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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형 은행원 Jan 13. 2019

5-3. 펀드는 어떻게 만들어지고 유통되는가

자산운용사와 펀드 판매기관

앞서 오디세우스와 왕들이 모여 펀드를 만드는 이야기를 했다. 하지만 이 이야기는 조금 현실과는 다르다. 현실에서는 이런 식으로 펀드가 만들어지지 않는다. 무작위의 투자자 2,000명이 모여서 2,000억 원을 조성한 다음 신탁사와 자산운용사를 선별한 다음 펀드를 만드는 일은 현실에서 일어날 수 없기 때문이다(주: 다만 국민연금이나, 공제회 같은 거대한 투자기관들은 자신들이 펀드를 만들고 경쟁입찰을 받아서 자산운용사를 붙이고는 한다. 은행 창구에서 줄 서서 펀드에 가입하는 것보다 이것이 더 유리하기 때문이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사모펀드에 대해서 더 상세하게 이야기할 예정이다.)


자산운용사는 자산을 운용하는 능력만큼이나 시장 기회를 포착해 상품을 만들어내는 기획 능력과 마케팅 능력이 필수적으로 필요하다. 최초의 펀드는 운용사가 기획해서 만들기 때문이다. 하지만 대다수의 자산운용사의 규모는 그다지 크지 않다. 이들이 최초 론칭하는 펀드의 규모는 몇억에서 몇십억 정도로 소규모이다. 시간이 지나고 론칭된 펀드가 꽤 괜찮은 성과를 보였다면 펀드에 자금이 계속 모여서 펀드는 몇천억 원 심지어 몇조 원 단위까지 커질 수도 있다. 자산운용사의 입장에서는 펀드 규모에 비례하여 운용수수료가 들어오기 때문에 어떻게든 펀드의 규모를 키우는 것이 궁극적인 목표가 된다.


하지만 이렇게 펀드가 유명해지고 커지기까지 펀드 판매기관들의 협조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한국에만도 몇천 개는 될법한 펀드들이 있고 자산운용사가 아무리 야심 차게 펀드를 만들었다고 할지라도 펀드를 판매하는 친구들이 별로 관심이 없다면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기 때문이다. 때문에 펀드매니저들은 장이 마감된 뒤에도 배스킨라빈스 하프갤런이나, 던킨도넛 패밀리팩 같은 것을 사서 판매기관에 가서 펀드를 소개하고 판매 상품군에 넣어 달라고 PT를 하는데 상당한 시간을 소비하게 된다. 내가 아무리 운용을 잘하고 전략이 좋다고 하더라도 팔리지 않으면 아무런 소용이 없는 것이다. 이 바닥에서 甲은 판매권을 가지고 파는 놈들이다. 펀드를 만들어 내는 사람들이 아닌 것이다. 게다가 펀드를 파는 놈들이 은행이나 증권사, 그리고 보험사 같은 금융시장에서 방귀 깨나 뀌는 놈들임을 감안할 때 운용사는 이들의 눈치를 보지 않으래야 보지 않을 수 없다.


일단 펀드 상품 라인에 펀드를 집어넣는 것은 대개 그럭저럭 해낼 수 있다. 다른 상품들과 다르게 펀드는 재고자산이란 것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냥 돈이 들어오면 그만큼 더 찍어내면 되는 상품이기 때문에 판매기 관도 상품군을 확장하는데 별 부담이 없다. 펀드 판매사의 펀드상품 담당 직원은 IT 담당자에게 전화를 해서 신규 펀드를 펀드라인에 넣어달라고 이야기했을 것이다. IT 담당자는 상품번호를 하나 따서 전산에 등록을 했을 것이다. 이제 펀드 판매기관 영업점의 판매자가 그 상품번호를 집어넣고 펀드를 신규 개설하면 자금이 펀드로 흘러들어 가고 운용사는 그 자금을 운용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어려운 일은 아니다.


