펀드 기준 가격과 개방형 펀드의 탄생
기준 가격과 펀드 유통망의 탄생
최초 펀드가 만들어진 것은 네덜란드였다. 당시에는 주식이 지금처럼 흔한 자산이 아니었기 때문에 펀드에 주로 담겨서 운용되던 것은 유럽의 국왕들이 발행한 채권들과 식민지 농장에서 발행한 채권들이었다. 이러한 채권들의 액면가가 너무 컸기 때문에 일반적인 투자자가 투자를 할 수 없었고, 때문에 자연스럽게 펀드라는 도구가 발전을 했던 것이다.
당시에 이루어지던 채권들이 모두 실물이었던 점을 감안했을 때 투자란 지금과 전혀 다른 의미에서 위험천만한 것이었을 것이다. 우선 채권이 실물인지 위조된 것인지 판단할 수 있는 전문가가 필요해졌다. 이들은 증권의 실물 여부와 더불어 각 나라의 국왕 혹은 식민지의 농장들이 정말 채무상환을 할 수 있을지의 여부도 판단을 해 채권을 매매했을 것이다. 그리고 이렇게 매입한 채권실물을 안전하게 보관해주는 신탁기관 또한 필수적으로 필요다. 이렇게 최초의 근대적인 펀드가 등장을 했지만 펀드에 내재된 몇 가지 문제점이 드러났고 이것을 해결하기 위한 방법들이 도입되면서 펀드는 현재의 모습과 비슷하게 발전을 해왔다.
초기의 펀드가 가진 가장 큰 문제는 펀드의 환매가 불가능하다는 것이었다. 최초의 펀드는 펀드가 설정이 된 이후에는 펀드에 추가로 돈을 넣거나, 펀드에서 돈을 빼는 것이 불가능한 폐쇄형(closed) 펀드였다. 펀드 수익권을 가지고 신탁사에 가서 돈을 돌려달라고 이야기해도 은행은 수익권에 기재된 운용기간- 예컨대 25년을 다 채우고 가지고 오라고 이야기했던 것이고, 그전에 정말로 돈이 급하면 중고나라에 펀드 수익권을 올려서 팔든 말든 알아서 하라고 이야기했던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 중고나라에 펀드 수익권을 팔려고 올려도 제 값을 받기가 매우 어려웠는데 이것은 실제로 펀드 자산의 가치가 얼마인지 누구도 정확히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자산운용사가 일정한 주기마다 펀드의 가치와 수익률을 평가해서 공시를 하곤 했다. 하지만 이렇게 일정한 주기로 펀드 자산의 가치를 발표하되 환매는 25년 뒤에나 가능한 상황은 결코 투자자들에게 유익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자산운용사가 악의를 가지고 펀드 가치를 부풀려서 공시를 하더라도 그것을 검증을 할 수 있는 방법이 없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 경우 자산운용사가 똥 같은 자산을 금쪽같은 가격에 산 다음에 장부를 장밋빛으로 써서 보고를 했을 때 투자자들은 펀드 안에 들어 있는 게 똥인지 된장인지 알 방법이 없다는 것을 의미했다. 자산운용사들은 그런 거래를 하고 두둑하게 뒷돈을 받곤 했다. 그래서 폐쇄형 펀드 수익권은 자산운용사가 주장하는 가치와는 상관없이 똥값에 거래가 되곤 했다. 초창기 펀드 투자자들은 그다지 재미를 보지 못했다.
펀드 산업은 그래서 그 뒤로도 오랫동안 성장하지 못하고 금융산업의 구석진 곳에서 은행이나 증권사의 눈치나 보면서 그렇게 존속을 하고 있었다. 그러다 1924년 매사추세츠 펀드가 나타난다. 최초의 개방형 펀드의 등장이자 비로소 현대적 의미의 펀드가 등장하게 된 것이다.
개방형 펀드의 경우도 매 영업일 펀드의 순자산가치를 평가해서 수익/손실을 발표하게 된다. 그리고 수익 권당 순자산가치를 기준으로 투자자는 기존 투자자금의 반환을 요청하거나 혹은 추가로 펀드 수익권 매입을 요구할 수 있다. 이렇게 발표되는 펀드의 수익권 1좌당의 순자산가치를 기준 가격이라고 부른다. 지금이라도 인터넷에서 펀드를 검색해보면 기준 가격이 얼마인지 옆에 써져있는 것을 볼 수 있을 것이다.
