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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andew Mar 24. 2022

동방예의지국의 놀이터 대화

프로불편러가 되어가는가

아파트에도 봄이 왔다.

아파트 단지 내에서 봄이 왔음을 가장 먼저 알려오는 건 새싹과 꽃나무가 아니다.

반쯤 열어놓은 부엌 창에서 까르르, 끼야~ 놀이터가 떠들썩해지기 시작하면 날이 풀렸다는 거다.

마흔 넘어서도 지독히도 낯을 가리고 먼저 다가서지 못하는 성격인 나를 꼭 빼닮은 세 아이들은 하나같이 새로운 환경에 가면 엄마 뒤로 숨고 (엄마도 숨고 싶은 마당에ㅠㅠ) 쭈삣거리니 새로운 친구를 사귀는 것은 나에게나 애들에게나 영원한 숙제이다.

아랫집 큰애, 앞동 둘째, 건너편 막내, 옆줄 애기,, 나이도 성별도 다른 동네 친구들이 뒤섞여 뛰놀고 삼삼오오 엄마들의 수다판이 벌어지는 곳에서 해마다 나는 혼자 벌쭘하게 서 있는 엄마였고 우리 애들은 어느 곳에도 끼지 못하고 우리끼리만 놀았다. 가급적 엄마들이 모이는 장소- 등하굣길 학교 앞, 학원 버스가 내리는 곳, 놀이터 등은 내가 기피하는 곳이지만 형, 누나가 없어 매일 심심해하는 막내가 동네 친구라도 사귀었으면 하는 바램으로 용기를 내서 데려갔다.


단지 내에 유일하게 우레탄 바닥이 깔린 옆 동 놀이터는 이 동네의 만남의 광장이다.

이 단지 내 엄마들의 소셜은 거의 여기에서 이루어지는데 이미 만들어진 공동체에 비집고 들어가는데 극도의 공포를 느끼는 나는 주로 나처럼 아싸인 할머니나 아주머니들과 한두 마디 나누곤 했다.

막둥이 또래의 여자 아이가 살갑게 다가와서 말을 붙인다.

"너 몇 살이야?" (딱 보기에 막둥이보다 어린데 우리 꼬마는 워낙 작아서 다들 애기로 본다.)

한국 사람은 애나 어른이나 나이부터 트고 시작한다. 아마도 호칭에 따른 문화일 것이다.

말 붙임을 당하기(?)가 무섭게 내 뒤로 숨어버린 막둥이, 익숙한 장면이라 내가 대답한다.

"으응~ 얜 8살이야. 넌 몇 살이야?"


그때 아이의 할머니로 보이는 분이 다가오시더니 말을 건네신다.

8살?

그럼 학교 갔겠네?

OOO초?

어머, 근데 왜 못 보던 얼굴이지?

몇 동 살아?

예~예~ 대충 얼머부리며 대답하다가 우물쭈물 "사실 저희는 여기 안 살아요. 미국에서 잠깐식 다녀가곤 해서 못 보셨을 거예요."

어디 사는데?

"아… 미국에서 왔는데 종종 이렇게 애들하고 와요."

미국 어디? 우리도 오래 살아 잘 아는데…

아빠는 안 오고? 애들 한국말 가르치려고? 우리도 그랬지…


그러면서 시작된 본인의 인생사.

미국에 살다가 들어왔는데 애들이 적응을 잘해서 둘 다 서울대 가고

딸도 사위도 의사에 애는 셋이나 낳으시고

단지 내에서도 가장 큰 평수인 동에 살며 도우미 분도 따로 계시는데

본인도 마침 같은 단지에 살기 때문에 종종 아이들을 봐주고 놀이터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으시다며,,

아들, 딸 모두 같은 단지에 살고 애들도 비슷한 또래라서 웬만한 엄마들은 다 알고 있으시다고…

불과 10분도 채 안 되는 사이, 그 집에 대해 너무 많은 걸 알게 되었다.


몬가 한마디 보태야 할거 같아서..

"맞아요, 저희 오빠랑 동생도 다 여기 살아요.

사실 저도 여기서 자랐는데 제 친구들도 아직 여기 많아요. 이 동네 사람들이 여길 잘 못 떠나죠.."


그럼 그럼~ 여기 그런 사람 많지.

오빠는 애가 몇인데?

멈췻!


오빠는 혼자 살아요 (혹시 또 물으실까 봐)동생도 혼자 살아요.

저만 애가 많아요ㅎㅎㅎ(스스로도 이 웃음이 약간 과하다 느껴졌음)

..!

2초쯤 침묵이 흘렀나?

저런… 엄마가 걱정이 많으시겠네. 오빠면 나이가 꽤 될 거 같은데 어쩌다가…? 라며 마스크에 모자까지 쓴 나를 위아래로 훑어 보시는 시선이 강렬하게 느껴졌다.

모지? 졸지에 멀쩡한 밥벌이 하며 자신의 삶을 살고 있는 오빠와 동생을 부모 걱정시키는 모지란 인간 만들어버린 상황이랄까?


왜요… 그들은 다 잘 지내요.

오히려 제가 이혼할 판인걸요.

라고 말했다가는 이거 콩가루 집안이네 놀이터에서 매장될 각,

순간, ‘내가 아직 도장을 안 찍은 건 신의 한 수였네’라는 생각이 스친 건 안도감이었을까, 비겁함이었을까.




한국에 올 때마다 느끼는 건 아이들이 너무나 예의가 바르다는 것이다.

윗사람들에게 꼬박꼬박 존댓말을 쓰고, 첨 보는 어른에게도 허리 꾸벅 배꼽 인사를 하고, 그네를 타다가 다른 아이가 기다리면 다른 친구에게 양보하자~라는 엄마 말에도 싫다고 드러누워 떼를 쓰는 아이는 없다.  말 그대로 어찌나 가정교육을 잘 받았는지 감탄이 나올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자유로움에 대한 존중’이라는 이름으로 고삐 풀린 망아지 같은 또래 미국 아이들 틈에서 자란 우리 아이들이 상대적으로 ‘못 배운’ 아이들처럼 느껴질 정도이다.


그러나 이 아름다운 동방예의지국에서 예의보다 앞선 ‘다름’에 대한 배려는 여전히 부족하다고 느껴진다.

오빠는 무슨 일을 하니, 어떤 사람이니라고 대놓고 묻는 것보다

단순히 결혼을 안했다는 이유로 '걱정 끼치는 인간'으로 규정짓는 게 덜 무례하다고 누가 가르쳤단 말인가.


그냥 어른들의 오지랖이지.. 하고 넘어가면 될 일을 프로불편러처럼 불쾌감이 드는 나는,

어쩌면 ‘오지랖’이라는 이름으로 내가 앞으로 감당해야 할 '다름'이 난도질 당할 날들이 두려운 건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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