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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산딸기 May 31. 2023

006. 저와 마주치는 중생들은 사바세계와 안녕입니다

2023년 2월 20일


지금부터 소승과 눈 마주치는 중생들은 사바세계와 안녕입니다.


박혁권씨에게 바짝 쫄아버린 중생


임창정씨 주연의 코미디 영화 '시실리 2km'에 출연한 박혁권씨의 극중 대사입니다. 임시숙소를 나온 후 새로 구한 집에 들어온 지 일주일째가 됐습니다. 저녁을 먹고 일어나려던 찰나 냉장고 옆에서 배를 까고 누워있던 퀴벌 선생과 마주쳤죠. 엄지손가락 크기의 센세... "죽은 걸까?", "자는 걸까?", "발로 밟아야 하나?", "휴지로 덮어야 하나?"와 같은 생각들이 머릿속을 차지했고, 우선은 냉장고에서 물을 꺼내 마신 뒤 이어가기로 결정했습니다.


냉장고를 열어 생수 한 통을 꺼냈는데, 찬 공기가 놈의 잠을 깨웠던걸까요. 더듬이를 꿈틀대더니 기지개를 켜는 게 아니겠습니까? 먼 옛날, 잠자는 사자의 코털을 건드린 인간의 최후가 떠오르더니, 그동안의 제 삶이 주마등처럼 뇌리를 스쳤습니다.

"나는 잠자는 바선생의 더듬이를 춥게 만들어서 화를 당하겠구나."


그가 생전 마지막으로 목격됐던 자리


다행히 녀석은 배를 까고 누워있었기에 곧장 일어나서 저를 곤란하게 만들진 않았습니다. 평소보다 스무배는 빠르게 두루마리 휴지를 둘둘 말아 퀴 선생의 배 위로 추정되는 부위에 던졌습니다. 애석하게도 휴지는 빗나갔고 그게 선생을 자극했습니다. 더욱 빠른 발놀림으로 몸을 뒤집으려 발버둥 쳤죠. 1차 시도가 그렇게 끝나자 저는 재빨리 휴지를 더 뽑아서 바 선생의 전신을 덮었습니다. 이에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20여년 넘게 단련한 뒤꿈치로 숨통을 끊어놨습니다.


-콰직-


으깨지는 소리와 촉감이 제대로 발 뒤꿈치로 전달되었고, 퀴벌 선생이 사바세계와 안녕했음을 직감했습니다. 그의 생전 종교를 몰랐기에, 극락왕생 또는 천국행 열차에 무사히 타길 바라는 마음으로 기도를 하며 장례식을 진행했습니다. 갠지스강이 제가 사는 방글라데시를 관통해서 벵골만으로 흘러갔기에, 저는 인도의 전통 장례법 중 하나인 수장 (水葬)으로 예를 다했습니다. 동시에 제가 이 집에 들어오기 전부터 살고 있었을, 장례가 끝나는 순간까지 저를 주시했을 무수히 많은 바 선생의 동족들에게 경고했습니다


"지금부터 저와 마주치는 중생들은 사바세계와 안녕입니다."


실내 수장(水葬) 용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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