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출이 뭐길래
여행을 즐기는 사람들은 크게 두 가지 분류로 나눌 수 있을 거 같다.
각종 명소와 풍광을 눈으로 확인하는 현장의 감격에 의미를 부여하는 여행가 타입과 그저 여기가 무릉도원이구나…주구장창 쉬면서 맛있는 거 먹고 자고 놀고 늘어져 게으름을 만끽하는 휴양 타입으로 말이다. 나의 부모님은 절대 전자였다. 지금도 팔순이 넘은 연세에 직접 렌트를 해 몇 달씩 다녀야 하는 그분들은 본인들이 엄홍길 대장이며 한비야 님 인줄 아시니 내 어린 시절의 여행은 말하지 않아도 그려지리라.
부모님과의 여행은 한마디로 즐거웠던 적이 없다.
늘 일정에 쫓겼고 그렇게 열심히 찾아간 장소는 왜 갔는지 몰랐으며 그 과정은 일도 재미없었다. 밥은 대충 때웠고 쇼핑은 (불필요한 물건을 사느라 돈만 낭비하고 짐을 늘리는) 바보 같은 짓이었으며 그 많은 여행 중 테마파크와 동물원, 아쿠아리움 따위는 가본 적이 없었다.
그분들은 여행을 떠나기 전 어딜 가는지 그곳에 뭐가 있는지 몇날 며칠을 공부하셨고 가서도 내내 지도를 펼치고 정보를 탐색하셨으며 돌아와서는 그 여행을 통해 얻은 새로운 경험을 한 달 내내 이야기했다. 우리 부모님에게 여행은 삶의 또다른 공부요, 경험이라 그분들은 그것을 통해 '쉼'을 누릴 수 있었고 그 '쉼'을 우리에게도 가르쳐주고 싶으셨던 것 같다. 하지만 자녀된 나는 그 배움이 하나도 즐겁지가 않았다.
그 중에 가장 이해할 수 없던 건 일출을 보러가는 아침이었다. 가뜩이나 피곤한(?) 여행길에 어차피 집에서도 여기서도 뜨는 해를 새벽부터 일어나 보러 가는지 (다행히 우릴 델꼬 가진 않으셨다), 엄마빠가 언제 오나 여관방에서 기다리던 어린 내가 가장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어쨌거나 덕분에 난 또래 아이들에 비해 넓은 세상에 대한 얕디 얕은 수준의 너무 많은 지식이 있는 학창 시절을 보냈다 하지만 그 부작용으로 내가 대학생이 되면 배낭여행이나 오지로의 여행 따위는 절대 하지 않을 거야 결심하게 되었다. 그리고 결심에 걸맞게 배낭여행 열풍이 불던 세기말과 밀레니엄의 초반, 난 한 번도 미지의 세계를 궁금해하지 않았다. 오히려 후자 타입의 여행을 만끽하며 ‘이게 여행이지!’ 친구들과 휴식을 취할 수 있는 곳에서 놀고 먹고 쉬는 여유를 즐겼다.
직장 생활 3년 차 즈음이었나, 내 길을 찾겠다며 그만두고 홀로 떠난 미국 여행은 나에겐 분명 낯선 도전이었다. 이곳저곳 (물론 이미 가보았지만) 낯선 곳을 아무 계획 없이 머물고 떠돌던 어느 잠 못 이룬 새벽녘, 바닷가로 나가 마주한 일출은 정말 장관이었다.
빡센 여행(?)에 대한 거부감에 눌려있던 미지의 삶을 향한 동경 같은 것이랄까? 잊고 있던 용기와 열정, 도전과 희망을 깨우쳐주듯 바다 위로 떠오르는 해를 보며 무언가 뚫고 나가고픈 강렬한 열망을 느꼈다.
비유가 매우 적절치 못하게 느껴지지만 바람을 안 피우는 놈은 있어도 한번 피는 놈은 없다는 말처럼,
그제야 자고 있는 어린아이들을 두고 두 주먹 불끈 쥐고 굳이 해가 뜨는 장면을 보러 나가야 했던 엄마빠의 마음을 아주아주아주 조금 이해할 수 있을 것도 같았다.
결혼하고 아이를 낳고부터는 난 다시 휴양인이 되었다.
안전하고 편안한 곳에서 놀고 먹으며 일상의 평온을 즐기는 여행은 분명 행복하지만
내 맘 어딘가에 그날에 느꼈던 뜨거운 무언가가 아쉬움으로 남아 있었나 보다.
어린아이를 키우는 엄마는 늘 잠을 쪼개 자기 때문에 밤낮이 따로 없을 때가 많다.
비몽사몽 일어난 새벽녘을 밝혀오는 아침 해를 마주할 때면
아.. 나에게 저 뜨는 해를 보며 가슴 뜨거워지던 순간이 있었지,
꿈꾸며 달리고픈 시절이 있었지,
그때 그 해는 오늘도 변함없이 떠오르고 있는데 나만 마음이 늙어버렸구나 싶을 때,
아침 해가 하루를 밝혀오는 순간을 그린다.
나에게 일출은 추억이고 도전이고 용기고,
오늘을 살아갈 새 힘이며, 선물 같은 오늘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는 순간이다.
컴컴한 밤의 어두움을 형형 색깔로 물들이며 몰아내는 빛처럼, 삶의 어두움을 밀어내고 새로운 희망을 꿈꾸는 하루가 시작되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