어려운 것은 이제부터다. 자산운용사는 어떻게든 펀드 수탁고(자산운용사는 펀드 개수가 아니라 펀드의 규모를 바탕으로 돈을 번다)를 늘려야 하고, 세상에 펀드와 자산운용사는 널리고 널렸다. 배스킨라빈스 하프갤런은 펀드를 판매 가능 상품군에 올리는 데는 먹혔을지 모르지만 그것만으로는 불충분하다. 지하철이나 신문에 광고를 하기도 하지만 대개 신통치 않다. 결국 펀드의 수탁고를 결정적으로 올릴 수 있는 궁극적인 방법은 펀드의 성과뿐이다. 펀드의 성과가 좋을 경우 펀드 판매기관들의 이달의 추천 펀드나, 혹은 경제신문의 이달의 우수펀드 같은 것에 선정이 될 수도 있고 이 경우 배스킨라빈스 따위 사들고 여기저기 기웃거리지 않아도 상품을 넣어달라는 전화가 쇄도한다. 이 경우 펀드의 수탁고는 말 그대로 폭발적으로 증가한다. 해당 펀드의 매니저는 찬란하게 빛나는 별이 된다. 연말 보너스로 포르셰를 뽑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자산운용을 금융의 꽃이라고 부르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반대로 성과가 부실하면 곧바로 펀드 판매기관의 직원으로부터 원인을 묻는 전화가 오게 되며 제대로 해명을 하지 못하거나 부실한 성과가 지속이 되면 아예 판매기관의 펀드 상품 라인에서 내가 운용하는 펀드들이 통째로 빠져버릴 수 있다. 이 경우 배스킨라빈스 하프갤런 백개를 사들고 다시 찾아가 봐야 수탁고를 다시 올릴 수 있는 가능성은 없으며, 이게 두세 번 반복되면 짐 싸서 집에 가야 할 준비를 해야 하는 것이다. 자산운용사가 돈을 벌기 위해서는 어떻게든 펀드 수탁고를 늘려야 하고 늘어난 수탁고를 지켜야 하고 이를 위해서는 어떻게든 펀드의 수익을 극대화해야만 한다. 그래서 자산운용사는 하루하루 펀드 수익을 내기 위한 전쟁을 하고 있다. 펀드산업을 별들의 무덤이라고 부르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펀드 판매사의 펀드 선정 업무를 담당하는 직원의 입장에서도 별처럼 많은 펀드들 중에 어떻게든 좋은 펀드를 발굴해 판매를 해야 하는 입장에 처해 있다. 추천펀드로 선정하여 집중 판매한 펀드가 수익률이 좋지 않았을 때의 결과가 썩 좋지 않기 때문이다. 펀드에서 손실을 본 고객들은 지점에 강력하게 항의를 하거나, 심지어는 경쟁업체로 이탈을 해버릴 가능성이 다분하다. 왜 그딴 펀드를 추천펀드로 올려서 피를 보게 하냐는 전화를 업무시간 내내 받아야 하며, 일과가 끝나고도 새벽까지 일단의 사태에 대한 원인과 해결방안에 대한 보고서를 쓰면서 지내야 하기 때문이다. 인사이트펀드, 바이코리아펀드, 중국펀드 등등 이런 일은 과거에 몇 번이나 있었고 아마 앞으로도 계속 발생할 것이다. 그리고 이런 일이 터질 때마다 펀드를 담당하는 직원은 고생은 고생대로 하고 승진도 몇 년씩 뒤로 밀려나게 된다. 그래서 펀드 판매사의 펀드담당 직원은 병아리 감별사처럼 될 놈과 안될 놈을 섬세하게 분별하여 상품 라인에 집어넣는다. 장이 종료된 후에도 매일매일의 펀드의 기준가를 검사하고 주기적으로 펀드 매니저들과 인터뷰를 하거나 외부기관의 컨설팅을 받으며 좋은 펀드를 선별하기 위해 나름대로 분주하다. 판매한 펀드에 대한 사후관리가 이루어지는 것이다.


자산운용사, 펀드 판매사의 이해는 펀드의 수익을 극대화해야 한다는 것에서 극적으로 일치한다. 투자자는 당연히 펀드를 통해 높은 수익을 얻고 싶어 한다. 자산운용사 또한 자신이 운용하는 펀드가 높은 수익률을 내기를 간절히 원한다. 그래야 살아남을 수 있기 때문이다. 펀드 판매사 또한 자신이 판매하는 펀드가 높은 수익률을 내기를 원한다. 그래야 살아남을 수 있기 때문이다.


펀드 판매사는 무작위적이며 먼지만큼이나 규모가 작은 다수의 개인투자자들을 대신해서 펀드를 선별하고, 자산운용사를 견제하는 역할을 하게 된다. 펀드 판매사로 인해 펀드시장은 분명 좀 더 효율적으로 작동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이 언제나 꿈처럼 완벽하게 작동하는 것은 아니다. 세상엔 분명 자신의 이익을 위해 투자자를 엿 먹이고 싶어 하는 자산운용사와 펀드 판매사가 존재한다.


그러나 세상에는 이렇게 이해관계의 일치(얼라인먼트)이라는 최소한의 얼개조차 깔지 않고 유통되는 금융상품들이, 산업이 존재한다. 펀드는 그 판이 깔린 몇 되지 않는 금융상품이고 그 때문에 펀드가 좋은 재테크 수단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펀드 재산의 신탁, 전문적인 자산운용사의 도입, 기준 가격을 통한 자유로운 환매와 매입, 그리고 독점에 가까운 판매권을 가진 펀드 판매기관의 등장까지 이 모든 것들은 개인 투자가들이 펀드를 통해서 안전하게 투자를 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인류가 몇백 년이나 공들여 발전시켜온 제도이다.


펀드를 통해서 우리는 단돈 만원으로도 극도로 분산된 포트폴리오를 구성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가입을 한 뒤에도 자산의 운용에 대한 걱정을 할 필요가 없다. 내가 볼 수 없는 곳에서 운용사 직원들은 똥줄 타는 심정으로 펀드 성과를 높이기 위해 노력을 하고 있을 것이고 판매기관의 직원들은 갑의 전능을 가진 고객 재산의 청지기로서 펀드 성과가 떨어질 때마다 왜 그러냐고 운용사 직원을 조져대고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 생각을 하면 웃음이 나고 그래서 나는 펀드라는 금융상품을 좋아한다. 그럼에도 아직 극복되지 못한 펀드의 단점들은 아직도 수북하게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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