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sandew Apr 05. 2022

제 아이는 제가 혼내겠습니다

미쿡 엄마의 한국 경험기 #1

어쩌다 보니 한국과 미국에서 한 학기씩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며 아이들의 양육과 관련된 양국의 문화를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육아의 기본은 아이를 사랑하는 마음이고 사람 사는 곳은 결국 다 비슷하니 방식은 다르게 표현될지 몰라도 시작은 같은 마음이라고 생각합니다. 다만, 아이를 대하는 작은 차이에서 양국의 문화적 차이가 느껴질 때가 종종 있습니다. 해서, 햇수로 6년 동안 2살부터 3학년까지의 아이들을 데리고 양국을 오가며 느낀 차이점에 대해 이야기해보려고 합니다. 어디까지나 ‘다름’에 대한 이야기지 ‘옳고 그름’ 혹은 ‘낫고 못함’에 대한 이야기가 아님을 강조합니다.다름에 대한 다른 의견이 있다면 언제든 감사하게 나누고 싶습니다만 왜곡된 시선으로 비난을 위한 비판은 정중히 사양합니다. 혹여나 제 글에 제가 의도치 않았던 비판과 평가의 의견이 보인다면 관련 지적 감사히 받겠습니다.

예전에 회사 다닐 때 있던 일이다.


회식 장소가 횟집일 때는 몬가 한 건을 했거나 특별한 이슈가 있어 거나하게 취할 수 있는 날이라는 뜻이다. 일찌감치 판을 벌리고 부어라 마셔라 분위기가 잔뜩 달아올랐을 무렵이었다.

그때만 해도 식당에서 흡연이 가능하던 시절이었는데 (급 옛날 사람 느낌) 옆 테이블에서 가족 식사를 하던 엄마가 우리 테이블로 오더니,

‘아이가 있으니 흡연을 삼가 주었으면 좋겠다’라고 말했다.

유독 순하고 가정적인 우리 팀 아저씨들은 냉큼 '예~예~' 하면서 담배를 껐고, 원래부터 다혈질에 사소한 일에 정의로운 투사였던 나는

‘아니, 여기 원래 흡연되는데 자기 애기 있으니까 담배 끄라는 게 말이 돼요??

그리고 아저씨들은 왜 할 말 몬하고 죄진 사람마냥 후다닥 끄는 건데?'

이 불의한 상황에 대해 두 주먹 불끈 쥐고 따지려는데 누군가 말했다.

'저 집도 오랜만에 겨우 외식 나온 걸 거야. 오죽하면 와서 얘기하겠어. 나중에 산듀씨 같은 사람이 애 셋씩 낳고 그런다니까. 그때 되면 이해할 거야.'


겸손해지라고 주신 아들들

그때 그 말은 농담인지 축복일지 모를 씨앗이 되어 난 정말 애 셋의 엄마가 되었고

그중의 둘인 천방지축 아들들은 나를 한없이 겸손하게 만들어 주고 있다.

그래서였을까?

어디선가 예전의 나 같은 싸가지를 만나 숭한 소리를 들을까 무서운 나는, 밖에 나오면 과하다 싶을 정도로 잔소리를 앞세우는 엄마가 되었다.

‘장남아, 그렇게 뛰다가 다른 사람 치면 큰일 나’

‘막둥아, 이러면 딴 사람한테 방해되지, 저러면 다른 사람들이 놀라지.’

아무리 아무리 타이르고 협박하고 소리를 지르고 해도 돌아서면 또다시 괴성을 지르며 달려나가는 두 아들들을 보며 '그 흔한 엄마들이 애들을 방치하는게 아니었구나' 한없이 무기력함을 느끼고 있다.


아이라는 존재에 대해 관대한 나라

상대적으로 미국은 넓은 땅덩이만큼이나 워낙 다양해서 ‘미국’이라고 뭉뚱그려 말하기엔 지역마다, 문화마다 다른 리스크가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적어도 아이들에게만큼은 ‘관대하다’고 말할 수 있겠다.

‘관대하다’는 표현은 상당히 애매모호해서 여러 오해와 논쟁을 일으킬 수 있겠지만 내가 표현한 ‘관대하다’는 말 그대로 문제를 삼지 않는 이해의 폭이 꽤 넓다 정도가 되겠다.


기본적으로 아이들의 다소 과한(?) 행동에 대해서는 크게 제재를 하지 않는 편이고

(예를 들면 몰에서 소리를 지르며 뛰어다니는 행동은 다른 사람들에게 명백히 방해가 된다. 그러나 미국 사람들은 애가 누굴 치지 않는 한, 보통은 피해 가는 편이고 그것에 대해 눈살을 찌푸리거나 나무라지는 않는다)

안전과 관련된 사항 (카트에 애가 서 있다던지 명시된 규율을 어기는 행위)이 아니면 지적하는 일은 거의 없다. 오히려 내가 아이들을 나무라고 있을 때 괜찮다, 애들은 원래 그렇다 하며 다독여준 사람들을 심심찮게 만나게 된다.

그러나 모든 일에는 지나친 일이 있는 법.

아이가 다른 사람에게 신체적, 물질적 피해를 주거나 위에 언급한 안전 사항을 어길 경우,

반드시 보호자가 누구인지 물어온다.

그리고 보호자에게 명확히 아이가 잘못된 행동을 하고 있으며 주의를 줄 것을 권한다.

이 경우, 아이는 자신의 행동으로 인해 엄마가 곤란하게 된 상황을 직접 목격하고 사태의 심각성을 인지한다.

(물론 그래도 말 안 듣는 놈은 안 듣는다) 그러나 엄마는 그 일로 인해 아이의 행동이 엄마뿐 아니라 다른 사람들에게도 용납될 수 없다는 걸 가르칠 기회를 얻는다. 그리고 자신의 방식으로 다시 훈육한다.


