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veryday, a new face

길에서 만난 하늘

by sandew
sunrise.jpeg Oil on Canvas, 16*20, 2021. 06.

아이오와에서는 종종 장거리 road trip을 떠나곤 했다. 장거리 여행을 선호해서는 아니고 사방 300마일 내에는 아~무것도 없는 Mid-west의 지역적 특성상, 어디로든 다른 도시를 향해 떠나고자 하면 장거리가 될 수밖에 없었으니 선택의 여지가 없는 장거리 여행이었다고 보는 편이 맞겠다.


신생아부터 6살 터울의 큰 아이까지 셋을 낳고 키운 시절이었으니 당연히 누군가는 늘 애기였다. 한 시간쯤 지나면 어김없이 차멀미로 누군가 투정을 부리고 곧이어 울고 싸우기 시작했고, 빼곡히 채운 다섯 명을 싣고 70마일로 달려가는 차 안은 폭발 직전의 폭주 기관차가 되기 일쑤였다. 궁여지책으로 우리 부부는 되도록 새벽과 밤을 이용해 이동했다. 앞바퀴 굴러가는 시간 기준 새벽 4시 출발, 그 말인즉슨 3시 반에 모든 준비를 끝내고 짐을 싣는 것을 의미한다. 장거리 여행에서는 최대한 stop을 줄여야 하기 때문에 아주 사소한 것까지 필요한, 혹은 필요할지 모를 모든 것을 미리 챙겨야 한다. 출발 전날 아이들을 재운 후에는, 분유/이유식/ 과일/ 간식 등 미리 싸 놓을 수 없어 당일 출발 직전 아이스박스에 챙겨야 하는 것들을 하나하나 적어가며 냉장고와 화장실을 들락거리느라 새벽녘에야 겨우 잠이 들었다. 늦잠이라도 자서 출발이 늦어지면 모든 일정이 어그러지므로 최대한 불편하게(?) 침대 귀퉁이에 쪼그려 쪽잠을 자고, 알람 소리에 맞춰 새벽녘에 일어난 남편과 나는 마치 전투에라도 임하듯 눈빛만 교환하고는 각자의 맡은 위치로 손발만 부지런히 움직인다. 출발 후 부득이 화장실 들르느라 찬바람 한번 휘익 들어오면 세 아이 중 누군가는 그 바람에 잠이 깰 것이고, 한 놈 깨면 그다음은 도미노처럼 모두가 깨버리니 새벽부터 달려온 노력이 순식간에 물거품이 된다. 잠도 덜 깬 꺼슬꺼슬한 속에 물, 커피, 우유 등 생리 활동을 촉진하는 모든 수단을 동원해 해결하고 어느새 아빠가 짐을 다 싣는 동안 불도 켜지 않은 깜깜한 방에서 아이들에게 겉옷을 입히고 양말을 신긴다. 모든 준비가 끝나고 시동을 걸고 나서야 깨더라도 다시 잠들 수 있는 큰 놈부터 차례로 차로 옮긴다. 이렇게 해도 거라지로 나가 카시트를 채우는 순간 대부분 뒤척거리고 잠시 잠이 깨지만 완전히 깨버리기 전에 주행을 시작하면 1시간 이내로 차례로 다시 잠이 들곤 했다. 물론 이상적인 경우다. 한 놈이라도 다시 잠들지 못해 울기 시작하면 그다음은 아….모르겠다…괴롭다.


새벽 운전을 전담해야 하는 막중한 임무를 위해 모든 걸 제치고 전날 9시에 잠든 아빠는 그때부터 묵언 주행을 시작, 극도의 긴장으로 잠이 홀랑 깨버린 엄마는 지금 자 둬야 한다는 일념으로 눈을 감고 잠을 청한다. 3시간이면 200마일, 보통 하루 이동량을 300-500마일을 잡을 때, 200마일을 해결하고 나면 나머지는 조금씩 끊어가면 되기에 남은 여행을 위해 이렇게 첫 구간의 미션을 완료한다. 7시가 넘어 분유 먹는 애기부터 잠이 깨기 시작하면 그게 첫 휴식이다. 미국 여행에서 가장 두려운 건 아무 타운에나 함부로 들어갔다가는 엄한 분위기를 만나기 십상이라는 것이다. 그러니 한국의 휴게소만큼 큰 규모는 아니지만 고속도로 상에 위치한 rest area의 맥도널드는 낯선 여행자들에게는 가장 안전하고 효율적인 휴식 장소였다. 시판 이유식 한번 먹인 적 없을 정도로 건강하게 먹이는 것에 집착하던 엄마였던 나는 한 끼 사 먹는다고 큰 일 안 나는 줄 알지만 곳곳에서 정크푸드로 해결해야 하는 상황에 놓이는 긴 여행기간 동안 최대한 죄책감을 덜하기 위해 바리바리 싸들고 다니는 편이었다. 칭얼거리는 아이들에게 싸온 것과 사 온 것을 먹이느라 분주한 동안 남편은 한 놈씩 차례로 데리고 화장실에 다녀온다. 빨리 움직여도 최소 한 시간 반이 걸리는 아침의 휴식 후, 나와 남편은 운전자의 역할을 바꾼다. 여기서 매번 작은 실랑이가 벌어지는데 쟁점은 이제부터의 운전은 아이들이 일어난 상태라는 거. 물 좀 줘, 떨어진 거 주워 줘, 이거 잘 안돼, 저마다 안겨준 장난감과 볼 일들로 쉼 없이 불러대는 아이들을 치다꺼리해야 하는 일이 여태 잠만 잤던 동승자에게 부여된 새로운 임무가 아닌가. 남편은 이미 피곤한 상태인데 굳이 운전을 하겠다고 버티고 그런 남편의 마음을 이해 못하는 것은 아니나! 5분 걸러 뒤돌아보기엔 이미 잠을 설친 나는 차마 너그럽게 양보할 수 없었다. 그렇게 운전석 쟁탈을 위한 약간의 신경전을 뒤로하고 다음 목적지인 동물원을 향해, 지인과의 반가운 만남을 위해, 아쿠아리움을 향해, 낯선 곳에 대한 알 수 없는 기대와 설렘을 따라 이동했다.


