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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andew Sep 08. 2020

적절하고도 아름다운 거리두기

캠퍼스 타운의 소샬 #1

미국의 캠퍼스 타운은 특유의 독특한 문화를 갖는다. 


캠퍼스 타운이라 하면 대도시가 모여 있는 동부의 주요 도시 사이사이에 자리 잡은 작고 예쁘고 고즈넉한 그러나 대학가 특유의 활력이 넘치는 이미지를 떠올리기가 쉽다. 그러나 시카고를 제외하고는 사실상 대도시가 전무한 중부는 가도 가도 끝없는 콘밭과 딴밭으로 이루어진 드넓은 평원이라 주도라고 해봐야 상징적인 의미일 뿐, 물가와 인프라, 전반적인 생활수준은 동부의 중소도시만도 못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러니 미 중부의 캠퍼스 타운은 사실상 그 주변에서 유일한 도시이며 30분 내의 동선 안에 모든 상권이 밀집되어 있고 그곳을 벗어나면 아무것도 없는 일종의 섬이다.


캠퍼스, 즉 대학(보통 주에 한두 개인 main 주립대)을 중심으로 대학과 관련된 인간들이 모여들어 살아가기 위한 최소한의 비지니스로 운영되는 타운. 그것이 내가 생각하는 캠퍼스 타운의 정의이다. 단 미 중부의 주립대는 Big 10이라 하여 (https://www.dictionary.com/browse/big-ten ) 지역 경제를 살리기 위한 목적으로 설립되고 양성된 어마 무시한 규모의 대학이라 일반 학교의 개념이라기보다는 대학 병원을 중심으로 사실상 일대 지역을 먹여 살리고도 남는 인프라를 제공하니 웬만한 지방 도시라고 보는 편이 맞음


대학을 중심으로 굴러가는 곳이니 대부분 아빠의 직업은 학생, 교수 혹은 의사 셋 중 하나이다. 먹고살아야 하니 세탁소, 슈퍼, 식당, 마트 등이 생겨나고 이를 기반으로 한 *minority group이 있지만 모든 이민 사회에 가득한 저 직업을 이 외진 곳까지 와서 굳이 하는 사람들은 (불가피한 사연으로 이곳에 오거나 떠나지 못하는 사람들 외에 자발적으로 이 넓은 미국 땅에 굳이 아요와를 선택해 오는 경우) 거의 없기 때문에 그곳에서 내가 만나는 액면가 기준 내 또래의 사람들은 대부분 그들과 그의 가족들이다.


*minority group: 이 불편한 hierarchy에 대해서는 추후 다시 다룰 예정입니다. 수적으로 많지 않아 간단히 마이너리티라 표현한 것이지 사회, 문화 계층 구분이 아니니 오해가 없기를 양해 부탁드립니다.


온 타운이 지나치게 가깝지만 떠나면 만날 일이 없는 사람들.


캠퍼스 타운의 가장 큰 특징은 학위 과정 혹은 삶의 과정 중 머물다 떠나는 곳이라는 것이다. 아니 사실상 견디는 세월을 각오하고 온 인간들의 경유지(transfer station)랄까. 타국 생활  자체가 만남과 떠남의 연속인 건 숙명인지라 우리도 늘 어딘가를 향해 어딘가를 떠나왔지만 이곳은 우리만 떠나는 곳이 아니고 그 시기가 다를 뿐 남들도 결국은 떠난다. (단, 위에 언급한 정착한 마이너리티 그룹이 있긴 하다) 우리가 고향을 그리워하고 옛 시절을 그리워하는 건 함께했던 사람들과의 추억이 아니던가. 그래서 그들의 흔적이 남아 있지 않는 이곳은 한번 떠나면 돌아올 이유가 없는 곳이기도 하다.  


새로운 사람 혹은 가정이 오면 이름 대신 과정으로 기억된다. 박사 과정(대략 5-6년으로 봄), 이번에 석사 온 집(2년 있다 갈 집이라는 얘기), 새로 온 교수 또는 의사(남을 집), 포닥(이미 꽤 살았고 앞으로도 살 집, 그러나 언제 뜰지 아무도 모름). 그리고 이런 식의 분류는 서로가 함께할 수 있는 시간을 가늠하는 척도가 된다.