가는 곳마다 문제아 등극

부끄럽게도 한국에 오면 우리 아이들은(특히 아들들ㅠㅠ) 아무리 잔소리 폭탄을 쏟아부어도 밖에 나가면 종종 주의를 받는다.

얼마 전 오랜만에 식당에 갔는데 아이가 서랍에서 수저를 꺼내는 게 너무 신기했는지 한 개만 꺼내야 할 걸 서너 개를 더 꺼내며 놀고 있었다. 당연히 잘못된 행동이다. ‘막둥아 이거 그렇게 꺼내면 안 돼, 필요한 만큼만 꺼내야 하는 거야. 안 그러면 누군가 이걸 다 설거지 해야 하자나.’

그러나 막둥이가 들을 리가 없다. 나 또한 식당에서 큰 소리 내가며 애를 잡을 수 없는 노릇이니 더 안 꺼내길 바라면서 식사를 이어가고 있었다. 그때 직원분이 오셔서 ‘어머 애기야, 이거 갖고 장난치는 거 아니야.’라며 정색을 하셨다. 순간, 아이도 놀래고 난 아이의 잘못된 행동을 방치한 부모가 된 것 같아 적잖이 당황해서 ‘거봐, 엄마가 그러지 말라고 했잖아’ 아이를 나무라고 급히 ‘죄송합니다’라고 말하려는 순간 그분은 이미 사라지셨다.

며칠 전 공연장에 갔을 때, 아이가 꿈지럭거리다가 앞자리를 계속 찼다. 나도 알고 있다. 뒤에서 계속 차는 게 얼마나 짜증 나는 일인지. 그래서 아이들 델꼬 공연은 엄두도 못 내지만 오래전 횟집 엄마처럼 모처럼 꼭 보고 싶은 공연이라 큰 맘 먹고 가게 되었다. 계속해서 ‘차면 안돼’, ‘똑바로 앉자’ 주의를 주고 있을 때, 앞자리 청년이 아이에게 말했다. ‘애기야, 뒤에 차지 말아요.’ 내가 ‘어머 죄송합니다’라는 말이 끝나기도 전에 그분은 이미 또 앞을 향해 계셨다. 그리고 난 민망함에 또다시 아이를 나무랐다.

이런 경험은 한국에 올 때마다 종종 겪는 일이고 내가 아이들과 외출을 하길 꺼리게 된 이유이기도 하고 어쩌다 외출을 하게 되면 필요 이상으로 예민해지기도 한다.

그러나 매번 궁금했다.

아이의 보호자가 옆에 있는데 왜 보호자에게는 한마디 없이 굳이 아이에게 직접 지적을 할까,

이건 매우 조심스러운 결론이지만,

아마도 엄마가 훈육하지 않는다고 전제하기 때문에 할 수 있는 말이 아닐까 싶다.

혹은 엄마가 훈육하지만 엄마 말을 안 듣는 애가 본인 말을 들을 거라고 생각해서 직접 주의를 준 것일까.


어느 게 맞다고 말할 순 없지만 분명한 건 아이에게 직접 지적을 하는 행동은 엄마가 훈육할 기회를 잃게 한다. 보호자가 있는데 아이를 지적하는 건 보호자를 당황스럽게 하고 방어적으로 만들기 쉽다. 그래서 아마도 아이를 대신해 싸우는 맘충이 생겨난 게 아닐까 싶기도 하다.

(물론 자기 아이는 무조건 잘했다고 싸고도는 맘충까지 변호하고 싶은 건 아니다)

설사 그렇지 않다고 해도 남이 직접 지적을 하는 게 아이 앞에서 보호자에게 이야기하는 것보다 아이의 행동을 개선할만한 효과가 있었는지 또한 의심스럽다.


결국은 어른을 상대해서 불편한 얼굴 맞대고 싶지는 않고

자신의 불쾌감은 표현하고 싶으니 직접 남의 아이를 훈육할 수 있다고 생각한 게 아닐까.

난 아이의 잘못된 행동을 방어하고 맞서 싸우고 싶은 생각은 없다.

다만, 판단과 사고가 미치지 못하는 아이들에게는 그래서 보호자가 있는 것이고

아이의 잘못된 행동에 대한 책임은 보호자에게 지우는 게 조금 더 합리적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다.




오래전, ‘여긴 흡연 구역이니 담배 피울 수 있습니다’라고 따지고 싶었던 그때 그 철없는 아가씨는

애 셋의 엄마가 된 지금 아예 흡연 구역에 아이를 델꼬 가지 않는다.

(요즘 식당은 거의 다 금연이다. 애연가들에겐 죄송하지만 엄마들에겐 다행인 세상이다)

그렇지만 아마도 누군가 와서 젊잖은 말투로 '얘야, 숟가락 치는 건 시끄러워요' 라고 말하면 아이를 대신해 말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불편을 드려 죄송합니다. 제가 보호자인데 제대로 돌보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제 아이는 제가 혼내겠습니다"


 글을 써놓고 발행하기까지 고민이 많았다. 누가 욕을  것도 아니고 크게 혼낸 것도 아닌데 자기 애한테  머라고 했다고 발끈한 것처럼 보일 소지가 다분했기 때문이다. 밖에 나가보면 (우리 아이를 포함해) 눈살 찌푸리게 하는 아이들과 심지어 더한 부모들이 정말 많다는 것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필력이 딸려 제대로 표현되지 않았을  있지만, 아이의 행동이 공익을 해할 정도로 잘못되었다, 교정이 필요하다고 판단되면 보호자에게 먼저 인식되어야 다는  강조하고 싶다.


매거진의 이전글 동방예의지국의 놀이터 대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