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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andew Dec 17. 2020

손카드의 낭만을 기억하나요

겨울밤에 돌아보는 인연들

한국에 살면서는 카드라는 걸 써본 기억이 아련하다.

여전히 아주 드물게 옛친구가 생각나는 밤, 그리움과 아쉬운 마음을 담아 이메일로 지난 이야기들을 써 보내는 경우가 있다. 그러나 편리하고 세련되게 마음을 전할 수 있는 방식이 너무 많은 이 시대에, 심지어 잘 고른 이모티콘이 내 마음을 나보다 더 잘보여주는 경우가 즐비한 2020년을 살아가며, 굳이 서툰 손글씨로 카드를 쓸 필요가 있을까. 카드에 대한 호불호를 떠나 변화하는 시대에 발맞추어 받아들인 삶의 방식 중 하나로 잊혀졌을 뿐이었다. 그러니 필요한 우편물은 택배로 받는게 대부분이고 아파트 입구마다 비치된 우편함은 온갖 청구서와 광고물들로 꽉 차 있어 가끔씩 비워주는 용도 외에는 확인할 일이 없어진 지 오래지 않던가.


이런 면에서 "back to the basic" 을 지향하는 아날로그 인간인 나에게 미국은 여전히 구시대의 낭만이 살아있는 곳이다. 모든 일이 보는 시각에 따라 면면히 다르니 단편적인 경험을 손카드에 대한 한국의 미국의 태도라고 싸잡아 비교할 수는 없지만, 해마다 연말이면 구닥다리 냄새가 물씬 풍기는 가족사진을 박은 카드에 인사말을 적어 보내는 손카드를 주고받는 일이 전형적인 연말 풍경 중 하나인 건 분명하다. 아마도 넓은 땅덩이에서 흩어져 살다보니 한국처럼 대여섯 시간이 걸릴지언정 명절 대장정을 떠나 만날 수 있는 거리가 아닌 경우가 대부분이라, 아쉬운 마음을 달래고 서로의 사랑하는 확인하는 방식으로 자리잡은 문화가 아닐까 미루어 짐작한다. 그러니 12월이 되면 USPS (United States Postal Service, 미 연방 우체국) 차가 지나갈 때마다 ‘알아서 놓고 가겠지’ 택배를 받는 마음과는 달리, 크리스마스 선물을 기다리는 아이의 마음처럼 잔뜩 부푼 기대로 차가 지나가기 바쁘게 뛰어나가 메일 박스를 체크하는 일은 적적한 이민 살이의 또다른 즐거움이다.


10여 년 전, 21세기의 늦깎이 유학생 부부였던 우리가 back to the future의 과거형으로 돌아온 듯한 이 문화를 알 턱이 없었다. 7월에 왔으니 채 6개월이 못 되는 시간 동안 맺은 인연이 얼마나 되었을까. 나름 배운 방식대로 그동안 신세를 진 주변 가족들(나름 찐친들)에게 과하지도 부족하지도 않은 적절한 한도 내의 선물을 준비해 교회 크리스마스이브 행사에 참여했다. 모두가 하나 가득 *선물 보따리를 들고 와서 카드와 함께 전달하면서(우리도 “채 준비되지 못한 분들께” 많이 받았다) 인사를 나누는데, "아~~네, 감사해요" 넙죽넙죽 받아 드는 빈손이 어찌나 민망하던지. 

*선물 보따리: 특별한 관계를 제외하고 일상적인 감사 인사를 주고받는 사이에서의 선물은 대부분 $3~$7 이하의 핸드로션, 립밤, 초, 액자 등의 말 그대로 가벼운 선물들이다. 심지어 치약이나 비누를 세트 상품이 아닌 코스트코 대용량으로 구매해 1-2개씩 나눠서 선물하시는 분도 있었다. 그리고 이건 전혀 놀랍거나 무례하거나 궁상맞은 일이 아닌 아주 합리적이고 부담없되, 따뜻한 인사로 여겨진다. 