평생 배워야 할 법

함께할 수 있는 시간이 한정적이다 보니 빨리 친해져야 했고 안 맞는다 싶으면 빨리 다른 사람을 찾아야 하기 때문에 1,2 년차들은 먹이를 찾는 하이에나처럼 정말 무섭게 친구를 찾아 나선다. 만난지 5분 만에 대놓고 한국에선 어디 살아(친정 시가 동시 파악) 남편은 모해(박사야, 석사야, 의사야, 몇년짜리야) 애는 몇살(우리애랑 맞아 안 맞아) 등의 차마..초면에 이런 질문은 실례가 아닌가요 하기도 전에 이미 파악이 끝난 그쪽에서 미친듯이 자신의 정보를 쏟아놓기 시작하니 그때부턴 입틀막. 새 친구를 찾기 위한 그들의 열정은 소개팅을 이렇게 효율적으로 했으면 서로를 알아가기 위한 불필요한 만남으로 감정과 세월을 허비하는 일은 없었을 텐데 라고 느껴질 정도로 과감하고 진취적이다.


직항은커녕 제대로 된 공항조차 두어 시간을 가야 하는 외진 타운은 주요 도시에 비해 한국을 오가는 사람들도 찾아오는 방문객들도 거의 없다. 가족, 친구 모두 떠나 방학, 땡스기빙, 연말연시를 지날 때마다 겪어온 서늘한 외로움을 누구보다 잘 알기에 또다시 주어진 낯선 곳에서 남아 있는 날들이나마 외로움을 서로 보듬어 줄 수 있는 인연이 되길 바라는 간절한 마음에서 문제는 시작된다.


살아온 지역, 삶의 배경, 경제적 여건 모든 것이 다르지만 오직 같은 학교에서 일(?)한다는 이유만으로 만난 그들과 심지어 그들의 남편 외에는 아예 공통점 없는 그들의 와이프들이 모인 작디작은 사회. 사실 여기까지는 사회생활을 시작할 때 누구나 겪을 법한 감정이긴 하다. 첫 사회생활을 시작했을 때 오만 종류의 인간군상이 시대별, 나이별, 직급별로 존재한다는 뉴튼의 중력의 법칙보다 더 당연한 걸 놀랍게 발견하는 충격적인 경험이 있지 않나. 그래서 일보다 사람 적응이 더 힘들었던 직장 생활이었지만 7년을 이어가는 동안 그 가운데서도 삶의 멘토도 만나고 친구도 만나고 잊지 못할 추억도 많았고 무엇보다 지금은 인생의 짐이 된 남편도 만났다. 그러나 그런 의미 있는 관계를 쌓아가는 중에도 난 한 번도 내 동생을 소개하거나 우리 부모님의 부부싸움 얘기나 돌아가신 할머니에 대한 기억 따위를 나눠본 적은 없었다. 일부러 비밀로 한 건 아니지만 자연스레 거기까지 화제가 미치지 않는(이미 더 심오한 대화를 나눌 친구는 따로 있는 나이들이 아닌가) 그 적당한 거리가 사실상 아름다운 인간관계의 필요충분조건이었음을 그때는 알지 못했다.


인간 관계도 김치도 묵혀야 제맛

자고로 인간 관계도 김치도 묵혀야 제맛이니, 겉절이도 한두 번은 먹을 만 하지만 한번 먹고 버릴 게 아니고 찌개도 끓이고 전도 부치고 후뚜루마뚜루 두고두고 먹으려면 결국은 묵혀놓고 진득하게 기다릴 줄 알아야 한다. 나이 들어 새 친구 사귀기 힘들다는 말이 왜 있겠는가. 아무리 코드 맞춰 만나고 순식간에 절친돼버린 듯해도 더럽게 안 맞았지만 볼꼴 못볼꼴 다 보며 함께 세월을 묵혀온 옛 친구만 못한 게 당연하다.


말 통해서 만났는데 가족 모임을 해보니 남편 혹은 와이프가 안 맞고 그것도 웬만해서 만났더니 아이들이 안 맞는다. 이것저것 용케 다 맞췄더니 우리 집에 아이가 추가될수록 우리의 needs가 달라져서 또 만나기가 힘들어진다. 사실 살다 보면 가족도 다 다르고 평생 들어온 내 동생의 말투도 거슬리는 날이 있으며 명목상 가족으로 묶인 시부모는 앞뒤 전후 사방 이해불가인데 생판 남이 만나서 모든 요소가 다 맞는 경우는 기적이 아니던가. 간절한 마음으로 인해 요즘같은 시기뿐 아니라 평생 필요한 적절한 distancing을 간과한 관계는 조금씩 어긋나기 마련이다. 작은 삐걱거림이 틈을 만들면 조금씩 소원해지는 것이야 자연스런 일이지만 문제는 이미 서로에 대해 너무 많이 알아버렸다는 것. 좁은 동네에서 멀어진들 가는 데마다 마주치고 어색한 인사를 나눠야 하니 과도하게 밀접한 관계를 너무 쉽게 맺은 경솔함을 후회하는 일이 잦아진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이곳을 떠난 인생에 다시 볼 일이 ‘거의’ 없다는 전제는 아름다운 멀어짐에 필요한 한 때나마 가까웠던 사람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조차 갖추지 않는 무례함을 드러내곤 한다. 한마디로 쌩~~~


