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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andew Apr 06. 2022

가방 '안' 들어주는 엄마

미쿡 엄마의 한국 경험기 #2

어쩌다 보니 한국과 미국에서 한 학기씩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며 아이들의 양육과 관련된 양국의 문화를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육아의 기본은 아이를 사랑하는 마음이고 사람 사는 곳은 결국 다 비슷하니 방식은 다르게 표현될지 몰라도 시작은 같은 마음이라고 생각합니다. 다만, 아이를 대하는 작은 차이에서 양국의 문화적 차이가 느껴질 때가 종종 있습니다. 해서, 햇수로 6년 동안 2살부터 3학년까지의 아이들을 데리고 양국을 오가며 느낀 차이점에 대해 이야기해보려고 합니다. 어디까지나 ‘다름’에 대한 이야기지 ‘옳고 그름’ 혹은 ‘낫고 못함’에 대한 이야기가 아님을 강조합니다.다름에 대한 다른 의견이 있다면 언제든 감사하게 나누고 싶습니다만 왜곡된 시선으로 비난을 위한 비판은 정중히 사양합니다. 혹여나 제 글에 제가 의도치 않았던 비판과 평가의 의견이 보인다면 관련 지적 감사히 받겠습니다.

엄마는 네가 어렵거나 힘들어서 못하는 일을 도와주는 사람이지, 귀찮거나 하기 싫은 일을 대신 해주는 사람은 아니야.


한국에서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며 아직도 적응되지 않는 건 등굣길의 풍경이다. 정확히는, 나란히 아이들의 가방을 메고 가는 학부모와 한 손은 엄마빠의 손을 잡고, 한 손은 덜렁덜렁 놀고 있는 아이들의 모습이다. 처음에는 '어머, 쟤네 엄마는 왜 애 가방을 메고 있지?' 정도였는데 한 줄로 길게 늘어서 갈 때면 정말 약속이나 한 듯 모두가 한쪽 어깨에 아이의 가방을 메고 있다가 학교 앞에서 아이에게 매어 준다. 하교 길에 기다리는 엄마들도 아이가 나오면 자동적으로 가방부터 받아주고 아이는 너무나 당연한 듯 노룩패스로 가방을 건넨다.

큰 아이가 1학년이었을 때 어느 날 물었다.

“엄마는 왜 가방을 안 들어줘?”

“원래 니 가방은 니가 메잖아? 왜 엄마가 들어줘? 무거워?”

“딴 애들 엄마빠는 다 가방 들어주던데?”

“그래? 다른 애들 가방은 무거운가? 곤쥬야, 니 가방은 니가 못 멜만큼 무겁지가 않잖아. 엄마도 엄마 가방이 있고. 엄마는 니가 어렵거나 힘들어서 못하는 일은 얼마든지 도와주지만 니가 귀찮거나 하기 싫은 일을 대신해 주진 않아~”

입이 쑥 나올 줄 알았던 아이가 ‘흠..그러네’ 하는 표정으로 바뀌자 한마디 덧붙였다.

“그리고 넌 킨더부터 지금까지 니 가방은 항상 니가 잘 들고 다닐 수 있던 아이야. 여기 와서 다른 애들 엄마가 들어준다고 해서 니 엄마도 들어줄 이유는 없단다^^”

미국에서 공립 교육이 시작된다는 것의 의미:
워낙 땅덩이도 크고 아주 도심을 제외하고는 차 없이는 가까운 거리도 걸어 다닐만한 길이 없는 곳이 대부분인 미국에서는 킨더(이제는 미국 초등학교가 kindergarten이라고 불리는 유치원 과정부터 시작된다는 걸 모르는 사람은 없다. 하지만 같은 학교의 소속일 뿐 킨더는 엄연히 유치원 과정이고 초등 교육인 elementary는 1학년부터로 나뉜다. 몇몇 지역에서는 킨더가 초등학교로부터 분리되어 1년짜리 과정으로 독립해 나와 있는 곳도 있긴 하다)부터 스쿨버스를 타고 학교에 간다. 물론 가을학기가 시작되기 전  여름 방학에 한국의 소집일 같은 날을 정해 미리 학교에서 만나고 (covid가 있기 전 세상이다. 지금은 모든 게 virtual로 대체되었다) 스쿨버스 타고 한 바퀴 돌아보는 시간을 갖는다. 개학 첫 주에는 적응시간이라고 해서 킨더 아이들은 아침에 부모가 데려다주고 오전 수업만 하는 기간을 1~2주 갖는다. 하지만 첫날을 제외하고는 이튿날부터 스쿨버스를 타고 하교한다.