도심의 문화와 맛집들을 전전하며 누린 사치도 잠시, 또다시 긴긴 로드 트립의 시간. 휴게실에서 이른 저녁을 먹고 양치질을 하고 잠옷으로 갈아 입히고 잘 준비를 마친 아이들이 다음 목적지를 향해 가는 길에 스르르 잠드는 기적을 꿈꾸며 다음날 일정에 무리가 가지 않을 선에서 최대한 많이 이동하는 게 우리의 목표였다. 운전기사 따로 있는 것도 아니고 도착지에서 종일 세 아이들을 들고 업고 메고 뛰는 것도 오롯이 우리 부부의 몫이었으니 도대체 그런 여행은 누굴 위한 것이었는지 지금 생각해보면 미쳤거나 기력이 뻗쳤다. 누구도 안 즐거울 것 같았던 그 여행에서 돌아오면 다시는 엄두도 못 낼 것 같았지만 사방이 막힌 감옥 같았던 그 시절의 나에겐 육체적인 피곤을 충분히 감당할 만큼 일상을 벗어나 마시는 낯선 공기가 그립고 간절했다.


돌이켜 보면 당시 우리에게 여행은 휴식과 재충전이 시간이라기보다는 매일매일 치열했던 일상이 그 자리만 옮긴, 차질 없이 완수해야만 하는 또 다른 프로젝트와 다름 없었다. 그러나 그렇게 200마일을, 100마일을, 50마일을 이동하는 동안, 오롯이 시선이 향할 수밖에 없었던 매 순간의 하늘을 지금도 선명하게 기억한다.

새벽 4시, 칠흑 같은 어둠을 뚫고 올라오는 푸른빛이 어느새 중천에 이르러 우리의 시선을 지배하는 순간, 그리고 분주했던 하루를 마무리할 즈음 온 하늘을 붉은빛으로 덮으며 사그라져가는 해 질 녘의 풍경.

30분 전과 후가 똑같은, 온통 하늘과 콘밭 뿐이었던 미드웨스트의 광활한 풍경에서 만난 일출과 일몰의 광경을 볼 때면 가슴 속에 뜨거운 무언가가 올라오는 것 같았다. 그것은 아마도 매일 반복되지만 매순간 다른 얼굴을 갖는 하늘로부터 받은 위로와 도전이었을 것이다. 다람쥐 쳇바퀴같이 반복되는 나의 일상 속에서도 새로운 의미를 찾고 힘을 내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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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드 웨스트를 떠나 한두 시간 내에 대도시들이 즐비한 동부에 정착한 지 3년이 되어간다. 장거리 드라이빙을 할 일도 자연스레 없어졌으니 고속도로에서 마주하는 일출과 일몰의 장면도 기억 속에만 남은지 오래다.

매일 새벽 6시, 일어남과 동시에 비몽사몽 계단을 걸어 내려오며 본능적으로 불을 켜고 커피를 내리며 시작되는 하루. 남편 포함 4개의 도시락을 싸고 한 놈씩 빽빽 깨워 밥 한 숟갈이라도 먹여 보내려고 반쯤 열린 입에 아침밥을 욱여넣다 보면 어둑했던 새벽녘은 이미 환한 아침이 되어 있는 게 나의 새로운 일상이다.

지난 코로나 동안 킨더 가든을 시작한 막내를 학교에 보내고 돌아보니 어느새 사춘기가 된 딸과 넘치는 에너지를 온몸으로 표출해 내는 장남이가 이제는 다른 궤적의 엄마의 역할을 요구하고 있었다. 아이들이 크면서 몸은 조금 수월(?)해졌지만 질풍노도의 시기를 앞두고 저도 나도 허우적거리다 보면 내가 가는 길이 맞는지 이 길의 끝에는 무엇이 있는지 마음이 지치곤 한다.

그리고 문득,

몇 시에 출발, 몇 시에 도착, 몇 시에 식사, 취침 등 비록 숨 가빴지만 다음 목표가 분명했던 그 시절이 종종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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