처음 그곳에 갔을 때 남편보다 선배인 박사과정 4년 차이던 형님의 와이프가 해준 얘기가 있었다. 가을 학기는 새로운 사람이 오는 시즌이고 그 시즌 지나면 일 년 동안 새 친구는 없다고 봐야 하기 때문에 학기초에는 언제나 분주한 탐색과 정보 공유로 바쁘다. 뉴페이스에 대한 얘기를 하던 중 문득, ‘언니 4년 차쯤 되면 새로 오는 사람 관심 없어요. 어차피 뜰 건데 잘못되면 골치 아플 일을 왜 만들어요. 언니도 알아두세요.’ 숨은 맛집이라도 알려주듯 비장하게 꺼낸 그 얘기를 들은 순간 얘 머야?!

우리가 석사 할 때 겨우 2년을 지냈지만 누구도 우릴 떠날 사람으로 대하지 않았고 그때 만난 사람들은 지금까지도 한국보다 더 멀다는 미국 내에서 일 년에 한 번은 꼭 만나고 소식을 전하는 또 하나의 가족이 되었다. 그랬던 나에게 사람 인연이 어찌 될 줄 알고 젊은 애가 참 생각하는 게 싹수가 없네 라고만 여겼는데….


내가 바로 그 짝

정말 그 말처럼 그 좁은 타운에서 만남과 헤어짐을 반복하며 미숙하고 유치하기 짝이 없는 미성숙한 시간을 지나오며 실패하고 실망하는 무수한 일을 겪었다. 오케 쏘샬 포기, 가정 안으로 숨어들어 지낸 나 또한 마지막 2년(그때 그 싹수가 말한 4년차)은 누가 오던 가던 관심을 갖지 않았고 5년이나 살았던 그곳에서 단 한 번의 송별회도 없이 우린 그렇게 사라졌다. (물론,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다. 그곳도 사람 사는 곳이니 그 가운데서도 우리가 석사 할 때 그랬던 것처럼 평생의 친구를 만든 사람도 물론 있을 것이고 지금도 그곳을 그리워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새로운 곳에서 정착한 지 2년.

여전히 아카데믹(학교 관련 업종 종사자)이라면 나도 모르게 뒤돌아 설 정도로 질렸던 나 또한 그토록 열정적으로 친구 찾기에 혈안이 되어 있었던 그들 중 하나였음을 부인할 수 없다. 너무 튀지도 않고 너무 후지지도 않게 적정 선을 지키며 각자의 in group이 생기기 전에 확보되고 싶은 후보이고 싶었고 대놓고 물어볼 용기는 없었지만 그들이 풀어주는 정보를 차곡차곡 모으며 나름의 분류 과정을 거쳐온 흔한 관계 지망생이었음을 말이다. 그지 같은 실수는 다 덮고 새로 시작하고 싶었는데 그곳의 흔적이 뭍은 새로운 동생들이 생겼다. 어이없게도 그렇게 애쓰고 맘 썼던 그들이 아닌 아마도 두어 번 불러다가 한국 밥이나 해서 먹여주고 싶었던 진짜 '안 친했던' 신혼부부 혹은 싱글족들이 가정을 이루고 어린아이들을 안고 이 먼 곳까지 비행기를 타고 아싸였던 우리를 찾아준다. 내가 필요해서 그렇게 이어가고 싶던 관계들은 싸그리 쫑나고 옆에 두고 싶어서가 아니고 내 옛살 생각나서 챙겨주고 정말 하찮게 도와줬던 그들이 기억도 안나는 그 일을 이야기할 때 인생 참 모르겠다. 그러니 적절한 거리두기란 필요가 아닌 진심의 거리인가 보다.


그때의 나는 처절하게 실패했지만 우리 인생이라는 게 결국 어디선가 살다가는 나그네 삶이 아닌가.

'지나간 것은 지나간 대로 그런 의미가 있듯' 기대하고 미숙했기에 실수였던 인연들은 그것들대로 의미가 있으리라. 배경 다르고 상황 다르고 코드 완전 달라도 어떤 식으로는 진심은 전해진다고 믿는다.

캠퍼스 타운을 향하는 이들이여~

맘 단디 먹고 의미 있는 관계 만들어 나가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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