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은 엄마를 위한 시간
곤쥬가 돌이 막 지났을 무렵부터였나 보다
꿈에 그리던 돌상을 치우는 순간, 엄마에게는 '오늘부터 우리는'을 부르며 무대를 찢었던 2021년 50대 희애 언니의 모습처럼 (https://www.youtube.com/watch?v=O_-HdwKDgwg) 나에게도 세상을 향해 집 밖으로 뛰쳐나가는 신세계가 열리는 줄 알았다.
그러나 나의 곤쥬님은 여전히 지독히도 낯을 가렸고 어제와 같은 오늘의 하루는 먹고 싸고 자는 참으로 단순하지만 예민하기 짝이 없어 참으로 힘겨웠던 곤쥬의 하루 일과에 빈틈없이 맞춰 있었다.
한 살을 맞은 감격적인 그날을 기리며 엄마로서 응당 느껴야 하는 감사와 축복의 마음이 머리를 지배한 순간을 지나자마자 현타가 왔달까. '백일의 기적'(그놈의 기적 타령... 초보 엄마들에겐 기적이란 말처럼 희망고문이 없다) 때 맛보았던 좌절을 고스란히 다시 맛보며 아마도 나는 다시, 아니 원래대로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한창 곤쥬의 이쁜 짓에 푹 빠져 시간 가는 줄 몰랐어야 할 그때, 매일매일 똑같은 일상의 한가운데 머물던 나에겐 문득문득 정지된 시간에 갇힌 듯한 느낌이 들곤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겨우 31살, 7년을 직장 생활을 했으니 집에만 머무는 생활 자체도 낯설었거니와 친구들 중에는 아직도 미혼인 친구들이 즐비했고 집에 들어앉은 지 1년이 넘어가니 슬슬 나도 모르게 위축되고 뒤쳐지는 기분에 무언가 해야 할 거 같은 조급한 마음이 들곤 했다.
그래서 생각해낸 것이,
이 이름을 고르기까지 고민을 약간 했다.
'곤쥬의 공작교실'...? 무난하지만 동시대 엄마들의 관심을 끌기에 괜츈한 이름이 아닌가. 그러나 사실상 이건 나의 프로젝트지 겨우 돌이 지난 곤쥬는 참여자일 뿐 관심이 없으니 보이기 위한 가식적인 제목인 거 같아 마음에 걸린다. 그렇다면 '엄마의 공작교실'? 누가 봐도 엄마 위주의 프로젝트인 이 주제는 너무 진부하고 재미없지 아니한가.
해서, 고민 끝에, 엄마가 엄마를 위해 한 거지만 그래도 아이를 키우는 엄마들이 참고할만한 척, (아이를 위한)이라는 표현이 생략된 '엄마표 공작교실'로 낙점 지었다.
어쨌거나 그리하여 우리 집에서 가장 넓은 공간인 부엌 싱크 반대편 벽에 커다란 전지를 붙이고 아무렇게나 생각나는 밑그림을 그렸다.
시댁에 가면 늘 쌓여있는 잡지를 가져다가 색깔별로 찢어 붙이는 꼴라쥬를 시작했다. 물론 곤쥬는 그림을 완성하는 것 따위에는 관심이 없다. 그저 풀칠해 벽에 붙이는 게 재미있었을 뿐, 당연히 그림에 맞춰 붙일 턱이 없이 아무 데나 붙였고 그나마도 채 10개도 붙이기 전에 싫증을 냈다. 곤쥬가 자는 시간, 같이 노는 시간 짬짬이 그림을 완성해 나가는 건 온전히 나의 몫이었으니 말 그대로 엄마를 위한 엄마에 의한 엄마의 공작교실이 아닌가.
그리고 그렇게 완성된 우리의 합작품은 밥상이 되었고 가족이 되었다.
찢고 붙이기만 했던 꼴라쥬로 시작한 우리의 공작교실은 하나씩 새로운 시도를 해보기로 했다. 휘휘 벽에 대고 휘젓는 수준이었지만 붓을 쥐어주기도 하고 종이 대신 장식도 붙여보다 보니 다음에는 어떤 재료를 써볼까 괜히 함께 문구점에 가서 구경도 하고 골라보는 재미가 쏠쏠했다.
이쯤 되면 나의 열정으로 인해 조기 교육의 효과를 톡톡히 본 우리 곤쥬는 12살이 된 지금 예술적 감성이 충만한 아이가 되었을 법도 하지만 사실 지금 곤쥬는 만들기나 그림에는 통 취미가 없다. 다만 지금까지 남아있는 공작교실 작품들을 볼 때면 내가 저런 것도 했네 웃으며 이야기할 뿐이다. 그러니 예나 지금이나 역시 엄마를 위한 시간에 불과할 뿐이었지만 덕분에 지리한 일상의 시간을 담은 추억 몇 개는 건졌으니 그것으로 충분하지 아니한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