끊임없이 변하였기 때문이다. 잠시라도 신경을 쓰지 않으면 포트폴리오는 시장 포트폴리오와 어그러진 채 비틀거리곤 했다. 게다가 이런 경우 재빠르게 대처해야 할 왕들은 자신들은 각자의 이해관계 때문에 포트폴리오 운용에 대한 의견 일치를 이루지 못하는 경우가 태반이었다.


왕들은 다시 한번 살짝 황소를 제단에 올리고 신에게 조언을 구했다. 헤르메스는 그들이 전문적인 지식이 부족하고, 의견 일치를 보기도 쉽지 않으므로 전문적인 지식을 가진 오디세우스에게 펀드를 위탁하여 운용하도록 하라고 신탁했다. 일반적인 경우 이런 일은 상상하기 힘들다. 왕들이 자신들의 재산을 친인척도 아닌 남에게 맡긴다는 것은 상상하기 힘든 일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경우 왕들의 돈은 모두 올림푸스 은행에 신탁이 되어 있었기 때문에 왕들은 동의할 수 있었다. 자금이 신탁되어 있는 이상 오디세우스는 왕들의 돈에 대해 운용지시는 할 수 있었지만 그 돈을 훔칠 수 있는 방법은 없었다.


오디세우스는 왕들이 모두 모여서 투자의사결정을 하는 것이 얼마나 비효율적인지 이야기했다. 하지만 이런 자산운용을 자신에게 맡김으로써 왕들의 펀드는 더 효율적으로 관리될 수 있다고 했다. 예를 들어 오디세우스의 사무실에는 신탁은행에 자산운용지시를 내릴 수 있는 전산시스템이 갖춰져 있어서 아무리 복잡한 거래라도 실시간으로 운용지시를 할 수 있으며, 자신이 하루 종일 금융시장을 모니터링하면서 가장 적절한 방법으로 운용을 함으로써 왕들은 그 자신들의 고유 업무-정적 제거와 혈통보전-에 매진할 수 있다. 늦은 시간까지 의견이 분분했지만 결국 모두가 오디세우스가 펀드 자산을 운용하는 것에 동의했다. 오디세우스가 자산을 운용하는 모습을 보다가 아니다 싶으면 언제든지 그를 죽이고 다시 이전의 방식으로 돌아갈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로서 펀드의 자산을 은행에 신탁하고, 그 자산의 운용을 오디세우스-전문적인 자산운용사가 맡아서 전담하는 원시적 형태의 펀드가 완성되었다. 신탁은행은 신탁계약서와 자산운용사의 지시에 따라 자산을 운용하지만 자산운용사(오디세우스)가 수익자(왕들)의 이익을 침해하는 행위에 대하서는 일차적인 감시의 역할도 하게 된다. 이러한 구조가 공동투자에 내재된 본질적인 위험 - 누군가가 돈을 들고 튈 위험과 공동투자에 있어서 발생할 수밖에 없는 비효율적인 의사결정체계-의 상당 부분을 제거하는데 커다란 기여를 하게 된다.


금의 시대, 은의 시대, 청동의 시대가 차례차례 저물었다. 지금 우리는 철의 시대에 살고 있다. 철의 시대의 금융시장이 효율적으로 작동하는지의 여부에 대해 우리는 명확한 답을 알지 못한다. 하지만 지금도 펀드는 존재하며 펀드의 기본적인 구조는 금의 시대나 지금이나 차이가 없다. 수익자(왕)가 있고 신탁업자(올림푸스 은행)가 있으며 자산운용사(오디세우스)가 있다. 펀드는 이 삼각형을 기반으로 작동한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앞서 쓰던 주식과 채권시장에 대한 글이 온전히 마무리되지 못했지만 오늘까지 브런치 북 프로젝트가 마감이라서 우선 작성된 글들을 먼저 등재하려고 합니다. 다음 글에서는 펀드의 기준 가격과 펀드 유통 구조에 대해 이야기하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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