자산운용사가 주기적으로 발표하는 기준 가격에 의해 투자자들은 언제고 펀드의 환매 혹은 추가 투자를 할 수 있었기 때문에 함부로 기준 가격을 가지고 장난질할 수 없다. 만약 펀드의 실제 가치보다 높은 가격으로 기준 가격을 공시했을 경우 투자자가 그 가격에 환매를 요구했을 경우 그 가격에 환매를 해주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 경우 늦든 빠르든 결국엔 장부에 빵꾸가 나게 되기 때문이다. 미국의 폰지라는 사람이 이 짓을 하다가 지금은 감옥에 가있다. 만약 그의 펀드가 폐쇄형 펀드였다면 폰지의 사기는 앞으로 25년 동안 들통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폐쇄형 펀드란 마치 편의점 아르바이트생이 매일 마감 시마다 그날그날의 손익을 사장님에게 보고를 하지만 사장님이 금고 통은 25년 뒤에나 열어볼 수 있는 것과 마찬가지의 상황이었다. 손해가 났음에도 이익이 났다고 보고를 해도 어떻게 사장이 아르바이트생이 진실을 말하고 있는지 알 수 있는 방법이 마땅찮다는 것이다.
하지만 개방형 펀드의 등장으로 이제는 언제고 편의점 사장이 와서 현금을 찾아갈 수 있는 상황이 되었다. 이 경우 편의점 아르바이트생은 쉽게 장부를 가지고 장난을 할 수 없을 뿐 아니라 재고자산도 더 투명하게 관리할 수밖에 없다. 단기적으로는 어떻게든 조작된 장부를 가지고 끌고 나갈 수 있을지 몰라도 사장이 현금을 주기적으로 검사하는 이상 결국에는 어디선가 빵꾸가 나고 들통이 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물리학에 작용과 반작용이 있는 것처럼 - 재무학에는 대변과 차변의 법칙이 있고 이것을 거스를 수 있는 사람은 없다.
투자자는 언제든 기준 가격에 의해 펀드를 환매하거나 추가로 투자를 할 수 있음으로 펀드의 성과 공시의 투명성은 획기적으로 높아지게 된다. 개방형 펀드의 등장으로 펀드의 순자산가치와 펀드 수익권의 가격은 거의 동일하게 유지된다.
개방형 펀드는 펀드의 성과의 신뢰도와 더불어 대형화에도 지대한 공헌을 하게 된다. 과거에 폐쇄형 펀드가 발표하는 성과는 믿을 수 없을뿐더러 설사 정말로 좋은 펀드를 알고 있다 하더라도 펀드 수익권을 매입할 수 없었다. 펀드가 수익권을 추가로 발행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해당 펀드에 투자하기 위해서는 시장에 유통되는 극소수의 수익권을 살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개방형 펀드의 도입으로 누구든 기준 가격에 펀드 수익권을 추가로 매입하거나 매도할 수 있게 되었다.
좋은 펀드에는 막대한 자금이 몰려들기 시작했고 베스트셀러라고 불릴 만한 거대한 펀드들이 하나 둘 등장하기 시작했다. 펀드에 투자하는 개인들의 숫자가 늘어났고, 개인투자자들의 권리를 보호하는 법이 더욱 강력하고 정교하게 바뀌었다. 그중 가장 강력한 것은 펀드를 팔 수 있는 주체를 엄격하게 제한한 것이다. 우리가 자산운용사나 쿠팡, 이마트에서 펀드 수익권을 살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펀드는 허가를 받은 몇몇 기관들에서만 매입을 할 수 있다. 대개는 증권사나 은행, 보험사 같은 금융기관이 여기에 해당된다. 이제 수익자(투자자), 자산운용사, 신탁사에 이은 제4의 플레이어가 등장했다. 펀드에 대한 반독점적인 판매권과 광범위한 유통망을 가진 이들의 등장으로 펀드 산업은 더욱 버라이어티하고 효율적인 곳으로 변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