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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andew Apr 29. 2022

조금은 더럽고자 합니다

시대를 역행하는 육아

충격적인 위생 개념

미국에 처음 갔을 때 가장 충격적인 건 미국 아기 엄마들의 위생 개념이었다. 

혹자는 한국과 미국의 위생 개념의 차이를 화학적 위생과 물리적 위생으로 구분해 설명하기도 하던데 가장 흔한 예로는 한국 사람들이 경악하는 신발을 신고 침대에 올라가는 것에는 그토록 관대하면서 기침할 때 가리지 않는다던지 그릇을 공유하는 것(요즘은 한국도 그러지 않는 편이지만)에는 질색한다는 것 등이다.


한국에서 아이가 두 돌 반까지 지내다가 미국에 갔을 때, 아기 엄마가 모두 그렇겠지만, 특히나 딸아이라 금이야 옥이야 닦고 닦아서 있는 깔끔 없는 깔끔 다 떨며 키운 나에게는 미국의 모든 시설들이 세균 덩어리로 보였다. 보통 몰마다 있는 공동 놀이 시설에서 아이들이 신발 신고 눕고 뛰어 댕기는 건 기본인데 그곳엔 종종 아이들이 먹다 흘린 간식 찌꺼기들이 그대로 남아 있는 경우가 부지기수였다. 무엇보다 충격적인 건 그런 더러운(?) 곳에서 걷지도 못하는 아기들이 마구 기어 다니도록 부모들이 보고만 있는다는 것. 오우, 저건 솔까 아동 학대가 아닌가 싶었다.


기어 다니는 아가들을 볼 수 있는 곳은 몰 놀이터뿐이 아니다. 꼬맹이가 다녔던 YMCA와 같은 교육 기관의 넓은 체육관, 라이브러리 바닥(심지어 카펫이고 모든 사람이 비 오는 날이면 물 뚝뚝 떨어지는 부츠를 신고 마구 오가는 그냥 맨바닥) 아무 집 잔디밭 등 우리 애 같으면 발도 디디지 않을 곳에서 미국 아이들은 잘도 기어 다니고 아무거나 주워 먹었다. 뿐만 아니다. 꼬맹이는 세돌 전까지 공갈 젖꼭지 홀릭(holic)이었는데 그게 없으면 잠을 자지 못했다. 외출 시에는, 한 번 떨어뜨리거나 하면 씻기 전에는 다시 쓸 수가 없으니 늘 여분으로 한 개를 더 구비해 다녔는데 YMCA daycare에 기어 다니는 아기들은 작은 핀 같은 걸로 옷에 매달아 놓고 물었다 질질 흘렸다를 반복하고 있는 것이었다. 심지어 어떤 아이들은 제 건지 남의 껀지 헷갈려 아무거나 물다가 뱉다가 하기도 했다. (물론 감독하는 사람이 상주하고 있지만 일일이 그런 행동을 제지하진 않았다)


늘 어딘가 기어다니던 장남이

'와우, 저건 아닌데'를 거듭하는 동안 첨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처럼 느껴졌던 나도 어느새 좀 둔감해졌는지 둘째를 낳고 나서는 그렇게 닦아댈 여력이 없어서였는지 조금 누그러졌나보다. 돌도 안된 미남이는 누나의 activity를 따라다니는 동안 여느 미국 아이처럼 어디선가 기어 다니고 있었고 그러다 셋째를 낳고 아들 둘의 엄마가 된 나는 위생? 그게 모예요? 라이버리 바닥을 누비는 아이들이 바로 내 아이가 되었다. 


물론 그렇다고 더러운 손으로 아이에게 음식을 먹인다던가 일부러 밖에서 내깔리고(?) 키운 건 아니었지만 푸드 코트에 가서도 빡빡 물티슈로 닦아내기 전에는 앉지도 못하게 했던 극성에서 점점 머 뭍은 것만 닦아내고 손 닦고 먹게 된 정도랄까. 오히려 종종 유난스런 젊은 중국 엄마들이 식탁에 붙이는 일회용 식판 같은 걸 붙인 후에 아이를 앉히고 정신없이 닦아대는 걸 보면 조금 과하게 보이기도 했다. 어쨌든 그래서였는지는 알 수 없지만 병균이 득실거리는 곳에서 당장 중병에라도 걸릴 거 같았던 우리 아이들은 생각보다 크게 탈이 난 적이 없었고 오히려 좀 덜 까다로워졌달까 상대적으로 청결에 있어서는 덜 예민한 편이었다. 