한국에서 취학 전 어린아이들이 유치원이나, 돌봄 교실, 또는 놀이학교나 영어 유치원을 가는 것처럼, 미국 아이들도 킨더에 들어가기 전 프리스쿨(pre-school)에 다니기도 한다. 하지만 문 앞에서 엄마와 인사하고 문 앞에 다시 내리는 과정은 온전히 아이가 자신만의 사회생활을 시작했음을 상징한다. 그래서 미국에서는 킨더를 보내는 날을 엄마들의 만세데이(내가 지은 것임, 아마도 그런 뜻의 단어가 있을 것이다)라고 한다.
곤쥬의 킨더 가방

보통 8:20부터 3:20까지, 정말 풀타임을 학교에서 보내는 미국 아이들의 짐은 실로 엄청나다. 물론 학용품 등 기본적인 office supply들은 각자의 캐피넷에 두고 다니지만, 도시락, 최소 1-2개의 간식 파우치, 물통, 파일 폴더는 기본이고 겨울에는 recess에 대비해 스노 팬츠와 스노 부츠까지 가져가기 때문에 보통 킨더에 들어가는 아이들의 가방의 크기는 제 몸을 덮을 정도로 크다. 처음에는 그 가방 크기에 놀라고 지나면 아이들이 그 많은 짐들을 잘도 짊어지고 다닌다는 것에 또 놀랜다. (물론 그래봐야 5-10분 거리의 도보 통학길이 아니고 스쿨버스 정류장까지 정도이니 직접 비교는 불가하다) 하지만 어떤 엄마도 정류장까지 아이들의 가방을 들어주진 않는다.

그러니 처음 한국의 등굣길에서 미국 아이들 가방의 반의 반밖에 안 되는 코딱지만 한 가방에- 요즘 아이들은 교과서도 캐피넷에 넣고 급식을 하기 때문에 도시락도 없다. 들어있는 건 오직 알림장과 필통과 물통뿐- 손가락 하나로 들고도 남을 법한 가방을 왜!! 엄마들은 저리도 열심히 들어주는 것일까 참으로 의아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머.. 별 뜻이 있으랴...--;;

그저 작은 것 하나라도 도와주고 싶은 부모의 마음일 것이다.

그럼 미국의 부모는 안 도와주고 싶은 걸까??

그건 아마도 주어진 일에 대한 가치관의 차이가 아닐까 싶다.

아이의 숙제를 내가 대신해 주는 것이 결코 아이를 도와주는 게 아닌 것처럼 아이 몫의 가방은 아이가 들게 하는 게 맞다..라는 식의 접근 말이다.

작은 것 하나라도 도와주고 싶은 순수한 마음 뒤에 혹여 아이가 가방을 드는 에너지를 아껴서 학업에 좀 더 집중하길 바라는 마음이 깔려 있진 않을까?

별 차이 아닌 일에 의미 부여하는 것 같지만

그 작은 차이가 주어진 일들에 대해 자신도 모르게 가치를 매기게 만드는 거 같다는 생각이 스멀스멀 피어오르는 건 비약이겠지? 비약이었으면??


