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 친구가 필요했나 봐

밤이면 밤마다

by sandew

남편이 공부하는 7년 동안, 나의 이름이자 신분은 '유학생 와이프'였다.


대도시가 아닌 캠퍼스를 중심으로 형성된 미국의 캠퍼스 타운의 유학생 사회는 대부분

학부 졸업하자마자 석사, 박사 과정을 차례로 밟아온 지망생과 그들의 가족이었다.

남편의 학업을 위해 함께 낯선 삶에 던져진 와이프들은 누구보다 헌신적이었으며 보통은 남편의 혹은 본인의 과정이 끝날 때까지 자녀 계획을 미루거나 하나 정도인 갓난아이의 독박 육아를 소명으로 받아들이고 있었다.


5년간의 직장 생활을 하고 학계(?)로 돌아온 남편은 그 바닥에서는 이미 꽤나 늦은 편이었고

그보다 두 살 연상이며 박사과정 시작할 즈음, 애가 둘인 우리 집은 참으로 드문 스펙이었다.

(이후로 하나 더 늘은 건, 그때 시점에서는 상상도 못 할 일)


어느 곳이든 어떤 모습으로든 각자의 인생에서 가장 치열한 시간을 보내는 30대.

남편은 공부를 해서 새 삶을 열어보고자 했고

나 또한 그 시간을 가정에 헌신하기로 동의했다.


그러나 아무리 그럴듯한 계획이라도 현실엔 예측 못한 그림자가 있는 법.


외로움

유학생 와이프로서 나의 가장 두려운 적은,

불투명한 미래에 대한 염려가 아니고,

현재 당면한 삶에 대한 버거움도 아니고,

떠나온 과거에 대한 아쉬움도 아니었다.


매일매일의 일상에서 나를 힘들게 했던 건,

삶의 모든 순간, 문득문득 찾아오는 외로움이었다.


새벽부터 일어나 우유를 먹이고(그때 우리 집엔 늘 우유 먹는 '아가'가 있었다) 정신없이 아침을 준비하고 남편이 학교에 가고 나면 오롯이 나의 몫으로 남은 아이들.

물론,

보석 같은 아이들과의 일상은 매 순간 사진으로, 글로 남겨도 부족할 만큼

아름답고 빛나는 순간들로 채워졌다.

그러나 빛나던 어제, 빛나는 오늘, 빛날 내일을 매일같이 살아내던 나에게는 종종

그 빛남 뒤에 숨겨진 짙은 어두움의 시간이 찾아오곤 했다.


저녁을 먹고 아이들을 씻기고 치우고 재우고 나면 자신의 방으로 돌아가 남은 공부를 해야 했던 남편.

우우~, 어어~, 이~잉, 꺼깍! 온몸의 소리로 표현하는 아이들의 요구를 이건가 저건가 맞춰주고

변변한 성인과의 대화 없이 치열하게 보낸 하루의 끝,

혼자 남은 나를 기다리고 있는 건,

매일 티도 안 나게 생기지만 안 하면 티가 나는 집안일들(설거지, 빨래, 내일 이유식/도시락 준비, )...

주 7일을 기계처럼 반복하며 오롯이 혼자 감당해야 하는 시간들 말이다.


부엌에서 한눈에 보이는 우리 집 마루 한복판에는 비스듬히 기운 지붕의 각도대로 난 채광창이 있었다.

솔직히 기능적으로는 채광창처럼 쓸데없는 게 없다고 생각한다.

볕이 잘 듣지 않는 미국집의 구조 상, 기대했던 한겨울의 볕은 실상 잘 들지도 않을뿐더러,

그나마 그 작은 창을 통해 들어오는 볕은 그 네모 넘어의 전체 공간을 뎁히기엔 너무 미미했다.

반대로 여름 한철, 그 창을 통해 들어오는 땡볕은 너무나 강렬해서 실내 온도를 높이는 주범이 되었고

태양의 움직임에 따라 닿은 모든 곳의 가구 색을 바래게 하는 최악의 장치였다.


그런데 그 채광창이 주는 생각지도 못한 기능이 있었으니,

"Night buddy through skylight window" 2021.11. 16*24, oil on canvas

깊은 밤.


모두가 잠든, 또다시 혼자인 외로운 밤,

사방이 막힌 감옥 같았던 그 작은 공간에서

유일하게 하늘로 뚫린 공간.

그곳에서 나를 있는 그대로 봐주고 있는 그 달빛이...

생각지 못한 친구가 되어 주었다.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그 자리에...

지치고 버거워 너덜너덜해진 나의 하루를 수고했다, 힘들었지, 잘하고 있어, 따뜻하게 비춰주던 그 빛.


그 소중한 만남의 시간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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