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내를 킨더에 보낸 날
2020. 3.13. official shut-down
하... 교회 다니는 사람이 이런 말 하기 곤란하지만 참으로 얄궂게도 13일의 금요일이었던 그날.
하교 후에 큰 애는 기계 체조가, 작은놈은 태권도가 있어서 스쿨버스를 안 태우고 아빠가 픽업을 가는 날이었다. 워낙 스케쥴이 빡센 날이라서 애들이 학교 끝나는 시간에 맞춰 한 놈은 간식 챙겨 보내고 한 놈은 오자마자 저녁을 먹어야 하니 주방 시엄니인 막둥이 잔소리에 정신없는 저녁 시간을 보내고 있는데… 생전 울릴 일이 없는 이 줌마의 전화가 지 혼자 춤을 추듯 오만가지 알람이 동시에 울리기 시작했다. 바로 전 주말에도 멀쩡히 교회에 다녀왔고 다 같이 모여 밥도 먹었고 뉴욕 상황이 심상치 않다더라, 곧 여기도 어찌될지 모른다, 카더라 통신들의 흉흉한 소문이 돌긴 했지만 이 촌구석까지 먼 일이 있으랴 그저 무심하게 들었나 보다. 오히려 타운 넘어 우범지대가 가까이 있어 종종 사건 사고 알람이 뜨곤 했으니 무슨 변고라도 났나 싶었지만 한 손은 이미 간식 가방의 지퍼를 채우느라 다른 한 손은 들썩이는 냄비 뚜껑을 들어 올리는 사이 그마저도 잊어버렸다.
그리고 그날로 아이들의 학교는 문을 닫았다.
도시락 두고 온 놈, 신발 두고 온 놈, 리세스 끝나고 후디 잃어버린 놈, 밴드 갔다가 악기 두고 온 놈 등 내일 가야 할 일이 즐비한 변함없는 일상이 황당하게도 말 그대로 인정사정 볼 것 없이 일단 다 닫았다.
아빠는 그날로 전면 온라인 수업 전환 통보를 받아 즉퇴했고 아이들은 학교 안 가니 마냥 좋았다. 막둥이는 한 학기 겨우 적응할만했지만 그래도 가기 싫었던 학교가 닫았으니 이게 웬 횡재며 게다가 형아, 누나까지 집에서 같이 놀 수 있게 되었으니 코로나가 지세상인 듯 신났다.
그렇게 우린 집에 잠시 전기가 나간 것처럼 좀 불편하지만 곧 다시 들어올 것을 기다리며 어둠의 비명을 즐기는 듯 그게 정말 며칠 만에 해결될 일인 줄 알았다.
하루가 1주일이 되고 2주일이 되면서 4월이 다 되도록 오지 않는 봄을 기다리던 아침 식탁.
애들: 이러다가 이번 학기 아주 못 가진 않겠지?
아빠: (ㅋㅋㅋ설마 그러지야 않겠지만) 얘들아, 이번에 아예 쉬고 코로나 끝나면 여름 방학에 워터파크 가는 게 낫지 않을까?
그래도 학교 가고 싶네, 여름엔 울끼리 놀아도 좋네 갑론을박을 펼쳤던... 그때만 해도 가을까지 가리라곤 생각도 하지 않았나 보다.
그런데 정말
그 이후 꼬박 6개월 동안
아무도 안 만나고
아무 데도 가지 않고
다섯 식구가 최소 주 20회 집밥을 같이 먹으며
사회적 거리두기 100%, 가족 간 거리두기 0%인
말도 안 되는 시간을 보냈다.
곤쥬의 5학년, 장남의 1학년, 막둥이의 겨우 시작한 preschool을 통째로 날리고 나의 10년 만의 육아 탈출 또한 한 학기만에 안드로메다로 가버렸지만 병원마다 환자들이 넘쳐나고 당장 생계가 끊기고 먹고 살길이 막힌 수많은 사람들이 고통받는 와중에 힘들다 한마디조차 조심스러워하지 못한 채, 그냥 그 시간을 보냈다.
아직도 모든 것이 불투명하지만 원하는 사람에 한해 홈스쿨 옵션을 준 채로 전면 풀타임 등교가 결정되었다. 나 또한 찜찜하고 걱정되는 마음으로 수없이 고민했지만 아이들도 부모들도 모두 지친 이때에 다시 닫을 때까지만이라도 각자의 공간을 가졌으면 하는 마음으로 결국 보내기로 했다. 그리고 오늘, 미국 엄마들이 생일보다 더 기다린다는 막내가 킨더 가는 그 영광스런 육아 탈출의 날을 이렇게 불편하게 맞이할 줄이야.
킨더 첫날이라 한 시간 만에 돌아오긴 하지만 너무나 낯설고 설레는 혼자만의 시간.
그 금쪽같은 1시간 동안 난 싱크대를 닦았다.
항상 바빴고 어차피 다시 쓸 거라서 대충 닦고 대충 헹구고 급할 땐 벅벅 긁어댔던 나의 소중한 싱크를, 지친 내 몸 구석구석을 돌보듯 찌든 때를 불리고 스크래치 안 나게 살살 문질러가며 '참, 수고 많았다. 또 힘내서 잘해보자.' 그렇게 나와 나의 싱크대는 서로를 self 격려해줬다.
말도 안 되는 세상에서 말도 안 되는 일을 겪으며
더 말이 안 되는 일이 일어나도 놀랍지 않은 시대를 살아가며
힘들었다고 징징댈 것도 없고
잘 보냈다고 자랑할 것도 없는
그저 닥친 하루하루를 묵묵히 살아낸 오늘의 나에게 주는 작은 격려의 의식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