그해 연말은 급 바빠졌다. 아쉽고 미숙한 마음 긴급히 수습하느라 황급히 집에 와 가족사진을 찍고 happy new year 카드를 써서 또한 긴급히 준비한 소정의 선물들과 함께 다음주 송구영신 모임에서 나누었다. 그러나 지금 와보니 클스 대신에 새해 카드를 쓰는 경우는 겪어본 중 전무한 일이 아니던가. 다만 모든게 서툴었지만 초보 유학생 부부가 부족하나마 답례의 마음을 전하고 싶었던 것이라고 이해해주셨을 거라 믿고 있다.


어쨌거나 그 이듬해부터 클스 카드를 챙기는 일은 나의 가장 중요한 연말 행사가 되었다. 땡스기빙이 지나고 나면 의례히 가족사진을 찍고 주문하고, 가장 오래 걸리는 한국부터 시작해 직접 전달할 동네 이웃들까지 차례로 나열하여 하나씩 카드를 써 내려간다. 누군가에게는 그리움의 마음을, 희미해진 첫 만남의 기억을, 그리고 굳이 카드를 쓰지 않아도 아는 서로의 지난 시간을 떄로는 웃음으로 아쉬움으로 그리움으로 깊은 마음을 쓴다.


남편의 석사 2년, 박사 5년, 그리고 이곳에 정착한 지 올해가 3년째이다. 가는 곳마다 누군가를 알아가고 또 새로운 곳에 이주해 새로운 인연을 맺고, 그렇게 10년이 지나는 동안 수많은 인연을 새로이 맺어왔다. 그만하면 이제 일일히 손글씨로 쓰는 건 부담스러워 타이핑을 할 만도 한데 신기하게도 매해 난 같은 수량의 카드를 주문하고 있고 그 양은 줄지도 늘지도 않았다.


혹여나 빠뜨릴까 지난해에 썼던 리스트를 꺼내 읽어 내려가며 정리하다 보면 누군가의 이름이 새롭게 등장하기도 하고 누군가의 이름이 지워지는 걸 본다. 새로운 이름이 등장하는 건 언제나 반갑고 지난해에 쓴 이름을 지워나갈 땐 나만 아는 씁쓸함이 밀려온다. 아니 심지어 몇 년 동안 꾸준히 카드를 보내면서도 확연히 달라진 메시지의 온도차를 느낄 때 참으로 같은 인연을 같은 모습으로 이어간다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깨닫게 된다.


우편함의 움직이는 팔
* 세상 어디 쓰는지 몰랐던 우편함의 손잡이는 가는 메일이 있음을 표시하는 것이다. 보낼 우편이 있을 경우 우표를 붙여 손을 들고 서 있으면 USPS에서 가져간다. 미국답게 지극히 합리적이고 지극히 편리하되, "나 여기 보낼 거 있어요" 라는 듯한 모습으로 서로가 교감하는 최상의 소통이 아닌가 싶다.








올해도 보름 남짓의 밤마다 30여 장의 카드를 썼고 해마다 까마귀 고기를 삶아 먹은 듯 주소 확인을 하는 지인들에게서 하나 둘씩 받는 카드가 창가에 채워진다. 서로의 근황을 전한지 오래라 주소가 맞는지 카톡으로 확인하면서까지 굳이 카드로 전하는 마음을 이제는 알 것도 같다. 또한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우리를 기억하고 소식을 전해올 떄의 기쁨은 우리의 연말을 더없이 풍성하게 해준다. 


그러나 지나간 인연에 대한 서운함도 결국 삶의 일부이지 않던가. 때로는 덜고 때로는 더하는 것이 삶이니 그 과정에 덜어진 인연의 아쉬운 맘을 달래고 위로한다.



오늘도 정말 반가운 카드가 왔고 아이들이 기억하지 못하는 그들과의 기억을 나누었다. 종종 이것마저 사진과 기본적인 인사말만 프린트 찍어 보내는 세상이 되었다. 가족의 단란한 모습을 보여주는 건 페북으로 충분하지 않던가. 안타깝고 서글픈 마음으로 이 시대를 바라본다. 


그리고 현재를 살며 창문 가득 구시대를 채워가는 엄마의 꼰대스런 방식을 통해 우리 아이들만큼은 이 구찮은 시대의 낭만을, 소통의 방식을 기억할 수 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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