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민 사회의 교회를 만나다
TPO: time, place, occasion의 머리글자로, 옷을 입을 때의 기본원칙을 나타냄. 즉 옷은 시간, 장소, 경우(목적)에 따라 착용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 나온 말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 줄 땅으로 가라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너는 복이 될지라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라 하신지라
(창세기 12:1-3)
2011년 미국으로 오게 되었을 때부터 (실은 이미 우리 삶의 모든 과정에서) 우리에게 주신 말씀이라고 굳게 믿었던 그때,
짐을 풀자마자 한 일은 하나님께 제단을 쌓듯 교회를 찾아가는 일이었다.
마치 예배당에 들어서고 나서야 신고식을 하는 느낌이랄까…
초보 크리스천이었던 나는 그 당시 다소 형식적 일지 모를 그 과정에 꽤 의미를 두는 편이었다.
한 가족을 소개받았다. 앞으로 이 가족에 대한 이야기는 두고두고 하게 될 텐데 쉽게 말하면 이 가족은 전혀 모르는 집은 아니고 굳이 따지자면 사돈의 육촌쯤 되는 집이다.
촌수가 말해주듯 평생 모르고 살아도 이상할 게 없는 관계이지만 인연이 어떻게 닿다 보니 만나게 되었다. 알아보니 시라큐스에는 비슷비슷한 규모의 교회가 2-3개 정도 있었는데 사실 교회에 대해서 잘 알지도 못했고 굳이 알아보고 고를 필요를 느끼지 못해서 그분들이 다닌다는 교회에 출석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어색하고 낯선, 그렇지만 싫지 않은 첫 만남? 낯가림이 심한 곤쥬땜에 걱정이 많았던 나를 위해 일부러 유아 예배실까지 함께 해주셨고 남편 집사님은 남편을 따로 인사시켜주시며 최대한 불편하지 않게 여러모로 배려해주셨다. 그럼에도 무언가 낯선 만남에 긴장했던 탓인가 만감이 교차하던 귀갓길, 복잡한 마음을 나눌 곳이 없던 우리를 저녁에 따로 초대하셨다.
미국에서 남의 집에 초대받는 게 처음이라 설레고 긴장된 마음이었나 보다. 어색한 마음으로 찾은 그 집의 안주인인 지금은 언니가 된 김 집사님은 본디 무뚝뚝한 성격에 이질적으로 느껴질 정도로 머라 말할 수 없는 따뜻한 환대로 우리를 맞아주셨다. 장장 네댓 시간에 걸쳐 이루어진 그날의 친목 만남에서 우린 생각보다 별것 아닌 생각보다 많은 얘기를 나누었다.
특히 그날 내 기억에 생생하게 남은 일은 두 가지였다. 우선은 그날의 메인 메뉴가 삼겹살이었는데 이는 아직 집을 구하지 못해 빌린 집에서 생활하는 우리가 집밥을 제대로 먹지 못하고 있을 줄 알고 특별히 배려한 메뉴였고 알고 보니 그곳에서는 삼겹살은 쉽게 구할 수 있는 부위가 아니었다. 그러나…그 배려에도 불구하고 정작 충격적이었던 건 삼겹살을 먹으면서 우리에게 맥주 한잔을 권하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참고로 나는 그날 이전에도 이후에도 임신 때를 제외하고는 맨입에 삼겹살을 먹어본 적이 없다. (나 또한 이후로 수많은 non-alcohol 교회 모임을 주최했지만 대신 한 번도 메인 메뉴를 삼겹살로 정한 적은 없었다)
그리고 두 번째는 삼겹살 이후 식사로 모밀을 주셨는데 그 모밀 국물을 집에서 준비해 주셨다는 것이다. 난 솔직히 그때까지 모밀이 집에서 해 먹을 수 있는 음식인 줄도 몰랐다. 코로나 시대를 지나는 요즘은 이미 상상을 초월하는 밀키트가 일상화되어 있으니 그게 머라고? 싶을 수도 있지만 15년 전의 이야기임을 감안하면 젊은 엄마들은 김치도 사 먹는 마당에 일본 사람들인들 모밀 장국 만들 줄 알까 싶을 것이다.
여튼, 맨입에 삼겹살과 집에서 만든 모밀 국물.
이것은 단순히 그날이 메뉴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고 내가 처음으로 새롭게 속한 처음이자 유일한, 그리고 내가 앞으로 속해 살아갈 커뮤니티의 문화를 대변하는 일이었다는 것을,
그리고 비슷한 느낌의 낯설고 이질적인 삶이 시작되었다는 걸 그때는 미처 알지 못했다.
그리고 몇 주가 지난 후,
이민 교회의 가장 큰 행사인 야외 예배가 열렸다.
엄밀히 말하자면 시라큐스는 캠퍼스 타운은 아니지만 유학생 비중이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 이민 교회의 특성상, 신학기가 시작되기 전 여름 방학에 축제처럼 모이는 야외 예배는 꽤 의미가 있는 큰 행사이다. 뉘신지도 모를 어르신들이 그간 한국 마트에서도 본 적이 없는 집밥 메뉴들을 준비해 주셨는데 이제 겨우 한 달 될까 말까 한 초보 유학생 가정의 눈에도 그것들은 분명 그리운 고향의 맛들이었다.
그중에 눈에 띈 골뱅이 소면!
환대와 경계와 탐색이 공존한 분명히 부담스럽고 어색한 분위기에 압도되어 있었달까, 마침 찾은 유쾌한 소재에 한껏 들뜬 목소리로 말했다.
어머나 이 감동적인 메뉴를 맨입에 먹다니 하. 너무 슬프네요.
라며 까르르르 웃겨 재꼈는데 이런,,, 아무도 웃지 않았다.
그때 알았다.
마치 어렴풋이 배운 개념을 실생활에 적용하는 느낌이랄까?
때와 장소에 맞는 옷차람이라는 TPO가 있듯
공동체마다 적절한 수준의 언어와 위트가 다르다는 것을.
그리고 이제 이 새로운 공동체에서 살아가려면 좋든 싫든 난 이 커뮤니티의 언어를 배워야 한다는 것을 말이다.
교회, 이민자, 유학생, 순종, 비우기,,,,
낯선 언어가 만들어내는 낯선 삶,, 새 옷을 입는 과정은 그렇게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