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sandew Mar 22. 2022

수고했어요, 그대.

따뜻한 말 한마디의 힘

코로나 시대를 맞아 가장 바뀐 미국의 문화가 ‘배달’이라고 한다.

2020년 이후로 가장 많이 늘어난 게 아마존 물류센터라는 말처럼

이른 아침마다 타운 곳곳의 물류센터에서 아마존 트럭이 줄지어 출발하는 장관은

미국도 ‘배달’의 시대를 맞았음을 여실히 드러낸다.


아마존 프라임 회원일 경우, 기본 2일(주말과 휴일을 제외한 비지니스 데이 기준)

빠르면 1일 만에도 오기도 하니

여전히 한국식 주문 당일의 ‘총알 배송’에 비하면 댈 것이 못되지만

(아마존을 비롯한 몇몇 배송 시스템을 제외하고는 여전히 온라인 배송은 기본 7-10일 걸린다)

시대의 흐름이 마침 코로나를 만나 급물살을 탄 것이지는 알 수 없어도

분명한 건, off line 로컬 상권 중심의 지역 경제가 근간을 이루는 이 넓은 지방 자치의 나라에서도

온라인 쇼핑의 시대가 열리고 있다는 것이다.



이렇게 말하면 마치 세대차가 느껴지는 ‘격세지감’처럼 들릴지 모르지만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나의 삶에서 ‘grocery delivery’라는 건 꿈도 꾸지 못하는 미지의 영역이었다.

미국에서 지내온 지난 10년간 엄마로서 나의 가장 큰 책무는 grocery shopping이었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영하 10도 이하로 기온이 내려가 귀가 떨어질 거 같은 날씨에도 장을 봤고

임신해서 남산만 한 배로 두 살 터울의 애를 들쳐 안고 겨우 시간을 내서 갔는데

하필 그 시간 아이가 잠드는 바람에 잠든 아이를 카트에 눕히고 짐을 싣거나 (코스코에서 물과 휴지 등 부피가 큰 물건을  사야 하는 날에는 낭패) 유모차와 카트를 동시에 끌어야 했던 건 출산 무용담에 비하면 말도 못 꺼낼 일상의 에피소드였다.

아이들과 카트와의 날들

미국은 대부분의 grocery store의 카트를 상점 밖에 두는데(보통은 parking lot)

때문에 비가 오거나 눈이 오는 날에는 카트가 젖어 있어 아이를 태울 수가 없으니

닦을 만한 휴지는 물론이고 아이가 잠들 경우에 대비해 깔 작은 담요는 차 어딘가에 반드시 실어둬야 할 필수 용품이었다.


식구들은 먹어야 사니 산후조리 중에도 예외 없이 장을 봐야 했는데

미국의 마트는 유독 추워서 혹여나 바람 들까 무서워 온몸을 꽁꽁 싸매고 에어컨 바람을 정통으로 맞으며

첫 아이 낳고 2주간 조리원에서 내 몸 하나만 건사하며 세끼 밥을 받아먹던 기억이 얼마나 사치스럽게 느껴졌는지 모른다.


미국 엄마의 하루는 ‘자투리 시간’으로 꽉 채워진다.

자투리 시간은 늘 한정되어 있으며 아이가 밖에서 똥을 싼다던가 평소와 다른 시간에 잠이 들어버린다던가 내가 급체라도 하는 등 돌발 변수가 생기면 낭패이기 때문에 

늘 시간에 쫓겼고 서둘렀고 맘이 바빴다.


그래도 그때는 모든 상황이 나의 부지런함과 치밀한 계획이라는 컨트롤 아래 있었다.

아들들!(딸 때는 없던 일들)이 크면서 카트를 안 타겠다 버티기 시작하면서

나의 자투리 시간은 더 이상 의미가 없어졌다.

지상 최대의 과제인 장보기가 버거운 전쟁이 되었던 날들 중,

아마도 그날도 그런 날 중 하나였는가 보다.



막둥이 앉혀놓고 장 보느라 정신없는 중에 저만치 앞서 나가는 장남이를 끌어다 옆에 놓고 반쯤 협박하는 말투로 윽박지르고 있을 때,

나이가 지긋한 아주머니? 가 다가와 슬며니 웃음 지으며 말했다.

‘Your kids are adorable and he’s doing just what he's doing

I have my own son who’s 22 now, and I miss when he was about the boy’s age.'


멈칫?! 

그말은 워워~~ 괜찮아요 괜찮아. 

지나가는 시간이에요. 너무 애쓰지 말고 순간을 누리세요...라는 뜻이었을 것이다.

열 내고 있다가 급 웃음으로 갈아타기엔 초큼 민망해 우물쭈물했지만,

여전히 부산스러운 아들들을 챙기며 나오는 길이 사뭇 다르게 느껴졌던건 기분 탓이었을까.




오늘, 그 일이 왜 갑자기 생각나는지 모르겠다.

때로 예상치 못한 순간, 내 삶에 훅 들어온 누군가의 따뜻한 위로는

이렇게 갑작스레 오늘을 살아가는 나의 일상에 의미를 부여해준다.


식탁에 앉아 클릭 한 번이면 저녁 메뉴가 집 앞에 와 있는 오늘의 하루를 마무리하며

도대체 왜 그러고 살았을까,

참으로 바보 같은 수고와 노력을 하고 살았구나 허탈한 마음을...


아니야,,

'지나간 것은 지나간대로 그런 의미가 있죠' 라는 노래 가사처럼

나름의 의미가 있는 시간이었어. 라고.

매거진의 이전글 적절하고도 아름다운 거리두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