청정지역이 따로 없구나

그리고 한국에 갔는데…아… 이것이 말로만 듣던 청정 지역이구나 싶었다.

아이들 관련 모든 시설물은 반짝반짝 윤이 났고 백화점의 수유실엔 코너마다 물티슈와 소독제가 비치되어 있고 보기만 해도 그 청결함에 기분이 상쾌해졌다.


(지금은 코로나 땜에 모든 일회용품 사용이 일반화되었지만 코로나 이전의 상황임을 말씀드립니다)

하루는 아이들이 노는 키즈 카페 비슷한 곳에 갔는데 엄마가 두 돌 정도 되는 아이를 델꼬 왔다. 간식으로 콩고물이 잔뜩 묻은 인절미 같은 걸 싸왔는데 떡을 꺼내 놓더니 주섬주섬 가방에서 비닐장갑 한 뭉치를 꺼내는 것이었다. 그러더니 비닐장갑을 끼고 아이에게 떡 하나 입에 넣어주고 또 넣어주고, 아이가 노는 동안 장갑을 벗어 쓰레기 봉지에 넣고 다시 오면 또 새 장갑을 끼고 아이 입에 넣어주고 반복 반복… 눈이 번쩍 뜨이는 진귀한 광경이었다. 그렇게 아이가 인절미 한 팩을 다 먹을 때까지 엄마는 갖고 온 일회용 장갑 패키지를 거의 한통을 다 썼고 그 일이 얼마나 신기했는지 내가 오늘 멀 봤는 줄 아냐며 친정 엄마에게 얘기해줬던 기억이 난다.


그런데 그게 다가 아니었다. 한 번은 백화점 푸드 코트에 갔는데 초등 1학년쯤 되어 보이는 아들과 함께 온 엄마. 김밥을 한 팩 사들고 자리에 앉았는데 너무도 자연스럽게 아이에게 일회용 장갑을 끼워주고 아이는 신나게 장갑 낀 손으로 먹는 것이었다. 그리고 다 먹고는 장갑 벗어 쓰레기통으로 슝. 마치 미래 도시에 온 듯 신세계의 식사법처럼 보였다. 내가 알아온 세계에서는 아이는 서툴지만 포크나 이쑤시개 등을 이용해 김밥을 주워 먹는다. 도구 사용이 어려울 경우엔 엄마가 먹여 주거나 아이가 손을 닦고 짚어 먹고 다 먹고 다시 손을 닦으면 그만이다. 잘하지도 못하는 도구를 쓰느니 손으로 먹되 스스로 먹고, 위생적으로 장갑 끼고 집어 먹고 버리면 그만이니 얼마나 편리하고 자립적인 방법인가. 그러나 재활용 쓰레기에 대한 이슈는 차치하더라도 그 장면이 어쩐지 불편하게 느껴졌던 건 자기 손 더러워지는 거 싫어서인지 자기 손의 병균이 입에 들어가는 것조차 싫어서 장갑을 끼고 먹어야 하는 아이가 과연 저거 다 먹고 공중 화장실에서 볼일이나 볼 수 있을까 라는 확대 해석 때문이었을까.




아이를 양육할 때 자주 떠올리는 말은 ‘아이는 아이다워야 한다’는 것이다.

‘아이다움’은 애매하기 짝이 없는 표현인지라 갖다 붙이기 나름이겠지만 코로나 시대를 살아가며 라떼 기준, ‘우리 때 아이들’이 했던 아이다운 말과 행동이 낯설게 느껴지는 요즘 아이들을 보면 묘한 기분이 든다. 여전히 마스크를 안 쓴 모습보다 쓴 모습이 낯설게 느껴지는 나에겐 마스크를 안 쓴 사람을 보면 깜짝 놀라는 이 시대의 아이들이 가뜩이나 팍팍한 세상살이, 이젠 병균 걱정까지 하고 살아야 하는구나 싶어 마음이 아프다. 더러워지면 씻으면 되고 빨면 되고 툭툭 털기도 하고 적당히 눈감고 넘어가기도 하면서 일상의 작은 티끌 정도는 받아들이고 자란 아이는 삶의 작은 티끌에도 조금 더 너그러울 수 있지 않을까 싶은 그런 기대를 하면서,


가는 곳마다 손 세정제를 사용해야 하고 공기 방울 하나 튀는 것에도 너무 조심스러운 요즘 같은 시기에 이런 바램은 참으로 시의 적절하지 않게 느껴지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코로나가 지나간 세상에서는(그런 세상이 다시 올 지 모르겠지만) 일상적인 병균(?)에는 조금 관대한 아이들로 자라날 수 있기를… 조심스레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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