입시를 치르는 엄마들의 경우, 이런 비약은 조금 더 심해지는 거 같다. 아이가 공부할 환경을 만들어주기 위해 학원 앞에서 대기하며 밥을 떠 먹이고, 하루에 2-3시간 밖에 자지 못하는 아이들을 위해 심한 경우 자고 있는 애 옷을 아침마다 갈아입히는 엄마도 있다. 그런 얘기를 들으면 오죽하면 그럴까 싶다가도 어쩐지 씁쓸한 마음을 감출 수가 없다.


그렇게 공부만 중요하고 나머지 허드렛일(?) 따위는 엄마가 다 해준 그 아이들은 어떻게 컸을까.

놀랍게도 그들은 정말 좋은 대학에 갔다.(안 놀라운가--;;)

내심 쟤가 저렇게 커서 머가 될까 했던 나는 공부 잘하는 집 걱정은 하는게 아니라는 걸 다시금 깨달으며 최대한 질투처럼 보이지 않게 쓴맛을 다시며 축하를 해줬다.


그러나 난 여전히 잘 모르겠다.

몇 년 전 인터넷을 강타했던 노룩 패스는 그냥 어느 날 하늘에서 떨어진 그분만의 시그니처 태도일까?

그 양반만 유독 무식하고 거만해서 그랬을까?

우리 세대의 엘리트 코스를 밟고 자랐다는 많은 사람들이 어쩌면

어려서부터 힘든 일, 허드렛일(실제로는 경중을 나눌 수 없는 일)은 남에게 맡기고

자신만이 할 수 있는 ‘가치 있는 일’에 총력을 다하려다 보니 그냥 그런 태도가 몸에 배어버린 게 아닐까?


가방 좀 들어줬다고 공부 지상주의로 몰아가는 게 아니고 가방 들어주는 엄마들이 노룩패스의 아이들로 키운다고 매도하는 건 더더욱 아니다.

다만 모르는 어른에게도 배꼽인사를 하고 엄마한테 꼬박꼬박 존댓말을 쓰는  똑똑하고 예의바른 아이들이 아무렇지 않게 자신의 가방을 엄마에게 드미는 모습을  때마다 어쩐지 불편한 마음이 드는 ...아이를 아끼는 엄마들의 마음이 아주 약간은 아이들에게 그건 본인이 하지 않아도 되는 일이라는 마음을 심어주는  아닐까 싶은 사서 걱정이다.

아이들은 언젠가 엄마가 정해주지 않아도 본인이 본인의 깜량으로 정한 우선순위에 따라 효율적인 삶을 선택하게 되어 있다. 궂은일(?)은 하나도 안 해보고 서울대에 간 아이보다 자기 몫을 그대로 감당해보고 선택하고 포기해온 아이가 사회의 지도층이 되었을 때,

조금은 더 너그럽고 약자(내가 약자라고 생각하는 기회가 없을 수도 있던 사람들)한테 따뜻한 사회가 되지 않을까 조심스레 생각해본다.




라고 말하면서

여전히 나에게는 아기로 보이는 막내에게는 그딴 게 다 무슨 소용인가.

혼자 묵묵히 걸어가는 모습이 어찌나 안쓰러운지,

"엄마가 태권도 가방(태권도복만 들어서 이것도 정말 가벼움)이라도 들어줄까" 물어봤다.

막둥이 왈, " 아니, 내가 할게. 저번에 엄마가 이거 교문 앞에서 나한테 주는 거 까먹어서 도로 갖고 갔잖아."

웁씨..;;;;;;;;;;;;

그래 니껀 니가 챙겨라

자랑스럽다 아들아.




덧붙이는 말,

학생은 아이들인데 왜 가방은 부모들이 맬까..라는 단순한 의문에서 끄적여본 글인데, 불편하게 여기신 분들이 다소 계신 듯합니다. 한국과 미국을 비교해 미국의 방식이 맞다는 뜻이 아니었고 아이들이 들기 힘들 정도로 무거운 가방이 아닌 저의 개인적인 상황에 맞춰 쓴 글입니다. 그럼에도 혼자 쓰는 일기장이 아닌 보여지는 글은 신중하고 신중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긴 글 읽어주시고 의견 주신 분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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