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2월 13일
으하하핫 넌 이제 마음대로 못 내린다!
'기호지세', 여러분들이 한 번쯤은 들어봤을 고사성어일 겁니다. 문자 그대로 '달리는 호랑이에 올라탄 기세'라는 뜻으로 '곧 죽어도 Go'해야 하는 상황을 일컫는 성어죠. '기버지세'는 방글라데시에 적응 중인 한 명의 외국인이 출퇴근길에 버스를 이용하며 느낀 것을 그대로 만든 단어입니다. (해버지가 생각난다면 당신은 축덕)
'인도에서 기차 타고 내리는 법'이란 이름으로 돌아다니는 인터넷 짤방을 본 적 있으신가요? 방글라데시도 마찬가지입니다. 아직 기차를 탄 적은 없고 버스만 탔는데도 인도와 방글라데시의 '생활 물리학'에 감탄하고 있습니다. 태생부터 문과에 물리학 무식자인 저는 남아시아에서 '생활 물리학'을 하루하루 체득하고 있습니다.
아침 운행을 시작한 이후 달리기 시작한 버스는 교통체증만 아니라면 멈추지 않습니다. 승객들은 버스와 속도를 맞춰서 타거나 내려야 하죠. 올라탈 땐 오른발을 먼저 올려야 하고, 내릴 땐 왼발을 먼저 내려야 합니다. 오른발 왼발의 순서를 반대로 하거나, 박자를 놓친다면 바로 아스팔트와 상견례를 하게 되죠. 걱정하실 건 없습니다. 시내버스가 시속 5~60km 속도로 계속 달리는 건 아니고, 정류장마다 시속 20km 정도로 속도를 줄여주긴 합니다.
버스 정류장이 어디에 있는지 어떻게 알 수 있을까요? 한국처럼 정류장마다 표시(노선도, 의자, 정류장 안내판 등)가/이 있지도 않은데 말이죠. 사람들이 도로에 나와서 뭉쳐있는 곳이 바로 버스 정류장입니다. 버스를 타고 싶다면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에 같이 서 있으면 됩니다. 그러다 버스가 오면 자신의 목적지를 목청껏 외치면 끝입니다. 제 목소리를 들은 버스 요금 정산 직원이 "여기 타!"라고 대답해 준다면 얼른 달려가서 오른발을 먼저 버스에 올리면 되는 거죠. 쉽죠?
내릴 땐 어떻게 할까요? 간단합니다. 매 정류장마다 버스 요금 정산 직원이 현재 정류장의 이름을 큰 소리로 말해줍니다. 그곳이 자신의 목적지라면 버스 요금 정산 직원을 향해 "마마, 아미 에까네 남보(삼촌, 나 여기서 내려요)"라 말하고 버스 요금을 건넨 뒤 왼발부터 아스팔트 위로 디디면 됩니다. 노파심에 덧붙이자면 보험금을 타고 싶은 사람이 아니라면, 내릴 때 버스의 속도와 자신의 스텝 속도를 일정 수준 맞춰야 합니다.
'우다다다다' 느낌을 유지하되 조급함을 버리면 언제 어디서나 안전하게 버스를 이용할 수 있습니다. 호랑이 등에 타는 것보다 훨씬 낫죠. 1년간 '생활 물리학' 학석사 통합과정을 마치고 귀국하겠습니다. 한국이 너무 심심하게 느껴지는 하루하루라서 귀국해도 '기버지세'가 그리워 다시 방글라데시에 올 지도.
ps. 방글라데시 버스 개요
버스 : 많은 경우 버스의 출입문은 전면에 1개뿐이고, 문은 항상 열려있다. 버스 내부 천장에 선풍기가 일정 간격으로 설치되어 있다. 선풍기가 없는 버스는 버스 천장을 뚫어놨다.
버스 운전사 : 버스를 운전한다. 여기는 교통체계가 영국식이라서 운전석이 오른쪽에 있다. 버스 요금 정산 직원의 철문 두드리는 소리에 맞춰 속도를 낮춘다.
버스 요금 정산원 : 버스 출입문에 매달려서 근무한다. 승객들이 버스에 타고 내릴 때마다 버스 철문을 시원하게 두드린다. 승객들의 승차지점과 하차지점에 따른 요금을 암산해서 거스름돈을 정직하게 준다. 이들의 물리와 수리 실력에서 실리콘밸리에 인도계 직원들이 많은 이유를 찾을 수 있다.
좌석 배치 : 일반적으로 여자는 앞쪽에, 남자는 뒤쪽에 앉는다. 다만 출퇴근 시간엔 자리가 생기는 대로 앉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